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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막내딸에게. +2

안경

막내 사랑이에게


요즘 들어서 부쩍 아빠가 너를 더 많이 혼내는 거 같아. 예전에는 네가 잘못한 것이라면서 따끔하게 혼내서 틀렸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절대 못하게만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를 엄청 자주 혼냈네. 근데 이제는 너를 혼내고 나면 아빠 마음이 너무 아파! 너를 혼낸 시간만큼 아빠 마음에 갈고리로 긁은 듯 아프고 쓰라려서 혼낸 것을 엄청 후회해. 부드럽게 설명해주고 안아주지 못했던 것도 후회하고 말이야.



요즘에는 언니에게 욕을 하거나 버릇없는 말로 대들고 중학생인 오빠에게 주먹질하면서 대들때마다 특히 많이 혼내는거 같아! 버릇없다고 말야.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섭게 자주 혼내는 것은 '눈'때문인거같아.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써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심각하게 혼냈어. 물론 지금 안경대신 밤에 드림렌즈를 착용하고 자고 있지. 아빠 마음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아서 그랬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네가 시간을 엄수해서 착용하고 절대로 눈에 상처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고 일어나서 렌즈를 빼는 것을 얼마나 잘하겠니. 엄마가 해주고 있는데 그것을 감사로 여기면서 착실히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혼냈네.


눈을 계속 찡그리며 보길래 안경을 끼는 아빠가 얼른 눈치를 채고 안과 같이 갔지?

안경 또는 드림렌즈를 착용해야 한다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는..


"눈이 안 보여서 힘들었지? 걱정하지 마! 도와줄게. 잘해보자!"

라고 하면 좋은데,

"거봐라! 아빠 말 안 들으니까 이제 안경을 쓰네. 잘해봐라! 이그! 그러게 말 좀 듣지!"

라면서 화 먼저 내면서 비난했네. 아빠에게 얼마나 서운하고 무서웠을까..


어린 나이에 안경 쓰는 게 안쓰러워서 큰돈을 들여서 드림렌즈를 해줬더니

"힘들고 아파요... 안 쓰면 안돼요? 이이잉..."

하고 울면서 말할 때마다,

"뭐? 그럴 거면 안경 써! 어디서 불평이야! 안경 쓰면 얼마나 힘든지 알아?"

라면서 아빠가 매번 혼내기만 했네. 한 번도 다정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렇지?


아빠라는 사람은 사랑이에게 아빠인데 말이야. 모든 것을 다 들어주고 안아주고 손 잡아주면서 도와주는 사람 이어야 하는데 왜 그랬을까? 아빠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아빠 마음을 알 것 같아. 그런데 그 마음을 표현하는 걸 잘못한 거 같아서 지금 사과하려고 한단다.


사실...

아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창 사춘기였어. 반에서 반장을 하면서 더 멋있고 더 인기 많고 더 똑똑해 보이고 싶었어. 그러려면 안경을 쓴 남자가 멋있어 보여서 안경을 쓰려고 노력했어. 어두운 데서 신문을 보고(깜깜한 차 안에서 네가 휴대폰 보듯이) 책은 늘 엎드려서 보고 말이야. 항상 어두운 데서 글씨를 보려고 노력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 "눈 나빠진다. 불 켜고 봐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을 듣지 않았어. 안경을 써야 하니까.



그러다가 학교 칠판 글씨가 뿌옇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잘 안 보여서 맨날 눈을 찡그리기 시작했지. 학교 선생님이 말씀해 주셔서 할머니(아빠의 엄마)와 할아버지(아빠의 아빠)가 아시는 친구 안경점을 갔는데 안경을 써야만 할 정도가 된 거야. 마음속으로 얼마나 즐거웠던지 모른단다. 처음 맞춘 안경을 착용하고 길을 걷는데 간판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모든 길거리의 먼지들도 보일만큼 선명했어. 다음날 학교를 갔더니 반에서 인기스타가 되어 있었고 쉬는 시간마다 교실뒤편 거울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슈퍼스타'같아서 의기양양했단다.


안경 덕분에 아빠의 시간은 늘 행복했을것같지? 그렇지 않아. 시간이 지나서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공에 맞아 안경이 깨지고,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다가 안경을 밟아서 깨트렸다. 중학교 때 농구를 하다가 공에 맞고 팔에 맞아서 안경을 깼고, 반대항 반대표로 핸드볼 선수를 하다가 안경을 깼다. 빙상부를 하면서 훈련하다가 휘젓는 손에 안경을 깼다. 고등학교 때 펜싱부에 들어가서 연습을 할 때마다 안경이 팔에 걸려서 운동장에 나동그라졌고 렌즈가 긁혀서 다시 맞췄지. 육상부 필드반에 들어가서 투포환 연습하다가도 안경이 날아갔다.



겨울만 되면 렌즈에 김이 서려서 눈이 보이지 않아서 통학 버스에서 늘 힘들어했단다. 대학 가서 검도부에 들어갔는데 엄청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지. 군대 가서도 화생방훈련 때 방독면 안에 맞춘 안경이 안 맞아서 화생방시간이 지옥이었고 유격훈련 때는 훈련이 힘든 것보다 안경 때문에 고통스러웠어.



그러다 보니 '의기양양하게 '안경 쓴 슈퍼스타'가 된 것을 점점 후회했다. 결국 아빠 마음에 '부모 말 안 들은 후회'만 남았다. 아이를 낳으면 절대로 안경 쓰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미디어(휴대폰, tv, 컴퓨터)를 접하는 시간을 최대한 늦게 시작하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오빠나이에 시작한 미디어에 4살이나 어린 사랑이가 함께 접하다 보니 눈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지. 그런 것을 눈치채고 더 "우리 조심하자. 그러다가 안경 쓰면 힘들어. 사랑아!"라고 말하지 못하고 늘 "안돼! 너는 그만! 그러다가 안경 쓴다! 평생 후회한다!"라면서 혼내기만 했네. 평생 후회한 아빠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 특히 우리 집에서 제일 이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막내딸 사랑이가 안경 쓰고 평생 후회하며 살게 해주고 싶지 않다보니 아빠가 너무 과했다.


미안해!

아빠가 사과할게! 아빠가 이제는 렌즈 착용하고 자고 일어나는 사랑이의 힘듦과 아픔을 이해하면서 안아줄께! 엄마와 렌즈착용하면서 실갱이하는 모습을 보면 또 혼낼지도 몰라. 그래도 조심할께. 안경을 착용해서 힘든 시간들을 잘 설명해 주면서 도와줄게! 다시 한번 미안해!!




막내딸 사랑이와 함께 지내면서 감동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딸 덕분에 '이쁜 막내딸' '뭐든지 열심히 하는 딸'의 아빠라고 칭찬 듣는 날이 많아서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나름대로 그런 딸이 저처럼 안경 쓰는 불편함을 평생 겪지 않도록 극적으로 혼내면서까지 노력했는데 안경착용이 확정되면서 너무 분개하고 화를 냈던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경 쓰는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만 집중하고 제 감정을 폭발한 모습이 다시 떠올라서 너무 창피했습니다.



업고 다녀도 시운찮을 막내딸을 언니, 오빠에게 버릇없다고 대든다고 늘 혼내고, 안경 써야 할 만큼 관리를 못했다고 엄청 혼내기만 했던 안경잡이 아빠가 후회하고 반성해서 막내딸에게 쓴 편지입니다.



출처:사진: Unsplash의 Edi Libedi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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