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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내에게. +4

조마조마

여보!

오늘도 당신에게 내 마음을 전해보려고 말보다 편지를 써 봐요.

얼마 전 당신과 대화하다가 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요. 결혼 전 당신이 약간의 불안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던 것을 기억하고 살고는 있어요.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이해하고는 있어요. 근래에 다른 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좋은 남편 만나서 우울감, 불안감, 조울증등이 사라지면서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걸 보면서 '당신 옆에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당신은 엄격한 조부모 대가족, 조금은 엄한 부모를 떠나 결혼 후 새 가족을 이루다 보면 불안감은 사라지고 자존감은 올라갈 거라고 기대했었어요. 그런데, 기대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당신의 불안감은 더 심해져서 늘 '왜 그럴까?'라면서 의문만 가지곤 했었어요. 당신에게 물었더니 당신이 말하길,


"당신이 안정감 있게 지내면 나도 안정을 찾을 수 있어요. 당신이 갑작스러운 퇴사, 입사, 실직을 반복하고 불안정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서 내 마음은 너무 힘들어요. 늘 불안해요." 그런 말에 내가 말했던 것은 사실 너무 날카롭고 잔인한 말이었어요.

"아니! 당신의 불안감은 당신 것이지요. 내가 만드는 상황은 내가 감당하면 되는 것이지. 나를 보고 당신 마음이 좌지우지된다면 당신은 늘 흙에 심긴 화초가 아니라, 물에 떠 있는 수초잖아요. 당신은 어디서 안정감을 얻어요? 뭐예요?"


라며 당신을 몰아붙이기만 했었어요. 당신의 불안감이 안정감으로 바뀌도록 안아주고 이해해 주면서 함께 발맞춰 걷는 남편은 아니었더라고요. 내가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하나도 몰랐던 거였어요. 장난처럼 어느 날인가 몇백 원이 모자라서 결제날에 '연체'나 '신용불량' 단어가 포함된 메시지를 우수수 받기도 했고요. 장기 실직으로 가진 돈이 거의 사라지고 통장잔고가 몇십 원만 남는 날도 있었지요.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당신은 결혼 후 10년 만에 다시 직장을 나가게 되었어요. 힘들고 버거운데도 함께 벌어서 빨리 지긋지긋한 빚을 갚아 나가자며 밤이면 끙끙 앓고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아픈 날들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자다 깨서 엄살 그만 부리라면서 짜증내기도 했었어요. 참 매정하고 전혀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편이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현실을 살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히 커져 갈 수밖에 없던 거였어요.



그런 것을 깨닫고 나서 당신과 사는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노력 중이긴 한데 엄청 부족하네요. 그렇게 노력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대견해서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요 근래 당신이 한 말에 그냥 마음으로 울었어요.


당신과 함께 저녁 외출이 있어서 집에 남아 있을 아이들을 위한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때였어요. 기다리면서 내가 너무 피곤하지만 자면 안 되기에 거실 벽에 기대서 앉은 채로 졸고 있었어요. 너무 피곤하다 보니 고개를 수시로 꾸벅거리면서 졸았고요. 잠깐씩 잠이 든 셈인데 막내딸이 그게 재미있는지 "손님,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라면서 자꾸 내 머리를 들었지요. 잠시 후, 또 잠에 빠져서 고개를 숙이면 "손님,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라면서 계속 내 머리를 들었고요. 급기야 턱 밑에 뭔가를 받쳐놓기까지 했어요. 맨날 막내딸을 버릇없다고 혼냈던 것이 미안해서 그 장난을 고스란히 받아주면서 졸고 있었어요.



당신이 저녁을 차려주고 몇 가지 당부하면서 내게 " 남편, 이제 출발해요!"라는 말에 잠을 깨고 일어서서 함께 나왔지요. 그때, 당신이 한마디 했어요. "남편, 나 엄청 조마조마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막내딸이 장난 거는데 전부 받아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묵묵히 받아주면서 졸고 있었어요."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도 당신은 "엄청 조마조마했어요."라고 또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미안해요."라고 했지만 마음이 아팠어요.



당신은 아직도 내 행동, 말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면서 감정을 출렁거리고 있었어요. 특히, 여차하면 아이들에게 벼락 치듯 혼내고 눈물 나게 하는 것을 아직도 고치지 못한 내 모습 때문에 늘 불안 불안한 거였어요. 늘 조마조마하면서 지내는 것을 제대로 느낀 날이었어요. 당신이 불안감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결혼 후 그 불안감이 왜 증폭되었을까?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어요. 나의 돌발행동이 당신에게는 늘 나비효과처럼 큰 영향을 주면서 힘들게 했으니까요.



그렇게 늘 조마조마하게 지낸다는 것을 생각하니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살맛이 날까?'라면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부러운 대상이 달라지고 있어요. 슈퍼카를 타는 남자, 명품을 자랑스럽게 입은 남자,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을 해외여행 수시로 보내주는 대기업 부장 남편, 그런 사람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보다는 내가 보기에 마음 아픈 사람들을 망설임 없이 도울 수 있는 남자, 특히 언제부터인가 제일 제일 부러운 사람은 '성품 좋은 사람, 온유하고 부드러운 남편, 아빠'들이에요.



이제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낙오자 같은 모습이라서 미안하긴 해요. 돈 때문에 매월말 덜덜 떠는 상황과 노력하고 자제하면서 지내다가도 여차하면 돌발행동하면서 가정 회복을 위한 노력을 물거품 만드는 내 모습에 대해 미안해요.


여보!

이제는 당신이 조마조마하는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남편이 될게요.

미안해요.

그렇게 지내면서도 늘 참아주고 내가 달라지길 기다려준 당신,

진심으로 사랑해요.




당신은 트라우마가 있어요?

당신에게 너무 심한 질문을 했지요.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알면 안정감이 있도록 도와주는 남편이 되어야 하는데 '트라우마'운운하고 '왜 불안하냐?'며 추궁이나 하는 남편이었어요. 진짜 반성하고 미안해서 제 마음 안에 있는 속마음을 편지글로 써 봤습니다.


아내에게 쓰는 편지들은 전부 아내가 읽도록 해 줄 것입니다. 속마음에 있는 말을 엉뚱한 말로 해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저의 단점을 알기에 편지글로라도 적어서 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약한 부분을 건드리기보다는 약한 부분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도울게요.

이 편지글을 쓰면서 늘 건드려서 아프게 했던 것을 반성하고, 이제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너무 잦은 돌발행동이나 말은 자제하려고 합니다. 아내는 늘 가던 길을 가는 것이 편안하고 불안하지 않다고 합니다. 여행 가는 것은 좋고 행복한데 여행이 잘 끝나서 집 근처로 오면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들으며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런 아내라는 것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도울 방법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아내가 저와 다른 사람이라서 감사합니다.

아내가 불안감 있고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출렁거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아내를 더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게 되어서요. 또, 그런 성향의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게 됩니다. 결국 아내와 살면서 저는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을 이제야 배워가는 것 같아서 그것도 감사로 느껴집니다.



이렇게 아내와 살면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이제는 창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의 부족한 것을 직면하고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미안해'라고 사과할 수 있은 이 시간이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용기를 계속 낼 수 있는 것은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입니다. 덕분에 계속 용기 내서 사과할 건 사과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더 잘 고쳐가고 있습니다.


함께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사진: Unsplash의 Spencer Bac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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