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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에게. +19

오늘

사랑하는 아내에게.



오늘은 오죽하면 당신이 그런 말을 할까 싶어서 버럭하지않고 묵묵히 들었던 날에 대해서 말해볼까 해요. 우선, 당신이 그 말을 하기까지 기다리고 참아준 것에 또 고맙더라고요.



나는 당신과 길을 걷는 것이 참 좋아요. 어딘가를 향해서 가거나 건강을 위해서 길을 걷기도하는데 나란히 걷는게 좋아서인지 말이 많아져서 탈이긴 해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어느순간 또 내가 말하고 있더라고요. 당신이 하고 싶던 말이 다 끝나지 못해서 찜찜해하는 표정으로 들어주고 있는 것을 한참후에야 느낄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미안함이 시작되더라고요.


그렇게 당신과 길을 걸으면서 대화하다가 당신이 한 말에 아무 말도 못한 것을 얘기한다고 했는데 사실 많이 당황하긴 했어요. 우리 아이들 공부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날인데 큰아들이 나름대로 공부해주고 있었던 것이 감동되서 자기전에 '고맙다'라고 말한것과 그랬더니 눈망울이 살짝 감동한 느낌으로 멋쩍어하던 큰아들의 모습을 당신에게 말했지요.



그런 말을 하면서 두 딸들의 공부에 대해서 더불어서 했는데요. 둘째딸이 공부하기가 힘들다면서 투덜거리고 힘드니까 학원 보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요. 시험전에 공부를 엄마가 짚어주지 않아서 힘들다면서 짜증을 냈던 것도 나누었고요. 나는 아이들이 공부하도록 앉혀놓고 짚어가면서 알려줘야한다는 당신 의견과 가능하면 공부하도록 가이드와 지원만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반대되는 의견을 냈었지요. 그렇게 지내다가 아이들이 정말 급하다고 하거나 진짜 힘들다고 학원 보내달라고 사정사정하면 그때서야 하나 더 지원해주는게 우리 몫이 아니냐면서 계속 소리 높였던 것같아요. 애초에 다른 견해로 대화를 하다보니 좁혀지지 않는 의견에 서로 침묵하면서 걷기도 했네요. 그러다가 당신이 옆에 붙어서 짚어준 덕분에 둘째딸이 학교 시험을 제법 잘 치고 왔다면서 엄마에게 말한 것으로 대화소재가 넘어가면서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었네요. 그러면서 내가 깨달은 것을 한마디 했지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제법 잘하네요." 그 말에 당신이 대답하길,


"이제야 아네요. 이제야 알아요. 아니 오늘이요"


덧붙인 당신의 말이 치명적으로 느껴졌어요. 잠시 아무 말도 못했고요. 예전같았으면 노력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그런 말을 하냐면서 버럭 화를 내고 더이상 아무말않고 앞서서 그냥 걸어갔을거에요. 당신은 황당해하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는 그런 행동으로 반응하는 것이 너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도 그런 실수할까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얼른 한마디 했어요.


"그래요. 미안해요"


이번에는 반박이나 버럭보다는 '인정을 했어요.' 변화된 사람으로 완벽하게 짜잔하고 변화하는게 엄청 어렵더라고요. 바뀌어가면서도 수시로 쓴뿌리같은 옛사람의 행동이 나와서 여전히 신뢰를 주긴 어렵기도하지만 일단 내가 한 잘못이나 실수들에대해 '빠른 인정'과 '사과'먼저 하는게 좋은 것같아요.



'빠른 인정'이나 '사과'를 통해 내가 앞으로 해야할 행동이나 목표를 정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행동이나 말때문에 힘든 순간들을 견뎌준 당신의 노고에 대해서 인정해주고 아팠을 당신의 마음에 '작은 반창고'를 붙여주고 싶어요. "이제 아네요."라는 말은 들을만한데 "오늘 아는군요...오늘"이라는 느낌의 말은 바뀌어야한다고 깨닫고 노력중인 내게 잘못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못 알아듣고 바꾸지 않는 당신'이라고 낙인찍으며 비아냥거리는것같아서 화가 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오늘'이라는 말을 할만큼 '오늘까지도' 참아주고 기다려주면서 옆에 있어준 당신의 사랑이 느껴져서 '인정'먼저 하게 되네요.



'이제서야'라는 것을 느낄만큼

나를 바꾸려는 노력이 느껴졌다면 다행이고요.



'오늘 아네요.'라고 느낄만큼,

'오늘은 다르네요.'라고 느꼈다면,

그마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참아준 동안 시리고 아팠던 마음이

더 빨리 나아지도록,

당신이 덜 참고 기다리도록

더 많이 노력할께요.


약속합니다.

사랑해서요.




'이제 깨달았습니다.'로는 부족합니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서 남의 말 듣지 못하는, 특히 같이 살면서 저의 모든 것을 알기에 해주는 말은 정확한 말이나 방법인데 듣지 않는 것에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조금 인정하며 말했는데 아내는 '이제서야'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오늘 아네요. 오늘 알았어요.'가 후련할 겁니다.



아내는 아파합니다.

함께 살면서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아이를 보면 제 모습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 아이와 그 아빠는 보는 것만도 힘들다고 합니다. 하라고 하면 그대로 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와서 같이 웃는 아이들도 있고요. 아직도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구는 남편과 아이들을 볼때면 마음이 먹먹하긴 하다고 합니다.



아내말을 잘 듣자.

아내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또는 저의 경험에 의한 결정으로 했다가 자꾸 실패합니다. 물론 괜찮은 결과도 많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진짜 중요하거나 정말 큰 실익을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저의 결정에 아내 의견을 반영하지않아서 낭패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보스럽게 느껴지지만...아내 말을 잘 듣기로 굳게 마음 먹어 봅니다. '젖은 낙옆'수준을 넘어 '소파위의 젖은 빨래'같은 남편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주관적인 저보다 아내가 객관적으로 보고 느끼는 저에 대해서 해주는 말이 더 정확할 때가 많음을 인정하기로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없이 연 날리는 남자Dd의 편지

출처:사진: UnsplashChan Chai 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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