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사랑하는 막내딸에게
오늘은 너와 지내면서 충격도 받고 행복하기도 했단다.
무엇을 먼저 말해볼까? 좋은 소식 나쁜 소식중에 늘 우리는 좋은 소식 먼저 들으니까 행복한 소식 먼저 말해볼께. 집에 오니까 너가 울면서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어. 그리고, "학교 가기 싫다"라는 말도 들었던 것같아. 엄마도 너를 다독였지만 너무 속상해하는 너와 마음 아파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빠가 뭔가를 해주고 싶었어.
아무렇지않게 그럴때는 먹고 시작하자면서 엄마가 받은 맛있는 수박을 먹도록 해줬지!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도 먹게 해주고 말이야. 그러면서 마음이 가라앉고 기분이 좋아질 즈음에 너의 숙제를 확인했지. 숙제가 몇가지 물건중에 하나 선택해서 홈쇼핑으로 파는 상상을 하면서 10문장 만드는거였더라. 아빠가 널 도와주겠다면서 자청했는데 아빠 마음속으로 이정도는 도와줄 수 있다고 자신이 있었단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가장 먼저 너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면서 유투브를 열었지. 유투브에서 홈쇼핑을 검색해서 함께 조며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했지. 너는 유투브 본다고 좋아하더라. ' 무슨 멘트로 시작하나? 무엇을 강조하나? 어떤 말을 하기에 살 수 밖에 없게 만드나?'를 확인하면서 힌트를 가져오고 있었지만 너는 텔레비젼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신나서 어느새 울음은 그치고 즐기고 있더라. 유투브 홈쇼핑 방송을 보고나니 10문장 적을 생각에 두렵기보다는 아빠랑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눈빛이 반짝반짝으로 바뀌어서 기뻤다.
그리고, 아빠가 가이드만 해주면 한문장씩 쓱쓱 써내려가는 모습에 점점 행복해지더라. 너가 힌트만 주면 해내는 모습이 이쁘고 아빠가 뭔가를 도울 수 있다는 마음이 교차하면서 아빠는 구름 위를 걷는 것같더라.
모두 작성하고나서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사진 찍어 보내주라고 했지. 그제서야 어렵고 힘들어서 울기도 했던 숙제가 끝났지. 완료하고 노트를 접는 너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단다. 그 얼굴을 보는 아빠도 굉장히 흐뭇하고 어깨가 거실 천장을 뚫을 정도였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로 너에게 받은 시간이 좋은 소식이다.
그럼, 이제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아팠던 일을 말해볼까? 너는 당황하고 아빠는 마음으로 울었던 일인데.
너가 온가족에 대해서 그림 그린 것인데 엄마는 크게 그리고 엄마의 모습, 엄마가 한 일, 엄마가 너에게 느끼게 해주는 사랑등등이 적혀있었어. 그런 엄마 발 밑에 아가같은 그림이 아빠였었어. 아빠에 대해서는 하는 일도 모르고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다고 적어놓았더라. 한페이지를 가득 장식한 엄마 그림과 엄마 발 밑에 조그맣게 그려넣은 아가같은 아빠 모습에 서운한 것보다 아빠가 하는 일, 아빠 마음등등 아는게 없다고 써 놓은 것이 너무 슬펐단다. 그걸 보고 황당해하는 너를 느끼며 얼른 말했지. 너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어! 이게 모야? 아빠야? 아는게 없어?"
"네. 아는게 없어요. 아빠는 모르겠어요.'"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너는 진심으로 말한 것이고 아빠는 "너는 나를 알텐대"라는 마음으로 물었지만 진심의 대답을 이길 수는 없었단다. 생각해보면 아빠가 잘나간다고 할때는 너희들을 데리고 다니고 직장이나 거래처와 미팅할때도 데리고 다니기도 했고 회사동료분들과 만나서 인사하면 용돈도 받곤 했는데 아빠의 인생이 점점 빠른 쇠퇴길을 걷다보니 이제는 너희들을 동반해서 출근하면서 사람들에게 소개할 정도의 일터를 다니고 있지도 않아. 심지어 책상도 없는 곳에 다니기도 한단다. 매월 생계를 위해 필요한 돈을 부족하지만 만들어내기위해서 하다보니 아빠의 커리어, 너희들이 자랑스러워할 정도의 직장을 다니는 아빠도 이제는 아니라서 말이야. 그러다보니 맨날 너희가 "아빠 무슨 일해요?"라고 말하면 "그냥 일'이라 말하고 "데려가줘요!"라고 말하면 "아빠 일하는 곳은 너희는 출입이 안 되는 곳이야'라는 말만 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출퇴근해도 너희가 느끼는게 아무것도 없는게 당연하지. 보여준게 없고 설명해준게 없으니까. 아빠가 떳떳하지 않은 건 아닌데 창피했고 너가 친구들과 말하다가 창피할까봐 아예 안 말했지모. 요즘에는 명함도 없어.
일뿐만 아니라 아빠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겠다 싶네. 기분이 좋으면 간식도 사주고 함께 놀아주고 같이 영화도 보고 하는데 기분이 나쁘거나 걱정거리가 생기고 바쁘면 "아빠 할 일 좀 할께!"라면서 너희들을 우선순위에서 배제시키는 것처럼 행동하니까 막내인 너는 특히 아빠를 모르는 것도 맞겠다 싶어.
아빠는 좋은 가정을 만들기위해서 노력도 하고 공개적으로 반성문도 쓴다면서 말하는데 정작 너희들은 아빠가 그렇게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점점 더 너희들과 교감은 적어지는 것같아. 그러다보니 너희가 아빠의 속마음도 모르고 하는 일도 모르니까 "아빠는 모르겠어요."라고 하는게 맞긴하네.
아빠는 너가 그린 그림에 엄마보다 작고 아는게 없다고 적어놓은게 화나거나 속상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과 느낌으로 막내딸이 지내고 있다는게 미안했단다. 미안한 정도가 "미안!"정도가 아니라 "정말 미안하다. 진짜 미안하다."정도란다. 막내딸이 이렇게 엄마에게만 의지해서 지내도록 무심하게 놔둔 아빠가 반성을 했단다.
돈 잘 벌어오고 밖에서 일하느라 바빠서 집에 거의 안 들어오는 아빠는 자녀들이 원하는 것이라도 맘껏 무한정 해주니까 그거라도 다행이지만 아빠는 돈은 적게 벌어서 하고 싶은 것은 하나도 못해주고 집에 자주 같이 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 수도 없을만큼 지내는 것이 너의 '눈높이에 맞는 행복'은 하나도 없었다고 느꼈어.
미안해!
사랑만 받고 배불러야할 막내딸이
엄마에게 집요하게 붙어다니는 것이
아빠에게 못 받는 사랑을 채우려고 그런다는 것을 몰랐단다.
미안해!
아빠가 원하던 삶이 아니라서
스스로 위축되다보니 너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아빠가 '그림자'처럼 느껴졌겠다.
이제는 솔직하게 하는 일을 말하고
너를 더 사랑해주면서 함께 지내자.
오늘은 너와 함께하면서 행복했던 것과 미안하고 속상했던 것을 함께 나누어보았다. 아빠와 함께 하면서 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많이 생기도록 노력하는 아빠가 될께. 희비가 엇갈리는 잠시였지만 '찐사랑'을 원하는 너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이어서 고맙기도 했단다. 사랑해. 막내야!
막내는 여전히 고프다.
막내는 여전히 사랑이 고픈 것이었습니다. 큰아들, 둘째딸을 챙기다보면 '무조건 사랑'받아야 할 막내딸은 늘 부족한 사랑을 받아서인지 늘 목말라 보입니다. 늘 그런 느낌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막내딸이 그린 그림을 보니까 정말 정학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막내딸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글과 그림을 통해서 정확히 알았습니다. 많이 노력하는 아빠가 되도록 또 다짐했습니다.
막내딸은 여전히 저를 사랑해줍니다.
아빠가 밉고 싫어서 아빠를 적게 그리고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고 적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아빠를 사랑하기에 아빠에 대해서 이제는 더 알고 싶은 것입니다. 아내를 처음 만나서 사랑하는 마음을 품었을때 아내의 모든 것을 대화하면서 알고 싶었듯이 막내딸은 이제 세상을 알아가고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교감'의 필요와 묘미를 아는 것같습니다. 막내딸과 더 대화를 많이하고 필요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아빠인 저를 더 많이 알도록 해주려고 합니다. 같이 어딘가를 갈때마다 은근히 옆에와서 손을 잡는 막내딸을 더 사랑하려고 합니다.
제게 가정은 사랑입니다.
만들어진 가정을 통해서 자녀들과 지내고 있고요. 자녀들과 지내면서 배우는게 많습니다. 자녀들이 내 계획대로 크도록 다그치거나 흔들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꾸 저와 같은 삶을 살까봐서 조바심에 자꾸 혼내거나 다그치는 것같습니다. 자녀들과 살면서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저는 퍼석퍼석한 건빵같은 마음이 폭삭폭삭한 카스테라처럼 변해가는 것같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부드럽고 온유한 아빠로 변해가는 것같습니다. 가정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건빵같은 남자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행입니다.
오늘도 저의 일상속 제 모습을 읽어주시고 막내딸에게 사과하고 잘 해보겠다고 다짐하는 저를 만나셨습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제가 드러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이런 모습도 제 모습이고 이런 모습을 공개하고 반성하며 고치려고 하는 과정에 대해 박수쳐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덕분에 공개하고 고치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상입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없이 연 날리는 남자Dd)
출처: unsplash의 Arthur Ts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