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화를 내냐?
나의 큰아들 기쁨이에게
너와 지내면서 내가 엄처 후회한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나누고 싶어서 적어본다.
네가 처음 태어났을 때 "아빠랑 닮았네요. 손가락, 발가락 모두 정상입니다. 한번 안아보세요."라고 말해주는 간호사님의 안내에 울컥하고 감격스러웠단다. 늘 볼록했던 엄마 배에서 고만한 크기대로의 사람이 초록색 수술보에 쌓여 있었고 안내해 주신 대로 안아보니 묵직하더라. 안자마자 또 "응애에에..."하고 우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더라. 그 감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처음 느낀 내 아이여서이겠지.
기저귀를 차고 누워있던 네가 뒤뚱거리면서 걷기 시작하니까 아빠의 허리가 아프더라. 걷겠다며 의욕적으로 계속 걸으니까 넘어질것같아서 허리를 숙여 손을 잡고 걸었줬거든. 허리가 많이 아픈데 속상하지 않고 행복했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들이 너무 귀엽다면서 한번 더 바라봐주고 아장아장 혼자서 잘 걷는 것이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는 말에 조용히 고개 숙여 감사했지만 가슴속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어.
초등학교 입학할 때, 학교 체육관에서 작은 너가 너만한 가방을 메고 아이들 틈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또 감격했단다. 또, 처음 느껴보는 내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라서였겠지.
초등학교 졸업하고 이사를 해서 전혀 새로운 동네, 새로운 중학교를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빠는 걱정이 앞섰단다. 그런데, 1학기를 지나 2학기가 되더니 친구가 생기고 축구를 하면서 어색해서 가기 싫어하던 학교를 웃으며 가길래 마음이 조금 놓이더라.
그런데,
점점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면서 화가 치밀기도 하더라. 왜 그렇게 되었게?
엄마가 말하거나 아빠가 혼내면 이를 꽉 물고 씩씩거리고 화를 내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에 진짜 당황스럽더라. 내가 손 잡아주고 자랑스러워하던 아기, 내가 씻겨준 아기, 내가 열일마다하고 입학식을 챙겨준 아이, 간신히 하루를 빼서 졸업식을 함께 하며 칭찬하고 격려했고 남들 앞에서 자랑스러워하던 내 쪼그만 아들이 지금 내게 하고 있는 분노의 주먹질과 씩씩거림은 감당해주지 못하겠더라. 당황스럽다는 표현이 어느정도 아빠 마음을 나타낼것같다.
"어디서 화를 내냐?"
라면서 당황해서 얼어버린 엄마를 곁에 두고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너의 머리채를 잡았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라면서 혈기로 너를 제압했단다. 잠시 후에 아빠가 정신차리면서 엄청난 후회를 하고 허탈했단다. 너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존중해줬어야하는데 말이야. 잘 설명하면서 너를 품어줘야 하는 아빠였는데 말이야.
아빠가 그런 행동을 후회하고 너와 대화하면서 너는 오히려 아빠보다 좋은 남자더라.
당장 억울한 것같은 상황 속에서도 아빠 앞에서 씩씩거리고 화내지 않기, 나는 여차하면 혈기로 너를 제압하거나 함부로 혈기 부리지 않기로 약속했지. 그런 대화를 하면서 나는 마음으로 울었다. 아빠보다 더 지혜롭고 의리있게 약속을 하는 모습에 감사했다. 아빠보다 100배나 좋은 남자더라.
사실, 네가 불끈거리면서 화를 내고 대드는 모습에 사실은, 사실은 말이야....
아빠의 어린 시절을 보았단다. 아빠의 엄마가 말할 때마다 씩씩거리고 여차하면 대들듯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옳은 말을 하시지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 머리를 박으면서 대들었다. 그런 모습에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혼내기를 멈추기도 하셨다. 네가 중1인데 벌써 큰 사람처럼 엄마 아빠의 말에 화를 내고 버럭 대들면서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모습에서 "예전에 나의 모습"을 봐서 아빠는 더 화가 났던 것 같아.
'어디서 이 녀석이!!'와 '나도 저랬었는데 저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엄마는..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라면서 아빠는 울었던거야. 너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보여서 당황스럽기도했고..
너와 그런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 있단다. 이제는 과거의 아빠가 과거의 그런 아픔들을 고스란히 품고 살아주고 있는 아빠의 엄마에게 과거의 일을 사과하는 날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너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단다. 그리고, 마음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머리가 복잡하고 몸은 변화가 계속 이어지는 지금 너의 상황을 이해하는 아빠가 되어줄께!! 단, 여전히 부족해서 여차하면 화를 내는 아빠를 조금만 더 기다려줘!! 더 많이 노력할께!
고맙다. 네가 나보다 낫다.
너 덕분에 내가 반성했다.
내가 더 사랑하고 도울께.
고맙다.
아들이 저보다 낫습니다.
삼 남매가 엄청 싸웁니다. 그때마다 잘잘못을 가리면서 싸움에 대해 중재하고 혼내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마다 혼내는 대상이 큰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런 순간이 끝나고 나면 하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 말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래! 수고했다!"라고 인정합니다.
"아빠! 그래도 저! 씩씩거리고 화내지 않았어요. 잘했죠?"
"약속 지켰어요!!!"
"그래! 수고했다!"
라고 말하면서 큰아들이 노력하는 모습에 엄지 척하곤 합니다. 아들이 들이대며 화내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 때마다 약속한 대로 혈기로 제압하거나 머리채를 잡는 일은 아들과 약속 이후 일절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아들! 나 약속 지켰다! 더 노력할게! 널 존중할게!"라고 말하며 더 노력하며 큰아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겠다고 했더니 아들도 저에게 "약속 지켰어요!"라면서 '인정'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상황 속에서 큰아들과 저는 "약속하자! 이번에는 ( )를!"이라고 말하면 서로 인정하고 다음에는 지켜냅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큰아들이 아빠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주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부족합니다.
아직은 아빠가 부족합니다. 그런 것을 아는 큰아들이 자기가 급성장하는 것에 적응하는 것도 바쁜데 아빠의 변화속도를 기다려주곤 합니다. 더 노력하면서 살아가도록 저도 입술을 꽉 물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보며 저의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혼란과 폭풍 속에서 살아가는 큰아들을 보면서 '그 시절 저의 모습'을 직면하게 됩니다.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부족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때가 되면 '나의 엄마'를 그냥 안아주면서 '사과'하고 싶습니다. '나의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부산을 떠나 평생을 살면서 '부족한 아들의 모든 것'을 받아주기만 한 엄마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아들을 키우면서 저도 성숙해지고 이제 철이 들어갑니다.
큰아들 덕분에 철이 들어가면서 과거의 아들로써 했던 실수들을 반성하며 현재의 아빠로서 변화하려고 도전받는 일상이 감사합니다. 큰아들과 똑같은 시기의 저와 비교해 보면 저보다 몇 배나 좋은 녀석입니다. 그런 녀석과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삽니다.
오늘도 큰아들에게 전하는 저의 서투르고 부족한 마음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솔직하게, 감사하며, 반성하며, 다짐하며 적어보고 있습니다.
함께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