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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둘째 딸에게. +3

그만 좀 먹어!

이쁜 그레이스에게


아빠가 오늘은 너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 사과하려고 해!



아빠가 언제부터인가 네가 먹는 것에 대해서 칭찬보다는 순각적으로 혼내고 비난하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 특히, 이사를 오고 나서 한동안 갈 곳도, 아는 사람도, 해야 할 것도 모르고 집에 한동안 지내면서 어색함을 이어가던 작년 겨울부터 그런 거 같아. 이사오기 전과 다르게 갑자기 살이 쪄서 통통해지고 얼굴은 둥글둥글해진 너를 보면서 잔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할 정도로 늘 혼내기만 했어. 그런 말을 듣는 너는 초등 4학년이지만 벌써 사춘기가 시작된 아가씨이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점점 얼굴이 둥글둥글해지고 턱이 두 개로 변해가는 너를 보면서 신기한 건 운동은 절대 안 하려고 하고, 간식은 계속 즐기려고만 하는 거였어. 집에서 직접 만든 간식, 편의점의 특이한 간식, 장 보러 갔다가 마트에서 사 온 음식 등등을 하나도 거부하지 않고 끊임없이 먹는 게 이해가 안 되었어. 그러면서 매일 몸무게를 재고 속상해하는 것을 보는 아빠 마음은 많이 힘들었어. 본격적으로 걱정을 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도저히 운동은 하지 않고 끊임없이 간식을 즐기는 너를 제어하려다 보니 너무 극단적인 말만 계속했던 것 같아.


"자꾸 그렇게 먹으면 진짜 돼지처럼 된다. 벌써 턱이 두 개가 되었잖니. 어쩌려고 그래!!! 왜 그러니!!"


사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데 아빠가 큰 실수를 했어. 사춘기의 시작이다 보니 더 조심해줬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너를 절제시키고 있으면서 아빠가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처럼 정당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정말 잘못했구나'라고 느낀 것은 아빠가 듣게 된 말 때문이었어.


"네가 그렇게 먹으니까 돼지가 되는 거야!! 이그"


오빠가 너를 향해서 말하는 것들을 들으면서 아빠 마음이 뜨끔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울면서 "오빠가 나보고 돼지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서 어딘가로 숨고 싶었단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너와 둘이서 대화하면서 나는 사과를 했지! "그렇게 먹으면 돼지 된다는 말을 사과할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미안!!" 그 말을 듣고는 "알겠어요!"라고 사과를 받아주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뜨려지는 너를 보면서 약간의 안심을 했단다. 그 이후로도 오빠 외에 심지어 막내딸도 너에게 "언니! 돼지!!"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진짜로 죄책감까지 들었어.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사람에게! 그건 인신공격이야!! 그만!!"


오빠나 동생이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혼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 그런 와중에도 계속 먹고 먹으면서 조금 덜 먹도록 제어를 하면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막지 마세요!"라는 말에 눈앞이 캄캄했단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그러다가 주체할 수 없이 뚱뚱해지면? 그러다가 히키코모리가 된다면? 스스로 자기 비하를 하길 멈추지 않고 방 문턱을 못 나서는 사람이 된다면? 주체할 수 없는 상상이 되면서 아빠는 너무 속상했단다. 내가 사랑하는 둘째 딸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뭐가 문제일까?'라면서 고민을 엄청했어. 오빠가 매일 저녁 줄넘기, 산책을 나가길래 너를 동행하도록 제안도 했었지. 그랬더니 너는 언제나 나가기 싫어하고 오빠가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는다면서 안 나간다고 하더라.


"그렇게 먹고 운동도 안 하니 돼지가 되는 거야!!!"


운동은 절대 안 하고 먹는 것은 줄이지 않는 너를 보면서 아빠 마음이 힘들어서 저녁에 간식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을 멈추기도 했었지. 그랬더니 학교에서 맘 맞는 아이들과 젤리 한 봉지라도 사서 먹고, 먹다 남은 간식은 방에 들어가서 몰래 먹은 것을 보면서 정말 먹먹했단다. 뭐가 잘못된 것이고 나는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먹는 것에 대해서 통제하려고 할까?


왜 너에게 화를 엄청 내면서까지 절제시키려고 애를 쓸까? 아빠는 왜 그럴까?


답은 간단했다. 사실은...

아빠가 먹고 즐기는 걸 좋아했거든. 잘 먹고 잘 소화해서 시원하게 똥 누면 기분도 좋았어. 사람들과 술을 먹을 때도 술만 먹는 게 아니라, 맛있고 재밌는 안주를 곁들여서 먹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자리를 너무 좋아했었어. 그러다 보니 키와 어울리지 않게 80킬로를 훌쩍 넘는 몸무게가 되었지. 일이 늦게 끝나다 보니 늦은 야근 후에는 피로를 푼다면서 야식과 술을 먹는 게 습관이 되었어. 그러다 보니 여차하면 양복바지가 터지고 양복재킷 솔기가 찢어지는 것이 늘 반복되었어. 살이 많이 찌니까 땀이 줄줄 흐르고 땀냄새도 심했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3개월 이상 운동해서 20킬로를 감량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단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엄청 힘들어했었어. 그런 아빠가 요즘은 어떨까? 매일 저녁 너네랑 간식을 먹다 보니 다시 80킬로 근접한 몸무게가 되었어. 일을 더 열심히 하면서 10킬로를 줄여서 다시 회복이 되긴 했지만...



그런 시간을 겪다 보니 나의 이쁜 딸들이 자칫 뚱뚱해져서 원하는 옷은 하나도 입지 못하게 되어 혼자 속상할까 봐 자꾸 너를 절제시키고 있어. 아빠는 끊임없는 식사와 간식으로 과체중이 되어 속상해지는 일을 네가 겪지 말았으면 해서 자꾸 과하게 단속했던 것 같아. 그랬더니 너는 맨날 속상하고 스트레스받는다면서 여차하면 울더라. 오빠와 동생은 그런 너의 맘도 모르고 맨날 "그러다 돼지 된다!"라면서 약 올리고 있지.



아빠는 이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파! 아빠가 너무 잘 알기에 절대로 그런 시간을 겪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내뱉은 충격발언과 자제시키는 말들이 칼이 붙은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너의 마음을 늘 찢고 있네.



아빠가 너를 사랑하고 아끼는 만큼 더 노력해 볼게.

이쁜 딸이 스트레스 푸는 다른 방법을 함께 찾아보도록 할게.

진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함께 먹으며 마음을 이해해 줄게.

오빠나 동생이 함부로 말하면서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도록 가르칠게.


속상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잘 챙겨 먹도록 도와줄게.

항상 이쁜 딸이 몸과 마음이 아름답게 커가도록 돕는 아빠가 될게.


미안해!

그리고 늘 사랑해!!

날 닮은 네가 너무 이뻐! 언제나 아빠를 생각해 줘서 고맙고!

사랑해!




둘째 딸이 오빠보다 피자를 더 많이 먹었다고 자랑하길래 혼냈습니다.

늘 오빠가 가진 것을 가지고 싶고, 오빠만큼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둘째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먹는 양으로 '오빠 도장 깨기'한 것을 자랑한 둘째를 혼내고 말았습니다. 아내처럼 '그래! 재밌네! 와우. 대단하네!'라며 그냥 가볍게 넘겨주지 못한 것도 반성했습니다.



둘째 딸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자꾸 손쉬운 방법으로 위로받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몇 년간 겪으면서 자기에게 절대로 배신감을 주지 않는 '음식'으로만 스트레스를 풀고 위로받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자꾸 혼내면서 절제만 시킨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둘째 딸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도움 주는 아빠가 되려고 합니다.


아빠는 둘째의 마음을 몰라요.

어느 날, 둘째 딸이 그런 말을 툭 던지고는 자기 할 일을 하러 간 날이 있었습니다. 장남으로 평생을 살았고, 직장에서도 막내였다가 금세 부서장이 되거나 금방 팀장이 되어서 몇 명씩 거느리면서 일을 했습니다. 중간 역할을 오래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둘째들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위에서 내리누르는 형제가 있고, 아래에서 수시로 치고 오르는 형제와의 사이에서 마음 갑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둘째들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둘째 딸이 그런 말을 했을 때서야 "그런 어려움이 있어?"라면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먹는 것을 절제시키려고 엄하게 굴기보다는 그럴 때마다 둘째 딸의 마음이 어떤가를 알아주는 아빠가 되려고 합니다. 오늘도 미안하다. 그레이스. 사랑해!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 사진: Unsplash의 Brooke 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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