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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비행기 타는 아빠?

인천공항 2

"아빠는 매일 혼자만 비행기 타!"

아이들은  나한테 종종 부러워하며 투덜거렸었다.

이제는 인천공항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또, 아빠가 일하면서 비행기 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도 되었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특수업무를 했다.

매일 공항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일반 여행객이 보기에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인천공항 '상주직원'이었다. 정장 유니폼을 입고 출입카드도 목에 걸고 다녔다. 승객들이 안 다니는 통로를 통해 입국장과 출국장을 드나들었다. 야간 근무 때 비행기와 활주로가 보이는 게이트에 앉아서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들에게 공항내부와 각양각색의 비행기들을 보여줬다. 다양한 국적 승객들과 만나면서 알게 된 다양한 언어들을 조금씩 알려주기도 했었다.



나는 특수한 업무를 하지만 항공사 직원은 아니라서 비행기를 매일 탈 일이 없다. 보통 때는 탑승교를 거쳐 비행기 문 앞에까지 가고 특수 상황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비행기 내부로 진입하기도 했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공항과 비행기를 사진으로 최대한 많이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비행기가 마치 지하철이나 마을버스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중에 비행기 타고 여행 갈 거니까 많이 봐둬!!" 

"에이. 맨날 사진만 보잖아."


하도 사진만 본다고 그래서 인천공항 전망대에서 실제 비행기를 구경시켜 주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을 공항에 데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공항 활주로가 보이는 전망대로 올라가면서 기분이 좋아서 씩씩하게 올라갔다. 하늘은 쾌청한데 바람이 세게 불고 쌀쌀했다. 아이들이 춥다고 '가자'그러면 어떡하나 싶어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자!! 이번에는 실물 비행기다. 봐봐!!"

"와아. 진짜 비행기네. 엄청 크네."

"그냥 비행기 보기만 하는 거야?"

"응. 오늘은 보기만 해. 그러려고 왔는데........."

"언제 타? 우린 언제 타? "

"나중에 기회 되면 준비해서 다 같이 타고 여행 가자."

"언제?"

"..................."


"배고파. 집에 갈래. 추워!"    

".............."


아이들은 알고 싶어 하고 나는 말할 수가 없다. 사실 나도 확답할 수 없어서 할 말이 없다.

가슴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뼈만 남아서 공항 활주로의  세찬 바람이 나를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그러게. 맨날 안 태워주고 이러네.. 아빠가..."

혼자 중얼거리면서 전망대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왔다.



진짜 여행을 가는 활기찬 여행객과 뒤따라가는 캐리어들을 피해 가며 "배고프지? 얼른 밥 먹으러 가자!!" 하면서 아이들을 맛있다는 식당으로 데려갔다.  또 비행기를 보기만 했다고 허무해고 있었다. 아내도 오랜만에 공항에 오니까 결혼 전 아는 언니와 유럽배낭여행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고 했다. 아이들 모습에서 느껴지는 마음과 아내의 마음이 느껴지는 눈을 보고 있으니 아빠인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왜 괜한 일을 해서 아내와 아이들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가?' 자책하면서 메뉴를 골랐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인지 식당에서 먹는 음식 이 하나도 안 느껴졌다. 로켓 타고 우주로 날아가버리고 싶었다.



공항에서 일하는 동안 색다른 일을 하는 아빠로서 글로벌 감성을 심어주고 싶어서 자주 대화하고 비행기 사진을 보여줬는데 부작용이 생겼다.  긍정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행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했다. 여러 나라를 진짜 비행기로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제 비행기가 어색해하지 않고 잘 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제발 타고 가자는 말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아빠 결혼 전 꿈이었다. 애들이 크면 다 같이 세계여행.'이라고 마음으로 대답해 줬다. 아직은 예상할 수 없다.



야간 근무 후 피곤하고 허옇게 뜬 얼굴로 퇴근한 아침이었다.

어린이집 갈 준비하던  막내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아빠만 맨날 비행기 타고 다녀?"

"응?"

"아빠는 맨날 비행기타자나. 우리는 못 타고."

"아니야. 진짜!! 맨날 타지 않아."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도 웃는다. 두 아이들은 이제 그렇게 말 안 하는데 드디어 막내가 그러기 시작했다.

"아빠도 비행기 안 타! 비행기 다니는 곳에 일하는 거야. "  "으응." 아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내 말로는 떼를 쓰면 아빠가 짜증내거나 화를 내게 되고 그러면 분위기가 힘들어지는 걸 안단다. 그래서, 아이들이 몇 번 말해보고 반응 안 좋으면 더 이상 말 안 해버린다고 했다. 분위기가 나빠지는 것도 싫고, 거절감 느끼는 것도 싫어서라고 했다. 그 말에 내 마음 또 바닥에 주저앉았다. 창피했다.  



나는 더 이상 인천공항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빠만 비행기 타고 다녀?"라고 묻지 않을 줄 알았다.

아니다.

요즘은 학교에 아이들 반 친구들이 수시로 비행기 타고 가족여행 다녀오고 자랑하는 분위기 탓에  질문이 바뀌었다. 

질문은 바뀌었는데 나는 여전히 해줄 말이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빠만 매일 비행기 타! 우리는 언제 타?"

"..............."




아이들이 조금 더 크니까


"아빠 우리는 언제 비행기 타고 놀러 가?"
"..........."



질문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대답은 시원하게 해주지 못한다. 왜 대답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하는지 아이들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돈이 넉넉하지 않으면 비행기도 못 타고 여행도 못 간다는 것을.. 요즘 유행하는 '개근거지'라는 말이 지금 상황과 맞물리며  "아빠로서 미안함"이 수시로 생각난다.  "아빠도 이렇게 지낼지 몰랐단다. 내가 안 하더라도 너희는 꼭 하게 해줄게." 마음으로 약속하며 혼자 조용히 리를 피하곤 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괜한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희망고문'같으니까 막연히 꿈꾸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나도 현실적으로 올해 해외여행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당장 남들처럼 비행기 타고 여행 가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주려고 온갖 여행 유튜브를 챙겨서 함께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지금 노력해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고, 모두가 비행기 타고 해외에 나가 볼 기회도 만들어야 한다.  

마음이 조금 더 조급해진다.  조급해져서 또 쉽게 짜증내거나 화내는 아빠가 되지 않도록 잘 챙겨서 지내려고 한다.



출처:  UnsplashLucia Ot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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