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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둘째딸에게. +26

많은 거 싫어요

사랑하는 둘째딸에게..


너와 대화하거나 너에게 얘기할때는 이제 슬슬 조심하게 된단다.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들이 너의 마음에 생각지 못한 상처를 주더라고. 그 상처를 우연히 너의 말을 통해 알고나면 아빠는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했어. '아! 어쩌지? 그렇게 느꼈구나! 큰일이네'라는 생각이 앞서고 말이야.



얼마전에 너와 잠깐 걸으면서 너가 한 말을 듣고 아빠는 충격을 받았어. 물론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아빠는 '또 내 탓이구나!'라면서 자책을 하거든. 한편으로는 키가 커갈수록 생각지못한 깊이있는 생각들도 한다고 느끼고 있긴한데 이번 대화내용은 아빠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길을 걸으면서 장난을 섞었지만 아빠의 진심을 담은 한마디에 '필사의 다짐'같은 너의 말에 너무 놀랐나봐!


"너는 일찍 결혼해~ 애도 많이 낳고 말이야. 재밌게 지내야지. 아빠처럼 늦게 결혼하지 말고!"

"싫어!! 그렇게 사는거."

'엥?"

"애 많이 낳는거 싫어!!"

"뭐라고? 우리 얼마나 좋아~ 싫어? 아이고!!"


아빠는 늦게 결혼한 것이 후회가 되서 너에게 일찍 결혼하면 좋다고 말하고 늘 시끌벅적하게 지내지만 그래도 삼남매와 사는게 싫은 것보다 좋고 행복한게 많아서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전혀 의외의 대답에 일단 놀랬지. 그래서 또 물었는데 이어지는 너의 대답에 아빠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단다.


"왜? 왜 애 많이 낳는게 싫어?"

"엄마는 우리 세 명 돌보느라 힘들어보여! 돈도 많이 들고! 아빠는 하고 싶은거 엄청 많은데 맨날 포기하는거같고"

"그래서 싫어. 일찍 결혼하고 애 많이 낳는거!! "


그러면서 했던 말은 그렇게 사는 것은 싫고 내 삶도 계속 유지하면서 아이를 챙기는 정도의 삶을 살고 싶다고 했지. 그래서, 선택한 것은 결혼은 하되 아이는 적게 낳는다고 했지. 그 '필사의 다짐'같은 계획을 들으면서 걷고 있는데 딱 드는 생각은 '부모 잘못'이라고 생각했어. 특히 '아빠의 잘못이 크다!' 라고 말하고 싶었단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거 하게 해줘요?아빠!" 그러면 "응. 그래! 뭔데?"라고 해주지 못하고 늘 "이거 하게 해줘요? 아빠!"라는 말에 "응. 한번 생각해보께. 이번달은 힘들거같아."라는 말을 늘 하고 사는 것이 늘 삼남매를 키우느라 돈이 부족해서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보였으니 돈을 아주 많이 벌어오지 못하는 '아빠 잘못'이지모.



엄마는 너희 삼남매를 생각하면서 각자의 성격과 취향을 존중해주느라 신경쓰면서 도와주는 모습이 늘 정신없고 힘들고 지쳐보였나보네.

아빠는 하고 싶은 것이 많긴해. 아직도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기위해서 엄마와 얘기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기도 한단다. 그런 모습이 너에게는 아빠가 늘 너희들 생각하느라 포기하고 사는 것으로 보였구나. 하긴 예전에는 너희들이 어리기도 해서 아빠가 하고 싶은 것은 은근히 하기도 했지. 그런데, 이제는 하고 싶더라도 아빠이기때문에, 남편이기때문에, 가정 상황에 맞춰서 하고 안하고를 과감하게 결정하고 있기도 한단다.


너의 말을 듣고 생각난 것들과 나의 무능함을 짚어보면서 '아빠의 잘못'이라고 정의내리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어.

뜨거운 물에 라면을 끓이듯 너는 어른이 되기위해서 숨고르기없이 바삐 커가고 있는 너,

진한 국물이 우러나도록 뚝배기를 긴 시간 끓이는 것처럼 천천히 살고 있는 아빠,

너와 나는 똑같은 목표를 향해서 살고 있는 것같아.


너는 어른이 되어 가고,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가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면서 혼자서 피식 웃긴 했는데...

사과를 하고 싶어졌다.



너희와 살고 있는 아빠가 분주해보여서 미안!

돈을 적게 벌다보니 가진 돈으로 너희가 하고 싶거나 해야할 것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있긴해. 그런 것도 얼마 안 되었단다. 그런 것도 너에 대한 아빠의 사랑이야.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아빠니까 그래도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아!


너희가 보기에 부모가 너무 힘들어보여서 미안!

결혼하면 자녀를 얻게 되고 부모가 되면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어보이지만 사실은 힘든 것보다 좋고 행복한 것이 많아서 후회되지 않는단다. 후회가 되지 않으니까 너에게도 이런 삶을 권했던 것같아. 이 행복을 너도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말이야. 단, 조심하긴 할께. 너가 보기에 부모가 행복하고 감사한 삶으로 느껴지고 부모처럼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도록 노력해야겠어.



너가 벌써 이런 대화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몰라서 미안!

이제 이런 너를 알았으니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할까 싶어지네.

곧 중학교를 진학할 너와 대화할 아빠도 수준높은 아빠가 되어야겠다 싶네. 생각보다 너의 마음 크기와 깊이가 엄청나네. 겉모습이 작을 뿐이지 너의 생각주머니는 이미 커져있네. 너와 잘 대화할 마음의 준비할께.



사랑하고 고맙다.

너가 오늘 눈 뜨고 투덜거리는 아침이지만 그런 너와 있는 자체가 고맙다.

사랑하고 사랑해


나의 둘째딸..




생각지 못한 것을 느낀 날입니다.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현실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둘째딸은 외형적으로 통통해서 무던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예민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더 상처도 많이 받고요.그래도 함께 살면서 나중에 결혼에 대한 생각, 자녀에 대한 생각을 욕심낼 줄 알았습니다. 전혀 아니었습니다. 완전 반대로 결혼도 아이를 많이 낳는 것도 자기 시선으로 지금의 가정 형편을 생각하다보니 절대로 이렇게는 안 살고 싶다고 합니다. 철저히 제 잘못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을 많이 낳았으면 그에 맞게 열심히 돈 많이 버는데 최선을 다하고 자녀와의 관계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아빠여야하는데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15년이 생각나며 미안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수진님의 이야기는 저를 울게 했습니다.

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안 들리지만 그의 연주를 들으면 바다가 느껴진다는 평을 듣는다고 합니다. 매순간 의문이나 궁금한 것이 있거나 고민스러울때 그와 대화하면서 평안함을 준 사람은 아빠였다고 합니다. 그런 애기를 듣고 있자니 저는 또 그런 아빠와는 반대여서 당황스럽고 민망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기보다는 늘 불안감을 줬고요. 아이가 원하는 책을 읽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아니라, 제발 '이 책' 좀 읽어봐라.라면서 다그치기만 한 것같습니다. 영향을 주긴 했는데 좋은 영향력을 주고 항상 기대고 싶은 아빠가 아니라 아빠랑 있으면 또 혼날까봐 수시로 불안하다고 하니까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자녀에게 롤모델을 못 만들어준 것같아서 미안했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저를 자책했던 날입니다. 삼남매가 함께 어우러져서 실컷 놀고 즐기고 웃기도 하지만 때로는 엉엉 울면서 혼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서로 부대끼며 사는 삶이 그래도 돌아보면 즐겁고 행복하니까 이런 가정을 만들고 싶어할 줄 알았습니다.

정반대였습니다. 여동생과 한 방을 쓰다보니 자기 공간, 자기 물건,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지내야하니까 그에 대한 불만, 불안, 불편이 누적되어서 항상 서로 여차하면 다투기도 합니다. 그런 것에 대해 관대하게 용서하거나 배려하지 못한만큼 '힘듦'을 표출하느라 바쁩니다. 어쩔때는 그럴 힘도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잘 견뎌주고 있는 삼남매, 오늘도 학교를 다녀오겠다고 가방 메고 나갈 준비를 하는 삼남매에게 '고맙다'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말을 통해 마음을 알고나면 저의 마음은 이미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마음으로는 이미 무릎을 꿇었고요.

그럼에도 저는 이런 편지를 쓰면서 알게된 아이들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고 그 마음을 배려하기위해서 달라진 아빠가 되려고 합니다. 이런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손길에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의 편지

출처: unsplash의 alexander m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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