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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둘째딸에게..+24

걱정이네.

사랑하는 둘째 딸에게.


난 너를 볼 때마다 점점 더 나와 비슷한 면이 많이 보여서 걱정이란다. 너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닮아서 혹여라도 나와 같은 삶을 살까 봐 걱정을 한단다. 나와 같은 몸매가 될까 봐 걱정도 하고 말이야. 아빠는 참 별거 아닌 걸로 널 걱정하는 것 같아.



너랑 요즘 싸우는 것은.. 사실 싸운다기보다는 너를 혼내는 일이 더 많은 것이지.

팔이 부러진 덕분에 활동량이 적어서 점점 살이 찌는데 계속 간식을 찾고 있길래 혼내고

눈이 갑자기 나빠지고 있어서 속상한데도 컴컴한 방에서 몰래 휴대폰하고 있고 말이야.

1등이 아니라 해야 할 숙제, 공부라도 하라고 했더니 그런 것은 안 하고 매일 꾸미는 것만 궁금해하고 말이야.



그런 너를 보면서 나중에 아빠 같은 일하고 싶다면서 허황된 꿈을 꿀까 봐 늘 노심초사하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오빠도 자꾸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너무 차이가 나고 공부 못해서 속상하다면서 뒤늦게 엄마보고 공부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난 네가 한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 싶으면서도 초등학교 6학년에 대해서 너무 성숙한 아가씨로 봤다는 반성도 했다. 너무 높은 기대치로 너를 보면서 많이 혼냈던 것 같은 느낌이야.



엄마랑 저녁식사 후 밖에 운동삼아 걷고 온 날이었지. 엄마는 공부하는 오빠가 기특해서 오빠가 좋아하는 과자를 샀고 너희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샀지. 오빠 공부를 도와주고 나서 기분 좋게 먹고 싶다는 말과 함께 모두 냉장고 안에 넣어뒀지. 엄마는 오빠가 힘들어하는 몇 과목을 짚어주느라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도 몰랐던 시간, 너의 질문에 놀랐다.


오빠. 언제 끝나요?


늦게까지 공부하는 오빠, 공부를 봐주고 있는 엄마가 걱정되어서 물어보는 줄 알았어. 늘 너는 아빠, 엄마도 생각하고 오빠나 동생도 챙기려는 등 마치 형제 중에 가장 큰 딸 같은 행동을 하길래 걱정 말라고 내가 대답했지.


"응. 곧 끝날 거야! 걱정하지 마라!! "

그런데,

진실은 전혀 의외였단다.


"근데 왜?"

'어? 과자 먹고 싶어서..."


그 대화를 듣고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너의 솔직한 마음을 듣고 나서 웃었다. 초등6학년이고 사춘기가 이제 시작되는 나이라는 생각에 중학교 언니들처럼 너를 대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너의 대답을 들으면서 그런 눈높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



오빠 공부 끝나면 같이 먹자며 산 신기한 과자를 너무 먹고 싶어서 "언제 끝나요?"라는 질문은 진짜 초등학생스럽더라. 정말 순수한 질문이었어. 아니 초등학생이지만 엄청 순수했다. '걱정'이 아니라 '너무 먹고 싶어서'라는 것이 너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너무 귀엽더라. 처음에 듣고 어이없어하면서 정색한 거 미안해.



아빠가 너와 눈높이를 맞추고 네가 곧 중학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너를 아이가 아니라 아가씨로 대우해 주면서 지내보려고 했던 올해, 벌써 반년이 지나간 시점에 아빠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을 한단다. 몸은 아가씨가 되어가고 있지만 마음과 생각은 아직 초등학생 이쁘고 귀여운 아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잊지 않으려고 해. 네가 말하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어. '이그! 초6인데 그런 생각을 하니!!'라는 생각과 행동은 냉큼 지워버릴게.


미안!

너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

네가 하는 말 그대로

이해하고 생각하면서 너를 사랑할게.


여전히 아빠를 무서워하고 눈치 보지만

안 그러고 천진난만하게 내게 안기도록


아빠 많이 노력할게.


간식을 좋아해서 살이 쪄도 이제 초6인데 뭘.

크다 보면 빠지겠지모.


그냥 무조건 사랑하고 이해할게.

미안!!




아이는 몸만 변해갈 뿐 아직 아이였습니다.

오빠 공부가 끝나야 다 같이 간식을 먹기 때문에, 특히 원하는 과자가 냉장고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자꾸 오빠 공부가 끝날 시간을 물어보는 둘째를 보면서 진짜 처음에는 철없는 아이로 보고 정색을 했지만 생각해 보니 너무 귀여운 생각이고 아이다운 순수한 말과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둘째 딸을 너무 아가씨로 대우해주려고 하다 보니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아직은 아이인 둘째 달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더 이쁘게 바라봐주려고 합니다.



하지 말라해도 하더니 어느 순간에 저절로 안 하게 되긴 합니다.

둘째 딸은 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집니다. 공부보다도요. 언제는 네일아트를 하겠다면서 용돈만 생기면 네일용품을 다이소가서 사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그런 것좀 하지 말고"라는 말에도 몰래몰래 가서 사서 작은 가방 하나 분량으로 모았지만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 재미없다고 합니다. 아이돌 포카를 진짜이던지 가짜이던지 돈만 생기면 모으고 친구들과 하길래 시간 지나면 그냥 의미 없는 것이 된다고 그만 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느 날, 포카를 전부 모아서 동생을 주고 진짜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 몇 장만 가지는 것을 봤습니다. 아무리 "하지 마라"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가 생각했을 때 의미가 없거나 흥미가 사라지면 "그 길로 쓰레기통행"이었습니다. 괜히 잔소리를 하고 사는구나라는 후회도 하게 됩니다.



저의 걱정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아이는 어차피 삶이 계획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저 아이가 계획대로 커가도록 돕는 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만 둘째 딸이 저를 닮아가거나 제가 학교 다닐 때 관심 가지고 지냈던 것들을 그대로 하고 싶어 할 때 저와 같은 길을 걸을까 봐 너무 싫어서 자꾸 잔소리하게 됩니다. 그런 것은 사실 '기우'인데 말입니다. 아무리 하지마라 해도 할 거면 하는 거고 아무리 해라 해도 절대로 안 하는 거면 안 할 건데 그걸 인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제일 싫은 것이 저처럼 패션업종에 발을 들일까 봐 싫은 것입니다. 저처럼 전공하고 일하다가 나중에는 딴일 하면서 괴리감을 느낄까 봐서요. 아빠인 저는 이렇게 아직 부족합니다. 생각도 내려놓지 못하다 보니 아빠 닮아가는 것을 너무 싫어합니다.



오늘도 둘째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둘째 딸의 순수하고 아이 같은 마음을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런 아이와 지내고 있는 것도 감사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unsplash의 Henry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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