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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막내딸에게. +17

경쟁

사랑하는 막내딸에게.



네가 여전히 쾌활하게 지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단다. 너만 학원을 다니는 게 없어서 같이 놀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말에는 여전히 미안해! 그 말보다도 이번에 네가 해준 말은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아팠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정도로 힘든 상황인지 헤아려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저 막내로 언제나 '깍두기'이지만 감당해 줄 정도인지 알았는데..



어딘가를 가면 너희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 여전히 즐거울 줄 알고 늘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다녔지. 그러다 보니 식당에서는 6인용 테이블이 아니면 한 명은 깍두기처럼 의자를 애매하게 놓고 밥을 먹었어. 놀이동산을 가도 한 번에 다 같이 못 앉으면 셋이 타고 둘이 타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너는 언제나 '애매한 상황'을 감당해 주는 깍두기가 되곤 했었어. 그럴 때마다 '치!~' 하는 너의 맘을 이해하면서도 "아직 어리니까!~'라면서 은근히 강요 아닌 강요를 하긴 했었지.



그렇게 지내면서도 이쁘게 잘 커주는 너의 모습에 늘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 네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아빠는 진짜 놀랐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하나도 모르는 아빠모습에 더 놀라기도 했어. 그 말을 듣고는 진짜 자주 너를 안아주고 노력했는데 그러다가 언니나 오빠에게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대들 때면 또 혼내게 돼서 엄청 미안했단다.


무슨 말에 아빠가 놀랐을까? 너는 기억나니?


내가 기억하는 너의 말을 기억해내볼게. 저녁 식사 시간이 애매해서 모두 나가기로 했고 동네식당들을 돌아보는 날이었어. 아빠, 엄마가 앞서고 너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엄마, 아빠 손을 서로 잡고 싸우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한 손에 두 사람이 매달리기도 하면서 걷고 있었지. 자꾸 그러고 우당탕하니까 오빠가 버럭 화를 내면서 창피하다고 했고. 그러다가 서서히 정리가 되면서 언니는 엄마손을 잡더라. 뒤이어서 잽싸게 네가 달려오더니 내 손을 잡길래 한마디 했지.


"야! 뭘 그렇게 달려오냐! 그냥 손 잡으면 잡고 아니면 그냥 걸으면 되지!"

"아니에요.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뭐?"라고 내가 어이없어하면서 너에게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경쟁하느라 힘들어요!


그 말에 이해가 안돼서 순간적으로 짜증을 더해서 말했던 것 같아.


"뭐? 경쟁? 뭘 경쟁하냐! 그냥 잡으면 잡고 아니면 걸으면 되지! 별거 가지고 난리야! "

"진짜예요."

"오빠는 아빠 붙잡고 다니고 언니는 맨날 엄마 붙잡고 다녀요. 나는 엄마나 아빠 손 잡으려면 경쟁해야 한단 말이에요. 힘들어요."


너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서는 아빠가 숨이 멎는 것 같더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을 하나도 몰랐으니 너무 미안타'라면서 아빠는 진짜 당황했단다. 그런 대화를 끝으로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긴 했는데 그 생각이 계속 맴돌더라. 언젠가는 꼭 한번 대화를 해야겠다 싶어서 급한 마음에 이렇게라도 해본단다.



왜 마음이 급했을까? 식당에 들어갔는데 또, "언니 엄마 옆에 내가 앉을 거야! 오빠 빨리 비켜줘!"라면서 또 '경쟁'을 하는 모습에 아빠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밥을 먹고 집에 오는 내내 여전히 '경쟁'하는 너의 모습에 아빠는 울고 싶었어. '어떡하면 좋을까.. 이게 모지?'라는 말이 계속 맴돌더라.



하루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너희들이 잠을 자기시작하니까 잊었던 생각이 다시 떠오르더라고. 나의 막내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힘들게 매 순간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또 드는 생각은 너를 혼낸 것들이었어. 외식할 때마다 "엄마 옆에 내 자리!" "아빠 손은 내가 잡는다!" 라면서 헐레벌떡하다가 물컵을 엎지르고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나면 어느새 또 혼나고 있는 네가 생각나더라고. 너의 마음을 너무 몰랐어. 허둥지둥 조심성 없게 행동한다고 생각해서 뭐든지 차분하게 좀 하라고 다그치고 혼냈던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아서 고민하던 것은 해결이 안 되고 미안한 마음이 커지더라.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며 고민하다 보니 간신히 생각한 것은 '가위바위보'였어. 집에서 조금이라도 다투거나 서로 싸우는 것의 해결책이 늘 '가위바위보'였잖아. 그런데, 그 해결책이 썩 좋은 것이 아닌 것을 금방 깨달았어. 너를 위한 것이 아니더라고. 가위바위보를 했더니 싸우거나 경쟁은 덜 하게 되었는데 네가 원하는 손을 못 잡고, 네가 원하는 자리에 못 앉고, 네가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고를 기회를 얻지 못하더라고. 승부의 결과이니까 조용히 감당하는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어. 속상한 마음을 목 넘김하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니까 또 마음이 아프더라고.. 초4인 너에게 한 번도 양보는 안 하고 늘 가위바위보하는 오빠, 언니도 너무 밉더라. 가위바위보를 시작하면 맨날 가위먼저 내서 맨날 지는 너를 보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늘 설명해 주는데 실제로 가위바위보를 하면 본능적으로인지 맨날 가위만 내고 언니, 오빠는 그걸 알고 이용하고 말이야.



"야! 맨날 가위바위보하지 말고 막내를 배려 좀 해라!"


라면서 급기야 아빠가 제발 좀 '막내 배려'하도록 선포하긴 했어. 그렇게라도 해야겠더라고. 그래야 너의 마음을 알아주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더니 언니, 오빠가 가끔 아빠가 보고 있으면 '너 먼저 선택해라!'라면서 배려도 해주길래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네가 하는 말은 모두 너의 속마음 말이라고 생각하고 새겨듣을게. 그런 말을 아빠에게 해줘서 다행이고 고맙다. 맨날 아빠는 그런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쓸데없는 말 고만!!"이라면서 입막음만 했던 것 같아. 그럴 때마다 "아니에요."라고만 하던 네가 그런 말을 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미안해!

작은 몸 안에 들어있는 너의 쪼꼬만 마음이

벌써 상처가 많아진 것 같아.


작고 순수한 너를

아빠의 크고 시커먼 눈으로만 바라본 거 같아.

마음으로 바라봐줘야 하는데 말이야.


손가락 걸고 약속할게!

들은 말을 잘 기억해서 너의 마음을 알아줄게.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마음으로 바라볼게.


사랑하고 사랑해!

고맙고 고마워!

미안해!





엄청 놀랐습니다.

막내딸이 늘 허둥지둥 뛰어다니면서 경쟁하듯이 손을 잡을 때, 식당에서 자리에 앉을 때마다 "여기 내 자리"라면서 뛰다가 물컵 쏟고 젓가락, 숟가락 떨어뜨리고 뭔가를 엎지르기를 반복하고 늘 늘 혼내기만 했습니다. "아무렇게나 하지!! 이그"라면서 그저 예의 없고 허둥대는 딸내미로만 몰아세우고 늘 혼냈습니다. 진짜 엄청 반성했습니다. 막내가 나름대로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지내는지 몰랐거든요.



딸바보가 아닌 멍청이였습니다.

편지를 쓸 때마다 느끼고 있는데 특히 오늘은 편지를 쓰면서 너무 창피했습니다. 저는 '바보'가 아니라 '멍청이'였습니다. 딸 둘이라는 말에 "딸바보이시겠어요."라고 하시는데 저는 당황스럽습니다. 아들만 있는 아빠들은 딸이 살갑게 애교 부리는 게 너무 부럽다고 하시고요. 딸 둘에 녹아서 '뭐든지 해! 딸들아!'라고 해주는 '딸바보'가 아니라 '뭘 그런 걸 하려고 하냐!'라면서 이해 못 해주는 아빠이자 '멍청이'였습니다. 반성했습니다.



편지를 쓰니까 더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게 됩니다. 상황에 따라 아빠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이제는 '미안!'하고 사과를 종종 합니다. 그렇지만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반성하는 것은 저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편지 쓰기'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생각지 못한 만큼 의 깊이감 있는 반성도 하게 되고요. 아이에게 진심의 사과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서 깊은 반성과 세트로 눈물이 찾아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나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또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몰래 쓰긴 합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걸 쓰고 있어서요.



저는 모든 아빠들이 '편지 쓰기'를 하시도록 추천하고 싶습니다. '자아클럽'을 만들고 싶습니다. -자녀에게 손편지 쓰는 아빠클럽' 말입니다. 진지하게 쓰다 보면 스스로 반성하고 자녀와 살고 있는 아빠 본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어서 참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은품으로 따라오는 것은 '자녀의 포옹에서 느끼는 감사와 자녀가 얼마나 소중하고 이쁜지 다시 알아가는 깨달음'입니다.



오늘도 막내딸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았다는 것이 천만다행이고 알고 나서 잊지 않고 더 잘 챙기겠다는 의미로 적은 편지를 나눕니다. 그렇게 깨닫고 나서는 막내딸이 손 잡자고 하면 제가 얼른 잡아줍니다. 그런 날이면 막내딸이 기분 좋아하면서 어깨동무해 줍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합니다. "우리 깐부 아이가!!"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바랍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사진: Unsplash의 Kevin Delvecc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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