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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에게. +23

고개를 들 수 없네요.

사랑하는 아내에게.


요즘 잠을 거의 못 자고 잠을 자다가 깨면 다시 못 자고 한숨만 쉬서 아침이 맞이하는 당신을 옆에서 보면서 미안함에 등을 돌리곤 합니다. 결혼해서 살아오는 동안 내 고집을 부리는 시간들로 채운 것도 미안해지고요.



당신이 한숨으로 채우느라 잠을 못 자는 이유는 빚은 많은데 갚을 돈은 적고 내가 많이 벌지 못하거나 아예 못 버는 달에도 다른 일을 구했는데도 골라서 일하는 탓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힘겨운 월말을 보내고 나면 당신은 숨통이 조여 오는 고통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지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미안함이 앞서면서 자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나는 재주가 없다. 고집만 있다.'라면서 하늘을 보고 멍하니 있기도 했고요.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숨 가쁘게 일하고 출장 다녀오는 발걸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요. 내가 가진 재주라는 것들은 아이들과 낙서하며 놀아줄 수준의 그림 실력이고요. 아이들이 피아노 칠 때 옆에서 같이 맞춰서 쳐 줄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투덜거리지 말고 채르니50까지 칠 걸 그랬어요. 두 딸들과 뛰어줄 정도의 체력과 큰아들과 축구공 받아주고 잔디밭을 3시간 이상 뛰어다닐 정도이니 대단한 것들도 없네요. 메시지가 들어간 고퀄리티 영상을 만들 수준도 아니고 아이들이 "오우"하고 놀랄 정도로 짧은 짤 만들어낼 수준밖에 안 되고요.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아이들이 꼬맹이일 때는 버라이어티 하고 다재다능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 같아서 은근 우쭐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해줄 필요가 없어지니 대단한 재주가 아니네요. 이제는 돈이 많이 필요한데 돈과는 연결되는 재주도 아니고요.



할 수 있는 것은 있어도 돈과는 연결이 안 되는 재주만 가진 남자예요. 한마디로 돈 버는 재주는 없네요. 그 와중에 돈 잘 주는 회사는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관두고요. 돈을 적게 준다는대도 흥미가 있고 색다른 일이라면서 적은 급여에고 억지로 들어가서 고생만 하다가 나오고 그러네요. 가진 것은 '돈 버는 재주'보다 남부럽지 않은 '고집'만 있는 남자였어요.



'고집'에 추가된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은 기어이 하는 '뚝심'또한 변치 않더라고요.

아이들 섭게 혼내지 말라는데 여차하면 아직도 혼내고요.

을 수 있을 것 같은 회사라면서 당신이 '제발 잘 붙어있어요'라는데 퇴사하고요.

교육만 받으면 바로 일 있다고 소개받아서 교육받고 실습하느라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데 '그런 일 애매하네요.'라면서 주저앉아버렸어요.



당신의 한숨과 한숨이 가득한 잠 못 이루는 밤을 떠올리며 잠시 스스로를 짚어보면서 '창피'했어요. 미안했고요. 당신이 결혼해서 한 번도 맘 편히 잔 적이 없다는 것을 듣고는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먼저 일어나서 뭔가를 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자다가 새벽녘에 잠든 당신이 나를 챙기려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안 해도 된다면서 자라고 했지요. 새벽에 일어나서 나갈 때도 그냥 알아서 챙겨 먹고 나가겠다고 하고요 일어날 시간보다 더 일찍 알람을 맞춰놓아서 당신이 깨서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에요. "라면서 잠투정 같은 짜증을 부릴 때면 '미안해요'라면서 사과를 하곤 했어요. 떳떳하지 못한 남편이 아니라 늘 맘고생하느라 잠 많은 사람이 잠을 설치길래 배려를 많이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은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배려가 되기보다 오해를 만들어서 '속상'했던 날도 있었어요.



새벽에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들어와서 보니 나 빼고 모두가 곤히 자고 있고1시간 후면 일어날 시간이어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을 가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나오다 보면 뒤척임 소리에 깨서 잠을 설칠까 봐서 그냥 거실에 있었어요. 이른 새벽에 나간 것이라서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서 졸았네요. 그런 모습을 당신이 보면서 화를 냈지요.

"왜 여기서 자고 있는지? 곧 출근한다면서 아침은 뭘 먹었는지? 왜 냉장고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지 않고 그냥 먹었는지?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죄책감 드는데 왜 그러는지?"


난 아무 말하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당신 아침잠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라고 했다가 당신이 또

"당신이 이렇게 하면 죄책감 들어요 왜 그래요...."



라면서 우리 대화는 끝이 났어요 내가 이른 아침에 다녀온 것이 큰 자랑도 아니고 내세울 일도 아니었어요. 사실 당신으로써는 전날 너무 힘든 스케줄을 감당하고 난 다음날이라서 가능하면 쉬고 여유 있게 출근하도록 수차례 회유했는데 '고집'부리고 다녀왔지요. 그 자체만으로도 속상했을 것이고요. 그렇게 다녀왔으면 방에 들어와서 자야 하는데 거실 식탁에 걸터앉아 자고 있는 내 모습에 마음이 아픈 것도 이해가 돼요. 내가 당신을 배려하겠다고 전전긍긍한 노력은 빛을 잃고 오히려 당신 마음에 분노만 일으키게 했다는 것이 마음 아팠어요



새벽에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맥도널드에 들러서 맥모닝 세트를 사서 다들 먹고 나가게 해 줄까? 뜨뜻한 국물밥을 사서 먹고 나가게 해 줄까? 새벽에 나온 빵을 사서 다 같이 뽀송뽀송한 식감을 즐기며 피곤한 하루이지만 기분 좋게 시작하게 해 줄까?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운전해서 집으로 오다가 '아니다'라고 날려버렸었어요. 차에 기름이 없다고 경고등이 들어와서 주유소에 갔는데 삼성페이가 먹통이 돼서 조용히 차를 끌고 나오면서 우리에게는 지금 그럴 돈이 없음까지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쓰는 편지는 아니에요. 의류회사 다니면서 좋은 옷들을 나의 가족들이 입도록 해주고 싶었고 출장 다닐 때마다 거기의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도록 선물로 사 오는 아빠이고 싶었고요. 방탕하게 돈 쓰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좋을 것은 과감하게 투자하듯 결제해 주는 아빠이고 싶었어요. 남들처럼 모두 즐기는 삶은 아니지만 꼭 해야 할 일은 주저 않고 할 수 있는 남편이고 싶었어요. 어느 연예인이 말한 것이 생각나네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까?" "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이제 눈 망설이지 않고 소고기를 먹을 정도는 됩니다. 친구에게 원하는 만큼 소고기를 사줄 수 있는 정도는 되고요. 이것만 해도 처음에 비하면 저는 성공한 것이지요.'라는 말이 맘 깊숙이 와닿았습니다.



"해본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뿌듯해하는 마음보다 해주지 못해서 흘린 눈물이 많은 우리"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어서 미안해요.


요즘 들어 더 돈이 안 되는 일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집중시키면서 지내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발 좀 내 말을 들어줘요. 남편"

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래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고. 나는 이런 초라한 놈이 되었네"라면서 자책하는 내 모습에 나도 속상하기도 해요. 그래서 더 미안해요.


늘 미안해하지만 이번에는 더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곧 대박히트를 쳐서 인생이 바뀌는 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자라고 '과대망상'하지는 않아요. 다만 당신이 빚 갚는데 맘고생하느라 밤잠을 설치지 않을 만큼! 삼 남매가 꼭 하고 싶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면 한 번쯤 하도록 해줄 수 있는 남편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고집이 남자의 자존심인줄 알았어요.

그 고집은 남자의 자존심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가시였어요. 어쨌든 간에 가시는 뽑으려고 노력할게요.


오늘도 나와 살고 있어서 고마워요.

나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 살기에 살아내고 있네요.

꼭.. 소고기 주저하지 않고 먹을 정도만이라도 해볼게요.

늘 고마워요.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 unsplash의 altin ferr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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