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의 의미
사랑하는 막내딸에게
아빠가 종종 늦게 일어나니까 못 일어나는 줄 알고 조심조심하길래 미안하더라.
사실은 못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아빠가 아침에 같이 있으면 엄마에게 짜증 내고 대들고 순간적으로 화낼 때마다 혼내니까 불편해하길래 그냥 누워있는 거란다. 조금이라도 너희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서였어. 아직은 아빠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여차하면 혼내는 아빠이니까.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막내 생각이 나서 울컥했었어. 잠도 제대로 안 깼는데 울컥하길래 너를 얼른 불러서 안아줬던 날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 쓴단다.
요즘 언니, 오빠에게 자꾸 대들고 함부로 말하고 자기 할일중인 언니, 오빠를 건드리다가 싸우고 대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늘 엄마, 아빠에게 혼나기만 하는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너가 벌써 초4학년 아가씨라는 것을 종종 잊고 지내더라고. 아빠는 네가 아직도 쪼꼬맹이 애로 생각하면서 맨날 쪼고만 게 언니, 오빠에게 버릇없이 군다고만 했더라고.
그런 생각들이 잠도 안 깬 아침 아빠 마음에 떠올라서 '아차!'싶었단다. 그래서, 너를 불렀지.
"잠깐 와바~~"
"왜요?"
"응. 그냥"
그렇게 말하고 들어온 너를 보자마자 누워있으면서 그냥 꼭 안아줬지. 너도 기억할 거야. 아빠가 그냥 꼭 안아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준 아침, 그렇게 하고 나서 "이제 학교 갈게요."라는 말에 "응"이라고 말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해줬었지. 아빠는 너를 그렇게 안아주고 나서 마음이 행복했었어. 맨날 혼나면서 억울한 너의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준 것 같아서 흐뭇하기도 했고
그런 흐뭇한 마음에 아빠는 오전 내내 기분이 좋더라. 그렇지만 그런 마음과 함께 떠오른 생각은 안아줬을때 빠싹 마른 몸이 너무 안쓰럽더라.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거의 뼈밖에 없는 느낌이라서 아빠 마음은 늘 아파. 그래도 흐뭇했던 마음이 계속 마음을 뿌듯하게 해 주길래 엄마에게 말했단다.
"여보!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막내 불러서 꼭 안아줬어요. 그랬더니 그냥 안겨있더라고요."
"바싹 마른 몸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막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준거 같아서 뿌듯하더라고요."
"아이고~~~~"
아빠는 엄마가 "아이고~~~"라는 말이 대답으로 나올 때 '뭐지? 왜 그러지?'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단다. 아빠의 뿌듯함과는 전혀 다른 엄마 반응에 의아했었어. 그러면서 혹시나 엄마가 할 다음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지. 엄마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아빠에게 말을 이어가더라.
"남편, 당신은 막내를 위로한다고 안아줬다고 했지요?"
"그래요. 뿌듯했어요."
"막내딸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느꼈나 봐요."
"그건 무슨 말이에요?"
아빠는 솔직히 너무 놀랐고 많이 당황스러워서 멍해지기 시작했어. 맨날 여차하면 혼난 막내딸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서 꼭 안아줬는데 막내는 다른 느낌으로 느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거든. 엄마의 다음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어.
"막내가 등교하려고 나가면서 말해주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무서운 꿈 꿨나 봐요. 안아달라고 해서 안아줬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짜 혼란스러웠단다. 아빠인 내가 뭘 한 거지? 내가 느낀 것과 막내가 느낀 것이 전혀 다르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이지? 왜 이렇게 지내고 있는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라면서 머리가 마치 폭탄 맞은 것처럼 마비가 되더라고. 충격을 엄청 받았어.
아빠가 흐뭇했던 크기만큼 너도 나름대로 흐뭇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행동을 서로 했는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느낀것‘이더라.
나는 너를 위로하고 너는 나를 위로하고
나는 흐뭇했고 너도 흐뭇했고
엄마의 말들을 듣고 나서 잠시 멍하니 있는데 엄마가 아빠에게 살짝 핀잔을 주더라고. 그러기에 평상시에 언니, 오빠한테 대든다고 혼내지 말고 많이 안아주고 평상시에 많이 사랑해 주라는 당부까지 해줬단다. 엄마말이 100% 많은 것을 알기에 멍해진 머리를 얼른 툭툭 털고 '그래야겠다.'라고 다짐했단다.
미안해.
아빠가 하는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게 아빠임거같아.
아빠가 더 많이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너의 마음을 살필게.
막내라고 무작정 혼내기보다는
너도 아가씨가 되어가는 초4라는 것을 잊지 않을게.
맨날 막내라고 생각해서 아기 취급을 했더라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아빠가 더 잘할게.
그리고, 고맙다.
동상이몽의 참맛!!
정말로 놀란 날입니다. 제가 한 행동들이 예상 못한 느낌으로 전해지고 그 느낌을 막내가 엄마에게 전달한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행동들이 전혀 색다른 의미로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도 충격이고요. 아빠에게 말 안 하고 엄마에게 자기가 느낀 진짜 속마음을 건네고 등교한 상황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만큼 아빠는 통제적이고 무서운 존재이고 엄마는 늘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포근한 존재로 인식이 된 것이지요. 충격도 받았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다짐한 날이었습니다.
동상이몽이 무서운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단순히 의미가 잘못 전달되었기에 화들짝 놀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자란 막내딸이 잘못된 기준점을 가지고 가정을 가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여차하면 화를 내고 통제하는 남자를 만나고 그게 익숙해서 지내다가 결혼까지 했지만 그런 성향의 아빠모습을 싫어했는데 자기가 만든 가정의 남편이 또 그런 모습으로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불편하고 불만스러워서 불협화음이 커지면 그 가정은 또 불행해지니까요. 그런 생각이 들면서 너무 무서웠고 속상했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동상이몽이 아이의 순진한 마음에서 느끼는 일상의 해프닝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다음 세대의 가정 속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서 섬뜩했습니다.
참!! 바뀌기 어려운 게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바뀌기 어려운 게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특히, 저 혼자의 힘으로 저를 바꾼다는 것은 엄청 어렵습니다. 그래서, 늘 공개반성문을 쓰고 가족에게 편지도 쓰고 있습니다. 다행인 건 아내가 격려해 주고 기다려주고 제가 달라져서 조금이라도 힘을 내고 건강한 가정을 함께 만들어가도록 애써주고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뀌기 어려운 게 사람이지만 수많은 분들의 눈과 함께 살아가주는 아내와 함께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고무적이라는 생각에서 한발 한발 나서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의 일상 속에서 막내딸을 안아준 것에 대한 동상이몽 같은 해프닝을 미안해하면서 사과했습니다. 더불어서 그렇게밖에 느끼지 못하고 있는 막내딸과 둘째딸,큰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을 더 많이 하려고 다짐도 했습니다. 이런 일상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
출처:사진: Unsplash의Andres Ha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