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사랑하는 큰아들에게
너와 잠깐 나눈 몇마디의 대화가 아빠 마음을 울컥하게했던 날이 있어. 마음에 짧으면서도 진하게 느껴진 감동을 너에게 전하고 싶어서 쓰기로 했단다.
별거아니지만 아빠 마음에 감동이 컸던 이유는 우리가 이사와서 아는 친구 없는 동네의 중학교를 입학한 너가 벌써 중2라는 것과 매일 학교공부때문에 엉엉 울다시피 힘들어하는 너를 보는 날이 점점 많아진 상황이 함께 떠올라서였어. 그런 생각들이 어떻게 감동이었을까?
요즘에는 너만 학원 안다녀서 놀 친구가 없고 학교에서 간단히만 가르쳐서 그것만 듣고는 시험치기가 너무 어렵다면서 힘들어했지.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엄마 아빠도 엄청 고민하면서 지내고 있어.
학원을 보내? 국영수? 다른 지출을 줄이고? 아니면 힘들지만 계속 혼자 스스로 공부 하도록? 아니면 수학만?
엄마랑 단 둘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학원을 안 보내고 버티고 있는데 영어를 어떻게 공부하고 시험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서 제발 도와달라고 엄마에게 또 울컥하는 너에 대해서 대화한단다. 그런 모습에 엄마가 나서기도하는데 그러면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자기 일정이 있다면서 친구들과 축구 차고 온 후에 공부하자하고 막상 운동하고오면 졸리다고 짜증내고 자고 말이야. 그 모습에 아빠는 화를 내면서 엄마에게 네가 가르쳐달라고 했으면 고분고분해야지라면서 혼내기도 했지.
그렇게 혼내면 미안해하면서 자기 뺨을 스스로 때리면서 엄마랑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서 기특하기도 했어. 그것보다 더 기특한 것은 엄마 말을 듣고 나서야.
"진짜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는데 막상 같이 공부해 보니 생각보다 어느 정도 혼자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말에 네가 공부하고 문제 푼 것을 봤더니 은근히 동그라미도 많고 생각보다 아는 것도 많기에 그동안 네가 울분을 토하면서도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이 감동스럽더라. 진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학원 다니는 친구들만큼 해내고 싶은 너의 열정과 승부욕을 느끼기도 했지. 너무 기특해서 아빠가 자기 전에 한마디 했지. 너에게
"고맙다."
"네가 혼자서 잘 공부하고 있었구나.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고 학교 가고 잘 다녀왔다고 집에 들어오고 있는 너에게 아빠는 늘 고맙다. 고맙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빠 마음은 울컥했고 눈에는 슬쩍 눈물이 오르는 것 같아서 잘 자라고 얼른 불을 껐단다. 너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하면서 너를 봤는데 표정은 머쓱해하면서도 너의 눈빛이 '인정받아서 좋고 흐뭇한지 살짝 뭉클해하는 느낌'이라서 또 고맙더라. 폭풍의 눈 같은 '중2병아들'을 '짐승'대하듯 조심해서 대해야 한다는 세상의 경고를 따르고 있는데 생각보다 너는 좋은 모습으로 여전히 함께 지내주고 있어서 감동이란다. 그런 너의 모습이 내게 감동이었다.
"진짜 고맙다"
학교를 다니는 것,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지내주는 것, 공부가 끝나면 친구들과 축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공부 외에도 그림도 그리고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휴대폰으로 색다른 사진도 찍어서 보여주면서 여전히 감성적이면서도 무난한 중2 생활을 보내주고 있는 것이 엄청 고맙다.
네가 내 아들이라서 자랑스러운게 아니다.
내가 너의 아빠라서 자랑스럽고 고맙고 그래.
오늘 느낀 감사와 감동을 기억하면서 너를 사랑할게.
내일도 그렇게 너의 아빠라는 것을. 감사하며 지낼게.
사랑하고 고맙다.
너의 내일도 응원하고 지지할게.
여려 보여서 살기 힘들 줄 알았다.
큰아들이 유약해 보이고 쉽게 부서지는 솜사탕 같아 보여서 걱정이었습니다. 두 딸들보다 약한 존재가 될까 봐 첫아이로써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와 지낸 시간 때문에 불안감은 크고 자신감은 작은 큰아들일까 봐 걱정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춘기가 접어들고 목소리가 바뀌어갈수록 학교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챙겨나가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서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중2병 큰아들을 들여다볼수록 빨강맛입니다.
중2병 시작이 될 때에 아내와 함께 엄청 고민하고 걱정했습니다.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얼마나 지혜로운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면서 둘이 함께 엄청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큰아들이 눈치챘는지 알아서 조심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엄마 아빠가 고민하고 걱정할까 봐 집에 오면 티를 안 내고 조심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큰아들의 속마음을 알면 알수록 아직까지는 빨강맛입니다. 감사하고 감동스러워서 여차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기에 빨강맛입니다. 이렇게만 잘 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롤모델을 포기했습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거나 네임벨류가 있는 의류회사에 다닐 때는 아이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에 얼른 아이들이 커주길 바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크는 속도는 더딘 것같고 저의 직장생활 하향세 속도는 엄청 빨랐습니다. 지금은 큰아들의 롤모델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지만 제가 살아가는 생활신조나 가치관에 대해서 자주 대화하면서 아빠의 자랑스러운 모습보다는 실패담을 솔직히 얘기해 주면서 저와 같은 실수는 줄이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큰아들이 잘 지내주고 있고 힘들어서 울면서도 스스로 공부를 챙겨서 하고 있어 준 것에 대해서 아빠로서 감동해서 '고맙다'라는 말로 서로 교감했던 순간에 대해서 편지 썼습니다. 말은 몇 마디 했는데 제 속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동안 마음에 있던 말이라서그런지 글이 길어졌습니다.
편지를 쓰면서 큰아들의 아빠라는 것이 엄청 자랑스럽습니다. 고마움도 커지고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느낀 큰아들에 대한 감동과 감사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가 두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사진: Unsplash의RISHABH CHAU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