깨알 감사 초심
여전히 길을 걷고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길을 걸으며 보는 것들에 대해서 나누는 이 시간이 늘 감사하고요.
이번에도 천천히 나누어 보겠습니다.
오늘은 길을 지나다니며 보는 몇 가지 간판들이 재밌어서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간판 1.
'그렇지!' 짬뽕 날 땐 그래야지!'라며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빠! 저게 무슨 말이에요?'라길래, '으응.... 너무 짜증 난다는 말이야. 그런데 그걸 잘 사용해서 짬뽕을 권하네.'라고 답해줬습니다.
간판 2
남는 시간에 길을 걷다가 머리 위에 보이는 간판을 보면서 '와우'하고 웃었습니다. 그런 간판을 제작해서 붙여준 식당과 간판업체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늘 회색건물과 검은색 도로에 알록달록한 도시아트 또는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고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보이는 간판은 먹으러 가고 말고를 떠나서 기와 같기도 하고 구운 고기 같기도 한데 알록달록해서 지나다니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상콤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본 '음료병'과 '조형물'은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줬습니다.
라벨 벗겨진 음료병을 보니까 '투명하고 속이 훤히' 보였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조형물의 하마는 웅장한데 '속이 훤히' 보여서 하마를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런 것을 느끼는 중에 문득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은 속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늘 뭔가 숨기는 거 같아요." "그렇긴 해요. 인정!!"
그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저의 성장과정과 학창 시절, 다양한 회사생활에서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의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모습' 또는 '안 보여주는 모습'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도해서 보이지 않고 숨기던 마음이 있습니다. 24시간 함께 지내는 아내는 말하지 않아도 뻔히 아는데 제가 모르는 줄 알고 행동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답답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 회사생활동안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하고 거리감 느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니 '저는 만나면 언젠가는 편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함께 느끼고 대화하고 알아가면서 편해져야 하는데 언젠가는 '거리감'느껴지고 '한계'가 있는 관계였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끔 만난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스타일은 숨기는 거 없어요. 그냥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함께 말하고 행동해요." 실제로 그분과 만날 때는 늘 함께 하는 시간이 유쾌했고 대화도 깃털처럼 가볍고 즐거웠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진작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이렇게 행동했네!'라며 반성도 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쩌다 바라본 하늘 위 구름이 웃어주는 거 같았습니다.
늦었지만 그런 것을 깨닫고 행동변화를 다짐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이제 아내가 조금이라도 답답하지 않도록 '편한 사람, 소통되는 사람'이 되도록 '솔직히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런 깨달음을 느끼게 해 준 '깨알'들이 매우 '감사'했습니다.
찍게 된 이유는 의자가 아무나 더 이상 앉지 못하게 망가져서입니다. 삐쭉하게 부러진 방부목들은 더 이상 아무도 앉을 수 없음을 공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자의 상태를 보면서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관계 속에서 편하게 받아주는 사람인가? 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삐쭉삐쭉한 모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점점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피해를 당하고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한 말을 듣는 날이 어쩌다가 생기면 그런 것이 싫어서 먼저 선방어하거나 바로 역습을 꽤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아무나 편히 앉지 못하는 의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폰4로 찍어서 화질은 초고화질이 아니지만 저의 마음에 초심을 다시 꺼내준 사진이라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많은 관계의 시작점은 가정의 아내와 아이들이고 관계의 마지막 종착점도 동일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작점과 종착점사이에 일어난 많은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와 짜증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는 저의 부족한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부족한 면을 반성하면서 틈틈히 길을 걷다가 만나는 '깨알'들이 생각을 더 깊이, 많이 하게 해 줘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버려질만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은 '깨알'이 저를 다듬는 생각들을 하게 해 준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상처 가득한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저를 돌아보고, 길을 걷다가 만나는 '깨알'들을 통해 저를 직면하면서 '아내의 벙어리 냉가슴'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날도 많습니다.
'어이쿠!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이제라도 그렇게 깨달은 것들은 바꾸는 노력을 바짝 하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길거리 '깨알'들은 값어치, 놓인 위치, 형태를 떠나서 여전히 엄청나게 소중합니다. 오늘도 이런 '깨알'들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고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의 깨알 프로젝트 2 #2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