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항상 손 잡는 남편.. 아내

88 올림픽 

손에 손 잡고 - 코리아나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가슴 불타게 하자

하늘 향해 팔 벌려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 누리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출처: 벅스 https://music.bugs.co.kr/track/310374


88 올림픽 공식 주제가의 "전 세계 모두가 손에 손 잡고 하나 되어 사랑하자'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어린 나이에 참 신기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손 잡고 함께 하나가 되는 것도 참 놀랄 일이었다.  올림픽 식전 식후 행사들을 보면서 "손 잡는 것"에 대한 설렘과 로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 직장 임원분이 퇴근하시면서 회사 앞에서 기다리던 사모님과 손을 잡고 가시는 걸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결혼기간 내내 손 잡고 다니신다고 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88 올림픽 주제가'이후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결혼하면 나도 저렇게 아내 손 잡고 다녀 볼까?'라고 생각도 해봤다. 




결혼하면 나도 아내와 항상 손 잡고 다녀 볼까?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었다. 


발행글 참조: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받고 결혼한 남자'

https://brunch.co.kr/@david2morrow/79



결혼 후 1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아내 손을 잡고 다닌다. 88 올림픽과 전 직장 임원분의 모습을 보며 가진 "아내와 손 잡고 다니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은 '하이패밀리 결혼예비학교'덕분이다. 장인어른께서 결혼직전 강력히 추천하신 교육이었다. 귀한 딸을 얻는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참석했다. 과정 중 마지막 활동 덕분에 "아내와 손 잡고 다니기가 불멸의 실천항목"으로 유지되고 있다. 



내게 큰 영향력을 끼친 마지막 활동은 "손바닥 맞대고 상대방 따라 움직이기"이다.

선서하듯이 오른손을 들어 서로 손바닥을 맞댄다. 남자가 손을 움직이면 여자가 따라 움직인다. 반대로 여자가 움직이면 남자가 따라 움직인다. 움직이는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서로의 움직임에 집중을 해야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혼날짜와 장소까지 확정된 예비부부들이다 보니 어떤 과정을 진행해도 '깔깔'거리고 '후끈후끈'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분위기였다. 



이 활동의 핵심은 손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의 움직임에 맞춰서 내가 움직이는 것이다. 손바닥을 서로 마주하며 느낀 따스하고 부드럽고 느낌, 살짝 떨리는 몸과 마음이지만 어떤 동작에도 손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로의 눈과 손에 집중했던 그 열정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같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땀도 삐질삐질 흘려가며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지금 그 느낌 잊지 마시고 앞으로 평생 서로를 바라보시고 맞춰가면서 살아가세요!"라며 강사님이 다시한번 강조하셨다. 마지막 동에서 받은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손 잡고 다녀볼까?"가  리마인더처럼 "늘 실천"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손을 잡을 때마다 그때 느낌을 생각하며 살기로 작정한 날이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맞춰가며 살고 싶었다.


눈 깜짝할 새에 결혼 12년 차가 되었다. 아이들은 초등 6, 4, 2학년이 되었다. 앞선 결혼선배들이 보기에는 웃으실 수도 있는 짧은 시간이다. 이 글을 쓰면서 '결혼예비학교 마지막 활동'때 깨달았던 느낌이 다시금 떠올랐다.  손을 맞댄 것은 둘이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이고, 맞댄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손이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앞으로 평생 서로 맞추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자!!'라는 메시지에 대한 선서였던 것이다. 



"손 잡고 다니기"를 하면서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다짐했던 나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내 맘대로 흔들고 밀고 당기기만 했던 것 같다. 아내는 마음이 많이 힘들지만 그때 활동의 메시지를 잊지 않고 지낸 것 같았다. 언제나 나와 가정을 위해 참아주면서 때가 되기를 기다려줬던 것 같다. 반대로 나는 '왜 손잡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아내 손만 열심히 잡고 다녔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로맨스 가이"로 오해를 하곤 했다. 그런 시간들때문에 나는 마음의 병이 없었지만 아내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다.  



나는 계속 살면서 '아내는 왜 마음의 병을 얻었을까?' '아이들은 왜 힘들어할까?' 결혼 전 꿈꿨던 가족의 모습이 아닌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매우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아차' 싶었다. 이대로 흘러가기는 싫었고 회복시키고 싶었다. '나 먼저 바뀌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고 부단히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결혼 생활에 대해 배운 교육이나 전문가의 코칭 덕분이다. 



결혼 전에 '결혼예비학교'를 수료하면서 "서로에게 맞춰주며 살도록' 배웠고 

결혼 6년 차에 '부부상담' ' 아버지학교'를 통해 우리가 좌충우돌한 이유와 극복할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 교육 내용을 기준으로 고쳐가다 보니 벌써 결혼 12년 차가 되었다. 매 순간 감정싸움의 극적인 고비마다 결혼선배들과 술 먹으며 푸념하고 위로를  시간들도 물론 소중하다. 그렇지만 제일 큰 역할을 해준 것들은 '벼랑 위에서 가느다란 줄 잡는 심정'으로 참여한 과정들이었다. 나처럼 길을 잃고 가정의 울타리 밖에서 '어쩌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남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런 과정들 덕분에 나의 리마인더 ' 아내 손 잡고 다니기- 서로 맞추며 살기'가 계속되고 있으며 변화를 위한 노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결혼예비학교'에서 얻은 '서로 맞추면서 살자!'는 우리 가정의 가장 큰 기준점이다.  반백년 결혼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 셋과 함께 많은 일을 겪는 동안 "아내만 여전히 내게 맞춰주며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 그래서 여전히 글을 쓰면서 '나의 다짐'을 되새기고  '나의 변화'를 통해 가정의 회복이 이어지도록 노력 중이다. 

나는 말한다.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
'앞으로도 서로 맞추면서 잘 살자!!'



사진출처: Unsplash의 Robbie Herrera

작가의 이전글 탐정프로젝트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