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
사랑하는 그레이스에게
너를 생각하면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귀엽고 좋은데 어떤 면은 이해가 안되서 아빠가 종종 화를 냈었어. 그랬던 순간들을 생각하다가 새롭게 느낀 것이 있어서 적으면서 너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과도 해볼까해. 아빠가 말로는 맨날 사랑한다면서 핀잔만 늘어놓은 것도 사과하고 말이야.
너는 항상 뭔가를 만드는 과정을 즐기고, 맛있는 간식이나 음식을 먹고 즐기는 식감, 무엇인가를 만지다가 느끼는 감촉을 통한 쾌감들을 즐기면서 지내는 것같아. 그럼 것들은 모두 이해가 되는데 어릴 때부터 너만 동화책을 읽는 것을 아예 싫어했어.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 신기한 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은 재밌어하면서 듣더라. 한글을 배우면 네가 직접 책을 읽는 것을 즐길 줄 알았어. 오빠가 책을 좋아해서 너도 그럴 줄 알고 여기저기 책을 얻기도 하면서 너를 위해 책을 준비해놨었단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너가 책을 읽을 줄 알게 되었는데 책을 하나도 안 읽는 거야. 읽는 것은 학교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들, 꼭 읽고 소감을 적어야 하는 것들만 읽는 거야. 어른들이나 선생님이 추천하는 그 외의 책들은 절대로 읽지 않더라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점점 마음이 속상해지더라.
책을 거의 안 본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책상에 앉아서 첵도 안 읽고 공부도 안 하더라고. 책상에 앉아서 몰두하고 있을 때를 기특해서 다가가보니까 찹찹소리를 만들며 ㄱ슬라임을 만지고 있고 포카를 정리하거나 네일아트를 하고 있더라. 아빠 마음에는 점점 화가 나더라고. 걱정도 물론이고.
그러면서 너와 대화를 하거나 서로 돌아가며 책을 낭독할때 너만 더듬거리면서 읽길래 화를 냈었지. "책을 안 읽으니까 그렇지!! 책 좀 봐라!"라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어. "도대체 책을 왜 안 읽을까? 올해 초등 6학년인데 아직도 더듬거리면서 책을 읽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라면서 말하기도 하면서 늘 너를 곤란하게 몰아세웠는데도 책을 안 읽더라고.
오빠가 방구석에 누워서 책을 보고, 막내딸이 과학만화를 10권이나 쌓아놓고 읽고 있는데 너는 책상에서 또 슬라임을 하고 있길래 진짜 엄청나게 혼냈더니 너가 드렇게 말하더라.
"아빠! 저도 책 읽어요! 꼭 읽어야 되는 책은 읽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괜스레 더 화가 나면서 잠시 밉기도 했어. 아빠가 너에 대해 기대하면서도 걱정을 너무 많이 했나 봐. 맨날 새로운 간식으로 재미를 즐기게 해 줬더니 늘 새로운 간식을 찾아서 무인상점을 다니고, 급기야 마카롱, 쫀득 마시멜로 간식 등등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아빠 마음은 무겁기만 했단다. 그러다 보니 그런 것을 만들고 하루를 보냈다면서 즐거워하는 너를 보면서 '뚱뚱해질까 봐! 공부는 안 하고 먹는 거 연구하고 요리할까 봐!' 걱정이 커지니까 '잘했다~'라는 칭찬보다는 "응. 그래! 책은 좀 봤니?"라면서 찬물을 끼얹는 내 모습에 스스로 당황스럽더라.
그러다가 어느 날, 너가 책상에서 노는 모습을 보다가 스치는 생각에 편지를 쓰기로 했어.
무슨 생각이게?
너가 들으면 아주 기뻐하면서 환호성을 지를만한 일이야. 아빠가 실수를 하거나 엉터리로 뭔가를 할 때마다 네가 '끼야호!'하고 웃더라. 뭐냐면 바로 아빠의 책 읽기 습관이야. 아빠가 이사를 가면 제일 먼저 도서관을 찾아 등록하고 희망도서를 신청하지? 어디 가더라도 가방에 책 한 권 넣어서 다니지? 그런 아빠를 보면서 너네는 당연한 것처럼 느끼지. 그런 아빠의 어린시절은 정반대였어.
눈이 나빠지게해서 안경을 쓰려고 컴컴한 방에 엎드려서 종이신문을 읽긴 했지만 책을 즐겨 읽지 않았어. 아빠의 아빠가 맨날 "책 좀 읽어! 책을 읽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하셔도 안 읽었어. 그 돈으로 패션잡지를 사서 보면서 다양한 옷들을 보면서 그림 그리고 스크랩하곤 했었어. 삼촌이 아빠에게 " 형! 제발 책 좀 봐! 그렇게 안 보면 아는 게 없어!"라고 말할 정도로 책을 안 봤단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위해 책을 읽고 그 책에 감동받아서 작가의 쓴 다른 책이나 작가가 참고한 책들을 추가로 찾아보면서 꿀같은 재미를 느꼈지. 그때부터 독서습관이 시작되었어.
그렇게 작가의 다양한 책들을 찾아보고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읽은 책들을 찾아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미'를 느끼니까 점점 재밌더라. 사람들이 오늘 신문, 뉴스, 오늘 핫이슈인 유튜브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조금만 깊이 있는 내용을 물어보면 전혀 답을 못하더라. 평상시 책을 보거나 관련한 것을 많이 읽어서 알고 있는 사람만이 더 재밌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더라. 그런 경험들을 하다 보니 아빠도 슬슬 책을 읽게 되었어. 그러면서 점점 책읽는 즐거움이 뭔지를 알게 되었어. 책을 펼치면 온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야.
그런 재미를 느끼다 보니 삼 남매 중에 책을 거의 보지 않는 너를 보면서 늘 안타까워서 잔소리 같은 꾸중을 한 것 같아! 일단 사과먼저할게! 아빠도 어느 날 깨닫고 재미를 얻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가는 시간은 보물이 잔뜩 붙어있는 동굴을 들어가는 느낌으로 즐기게 되었다. 지금도 그 느낌은 변함없어. 각 서고에 가득한 다양한 책들을 그날 느낌대로 돌아다니면서 가져와서 읽는 시간은 네가 사탕이 사방을 꽉 채운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느낌일 거야.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들을 잔뜩 가져와서 옆에 쌓아놓고 읽는 것은,
마치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을 접시에 담아 옆에 놓고 차곡차곡 먹는 느낌이야!
그런 재미가 있단다. 그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더니 이사를 가도 제일 먼저 찾는 게 도서관이 되었어! 영화를 보다가, 노래를 듣다가, 길을 가다가 보이는 책은 꼭 사거나 빌려서 읽는 습관도 생겼지.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통해서 아빠가 매일 느끼는 속상한 마음,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과 닮은 모습, 달라진 아빠 모습을 생각해 보니 너를 생각하면서 했던 '걱정'은 불필요한 것 같아. 오히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미워하고 걱정하면서 너를 걸핏하면 꾸중했던 아빠가 사과만 하면 될 거 같아. 언젠가 너도 책을 즐길 날이 올 테니까
미안해! 미안하고 미안해!
때가 되면 음식을 만들던,
예술을 하던,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해할 날이 올 텐데!
아빠가 미안해!!
오늘도 사과하게 됩니다.
서툰 글이지만 말로 하다 보면 잔소리처럼 집중해서 듣지 못할 말들이 될 뻔한 말들입니다. 둘째 딸에게는 단어들을 모아서 입에서 뿜어내는 분무기 거품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글로 적어서 해봅니다. 사과먼저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사춘기의 문턱을 제대로 들어선 둘째 딸에게 그래서 사과먼저 했습니다.
그래도 걱정하고 걱정합니다.
저는 의류학을 전공했고 패션회사에서 10년 이상 일했습니다. 또한, 고대복식과 현대복식의 조화, 아트웨어, 초현실주의 의상들에 대해서 아직도 관심이 많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큰돈을 벌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지만 마음속은 늘 '하고 싶다!'가 맴돌기도 합니다. 다만, 딸들이 패션업종에 관한 영화를 보거나 예술 특히 의류와 관련된 일을 기웃거리려고 할 때는 '신중해라!!'라면서 애초에 철벽을 치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의 현실을 직면했을 때 느낄 상실감과 허무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는 않은 아빠의 좁은 마음 때문입니다.
책을 안 읽겠다길래 자기 전에 읽어주려고 합니다.
읽는 것은 절대로 싫고 졸리다고 합니다. 초6인 둘째 딸이 그럼에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자기 전에 아빠가 읽어주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틈이 나면 책을 읽어주려고 합니다. 그냥 책은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현실적인 얘기가 이어지는 책을 읽어주면 그 내용이 상상되면서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잠이 들어서 좋다고 합니다. 그 말을 기억하면서 지켜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제가 사랑하는 둘째 딸이 책을 읽으면서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아빠의 미련이겠지요.
이렇게 오늘은 삼 남매 중에 책 읽기를 유일하게 싫어하는 둘째 딸을 틈틈이 괴롭혔던 아빠의 반성과 사과를 담은 편지를 적어 보았습니다. 이 글들은 나중에 대상자들에게 모두 전달될 것이라서 공개되는 것이 창피하더라도 진심을 다해서 적고 있습니다. 매회 발행이 이어질 때마다 창피하지 않고 오히려 해야 할 숙제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느낌이라서 계속 해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용기를 내고 조금씩 더 노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인 제가 누리는 행복이자 감사입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 unsplash의 david lezc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