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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걸 먹겠다고요? +9

밤만쥬

퇴근 후 동네마트로 장보기를 나섰던 날입니다.



퇴근 후 장보기라서 아내와 함께 서둘러서 진열장사이를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재료, 아내가 즐거워하고 힘날만한 음식들을 살짝 제안하면서도 너무 버거운 결제금액이 되지 않도록 말하며 따라다녔습니다. 늘 그러듯이 '이제 그만 가요!!'라는 말은 하지 않고요. 장바구니는 즐겁게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단호박 샌드위치가 보여서 집 가는 차 안에서 먹자고 했습니다. 허기진 아내는 흔쾌히 승낙하고 운전하는 동안 먹기로 했습니다. 아이들과 식사 후 대화하며 먹을 간식 1~2개만 사기로 하고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나 이거 먹을래요!"

"뭐요? 이거 안 먹잖아요?"

"먹어요. 사실. 당신이 좋아하니까 더 먹으라고 안 먹는 거예요."

"예? 진짜로요? 거짓말!!"

"진짜 먹고 싶으면 사요!"


"아니요. 안 살래요."

"왜요?"


"당신 위해 사려고 한 거예요. 당신 좋아하는 건 안 사귈래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서 사주고 싶었어요."

"아. 아니에요. 안 먹어요. 가요."


저는 그렇게 말하고 계산하고 집을 가자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밤앙금이 들어간 떡이나 빵을 좋아했습니다. 한입 넣으며 입안에서 뻑뻑함과 목이 메는 느낌이 나면서 금세 단내와 달달함이 혀에서 시작해서 목까지 넘어가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릴 때 수입가게에서 사 먹는 수입 땅콩잼이 그렇게 맛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밤만쥬 봉지가 보이면 자연스레 눈이 갑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개수가 10개입니다. 눈은 가지만 가능하면 손은 잘 내밀지 않습니다. 한 봉지에 10개 정도인데 저만 좋아하기에 사 먹기가 미안해서입니다. 물론 막상 작정하고 사면 한 번에 1 봉지를 금세 먹어치우기도 합니다. 지출할 돈이 한정되어 있는데 저만을 위해서 돈을 사용하기가 너무 미안해서이지요.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살던 '제로섬'이 우리 가정경제의 현실이라는 것을 철저히 머리에 두고 사는 요즘, 가장이자 아빠로서 돈을 넉넉히 벌어 오지 못하는 것을 반영하여 제 취향존중은 사치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소울 푸드, 즐기던 간식, 사랑하는 옷, 가고 싶은 여행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리스트에서 최고 마지막 순위에 넣어둡니다. 일부러 종종 밀리도록요.



그런 모습과 생각을 아는 아내가 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하고 사려고 했지만 저는 단호하게 포기했습니다. 잠깐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친 덕분에 장바구니에는 가족들 먹을 것과 아내의 씁쓸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나온 날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그런 마음만 받기로 했습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족하여 수시로 자존심을 앞세워서 옹졸하게 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의 취향을 조금이라도 챙겨주려는 좋은 아내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취향존중은 사치다.

진짜로 넉넉한 돈을 벌다가 퇴사, 다시 벌다가 홧김에 퇴사를 반복하다 보니 가정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만을 위한 취향 존중은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취미활동은 배제하고 책은 가능하면 도서관을 이용하고요. 음식은 가능하면 아이들 입맛에 맞춰서 아내가 두 종류 음식 만드는 수고로움도 줄여 보려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진짜 매운 음식을 먹고 싶으면 그날이 '어른 음식 먹는 날'이 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것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앞세우면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는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 내가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면 아내나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못 사고 지내게 됩니다. 그것을 모르고 살던 신혼시절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이들이 원하는 것,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 후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내는 이쁘다.

처음 아내 만나서 한 말 때문에 평생 핀잔 듣고 삽니다.

아내 보고 예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딸인데 남자다운 외모의 장인어른을 쏙 빼닮았네요. "라면서 세상에 평생 동안 욕먹고 지낼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나 나나 예쁘지도 잘 생기지도 않았으니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삽시다."라고 말도 했었습니다. 그 말 덕분에 평생 진짜 욕먹고 지냅니다.

"자기는 호감형이라고 늘 말 듣고 살면서, 나 못생겼다고 말하고 싶은데 욕먹을까 봐 우리 둘이 못 생겼다고 말을 하다니... 진짜 나빴어요."라고 아내는 늘 말합니다.


그런데, 아내와 살다 보니 아내의 마음이 이쁩니다. 이쁜 아내 마음을 느낄 때면 아내의 외모를 따질 겨를은 없습니다. 그냥 '내 아내 이쁘다. 감사하고 자랑스럽다'라고 중얼거립니다. 돈을 아끼겠다고 후줄근한 옷을 입고 방 입구에 서 있더라도 마치 좋은 옷을 입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저를 지긋이 바라봐주는 느낌이 듭니다. 제게 다시 콩깍지가 써지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마트에서 밤만쥬를 사지 않아서 못 먹었습니다. 아니 안 먹겠다고 했지만 저는 몇 봉지나 한꺼번에 먹은 것처럼 가슴 따뜻한 저녁이었습니다. 가슴에 핫팩을 100개 붙인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오늘도 미리 감사드립니다. 또, 제 글을 읽어주셔서요. 읽어주시니 또 약속을 지키듯 쓰게 됩니다. 그리고, 자꾸 노력하게 됩니다. 깊숙이 숨겨 놓은 아내 마음도 알아내게 되고요. 그러니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Barbara Burg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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