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의 무게감
사랑하는 아들에게
요즘 너가 키가 크고 몸이 커지고 발이 커져서 점점 엄마 아빠를 넘어서는 것이 진짜 행복하단다.
손을 잡아줘야만 걷던 아들이 '사랑한다'며 비슷한 눈높이로 포옹해줄때 감격스럽기도 하면서도 요즘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어서 너에게 편지를 쓰는데 시작하자마자 이미 마음이 짠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울컥하는구나.
혁신 초등학교에서 시험도 없이 공부하고 노는 것만 하다가 이사온 중학교에서 보낸 1학년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는 말을 들으면서 미안하기도 했었지. 남들처럼 국영수 학원 보내주고 부족한 것들을 채울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야 전혀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해. 학원 안 다니고도 자기만 잘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다른 분들의 말씀에 위로를 받긴하지만 너가 시험결과를 받아들고 고통스러워할때마다 마음이 더 아파온단다.
그렇게 고뇌하면서 고민하면서 지내던 너가 중2에 올라가더니 연애, 외모, 심쿵거리는 아이돌때문에 한눈팔지는 않아서 다행이면서도 너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다가 걸려서 혼나거나 꾸지람들을까봐 무조건 배척하고 지내는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하고 있다. 그중에 너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성적 그리고 친구긴하더라.
성적은 공부해도 안 오르고 나름대로 공부했는데 더 떨어진 날은 자괴감에 누워 있더구나. 친구는 너가 좋아하는 축구를 통해서 만나니까 해결은 하던데 그것도 아이들이 점점 축구하고나서 피곤하니까 너가 재미로 병행하던 온라인 축구게임도 같이 하게되었는데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는 엄마 말에 그냥 울었다. 직접 축구하던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축구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데 너가 속상하다는 말에 이해가 안 되었지만 자세히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었지. 다른 아이들은 늦게 시작한 온라인 게임이다보니 돈을 투자해서 선수를 사고 팀을 세팅해서 금방 자기 팀을 초강력으로 만들어서 대적하는데 너는 현금구매없이 순수하게 테크닉으로만 승부하는 팀이다보니 승부를 떠나서 아예 상대가 안되는 상황이 되버리니 너무 허탈해서 속상하는 너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 경차를 타고 중대형차와 레이싱하는 격이니 말이다.
그런 일상을 감내하면서 지내는 너가 어느날 엄마 아빠에게 말하는 걸 들었다.
"엄마, 아빠 이제 휴대폰에 있는 게임, 볼거리 모두 지울꺼에요. 그냥 공부할꺼에요."
그렇게 말하고 다 지웠다면서 공부만 하겠다고 선포하길래 지우지말고 조금 자제하면서 공부하고 지내라고 역제안을 했었는데 과감히 모두 지우는걸 보고 놀랬단다. 집에서 쉴 때면 그때부터는 그냥 누워만 있길래 그것도 걱정이 되었지. 한동안은 책상에 앉아서 골몰하면서 공부를 하길래 그것도 놀라는 상황이었고 말이야.
그러다가 시험을 쳤고 결과가 나왔는데 엄마 아빠에게 웃으며 보여주긴했는데 또 시험을 망쳤다면서 우울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마음이 아프더라. 휴대폰의 볼거리, 게임을 스스로 다 지우고 공부했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좌절하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팠어. 그런 날 이후 누워서 휴대폰하거나 앉아서 뭔가를 하길래 지나가다가 봤는데 지운 것을 다시 깔았는지 고대로 다시 하고 있길래 "ㅋㅋ" 그냥 웃고 지나갔었다.
우연히 너가 엄마에게 말하는게 들렸다.
"엄마.죄송해요. 그냥 다시 했어요. 근데 잘할께요."
"그래. 너가 알아서 잘 해.."
보통때같으면 대화에 끼어들어서 한마디 더하며 상황을 망가뜨리던 아빠인지라 엄마에게 솔직히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받는 너와 그런 너를 바라보고 따스한 손길로 위로하는 엄마와의 시간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있었다. 그런 상황을 견디면서 느낀 것은 '딱 하나'였다.
아빠가 학교 다닐때 뭔가를 해낼때마다 준비를 잘 했는데 결과가 안 좋거나 마음은 가득하나 잘 준비하지 못해서 애당초 실패했던 것들에 대해 엄마 아빠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그래. 다음에 잘 하면 되지"라고 위로를 받았지만 아빠 스스로는 자책을 많이 하면서 아빠 자신을 미워했단다. 그래서, 머리를 깎던가 좋아하는 것들을 안 먹거나 잠을 안 자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고,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시간을 뺏긴 것을 한탄하면서 무조건 아무것도 안 하는 걸로 아빠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단다. 스스로 작아지도록 만들고 스스로 위축시키면서 엄청 미워했단다.
그런 모습과 조금은 닮은 것같은 너를 느끼면서 "안 그래도 된단다."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모두 안하겠다고 지우고 극한의 구석으로 내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아도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단다. 물론 노력과 준비는 충분히 해야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결과에 따라서 내 자신을 극도로 몰아붙이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거란다. 아빠가 학교다닐때 수도없이 소중한 나에게 했던 실수를 하는것같아서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단다.
나를 몰아붙이고 비하하고 자책한다고해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더라. 그냥 있는 상황 속에서 다시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건강한 내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들더라.
부탁해
실수하거나 엉망인 결과가 나왔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자책하지 말았으면 해.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더 잘하겠다고 의지를 더 세워보는 것에 힘쓰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기억해
소중하단다.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해서 조그만 실수를 했더라도 여전히 소중하다.
비싼 보석을 들고 있다가 떨어뜨렸다고 보석이 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한번 실수를 하고 시험결과가 폭망했다고 하더라도
너는 여전히 소중하고 멋있단다.
학창시절의 아빠가 했던 것처럼 실수마다 내 자신을 비하하거나 미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소중한 너니까.
사랑하고 사랑해.
Vamos!!
아빠보다 키가 커가고 손발이 커지고 목소리도 더 멋있어지고
아빠가 못하는 바이올린도 하고
아빠보다도 축구도 더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보다 훨씬 좋은 미래를 위해 달리고 있는 너
응원하고 싶다.
정말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학교다닐때 실수하거나 실패만 하면 자책하고 내 자신을 극한으로 미워하면서 괴롭혔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나중에 커서 느낀 것은 절대로 그럴 일이 없으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하할만큼 소중하지 않은 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괴롭히고 미워했던 시간이 야속했습니다. 요즘 큰아들이 학교 성적등등으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몰아세우며 자기가 좋아하는 휴대폰 볼거리들을 싹 지웠다가 다시 깔았다가 또 싹 지웠다가를 반복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안쓰러웠습니다.
부모를 닮아 태어난 아이
"누구 닮았길래 이런거야?'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짜증을 냈던 날들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제가 가진 모습보다 아내가 가진 모습중에 미운 것이 아이들에게서 보일때면 들으라는 듯 투덜거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춘기 문턱을 하나둘씩 넘기 시작하면서 제가 미워하는 제 모습이 아이들에게서 보일때마다 난감합니다. '누구 닮아서 이래?"라는 말을 못합니다. 그런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내 아이는 저런 모습에서 얼른 빠져나와서 본인을 미워하고 몰아붙이는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신기합니다. 부모가 보여주지 않는 모습도 닮아서 나오는 아이들..
큰아들은 남자다.
큰아들은 남자라서 그런가요? 제가 집안에서 보여준 나쁜 모습도 전부 답습해서 그대로 두 여동생에게 하고 있는 모습들에 가슴이 찢어지게 아픕니다. 가만 보면 큰아들의 과격한 모습은 모두 가정에서 제가 했던 실수를 아기때부터 보고 있었더니 이제는 그대로 하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남자는 저뿐이니까 아빠인 저를 알게모르게 답습해서 자연스럽게 그러는가 봅니다.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엄청 조심해야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큰아들을 보면서 아픈 마음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빠처럼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자책하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늘 모자란 행동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발행하면서 저를 더 바꿔가기로 노력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심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바람없이 연 날리는 남자Dd)의 편지
출처:사진: Unsplash의Ashwini Chaudhary(Mon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