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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0

에이즈 환자 치푼도 할아버지

 평일에는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주말에는 난지리(쓰레기 마을 이름)로 봉사를 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어 기본적인 진료는 뚝딱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피라미)다. 나는 수복치료(Restorative treatement)나 근관치료(Endodontic treatment, aka 신경치료)를 좋아한다. 근관치료는 실력이 없으면 워낙 실수도 많이 하게 되고 어려운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진료를 할 때 정말 꼼꼼히 진료를 해야 했다. 어려운 만큼 재미도 있었고 성취감도 높았다. 내가 이 파트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병원장은 두루두루 배워야 한다며 나를 구강악안면외과로 보냈다. 일전에 말했다시피 이 분야는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고, 나는 이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이쪽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배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구강외과에 오는 환자들 중엔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들도 많았다. 두려움이 앞섰다.


인구의 10.3%가 에이즈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는 980,000명 정도가 에이즈에 감염이 돼있다. 통계상으로 이 정도고 실제로는 100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에이즈는 HIV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병하면 나타나는 전염병이다.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는 바이러스의 이름이고 에이즈는 HIV에 감염된 환자에게  면역이 결핍돼 나타나는 합병증을 일컫는다. HIV에 걸린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HIV 감염인이란 HIV에 걸린 모든 사람을 말하며 이 중에서 질병이 나타난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른다.


이곳 사람들은 HIV에 잠재적 감염이 되어있음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병원에 오지 않다가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혹은 정말 아파서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면 그제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병원에 오게 된 치푼도 할아버지도 그런 경우였다. 환자가 들어오기 전 HIV positive라고 적혀있는 서류를 먼저 보자 괜스레 선입견이 생기고 긴장감에 몸을 사리고 싶었다. 치푼도 할아버지는 Oral squamous cell carcinoma라는 구강암을 에이즈 발병 후 합병증으로 얻게 되었지만 병이 많이 진행된 후에야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된 환자였다.


한 번에 다 치료를 할 수 없어 띄엄띄엄 나눠서 치료를 시작했다. 이제 1년 차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라텍스 장갑을 3장씩 끼고 조심스레 어시스트를 하는 일밖엔. 집도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감염된 부분을 제거하며 치료를 해나갔다. 피가 넘쳐흘러나왔다. '이 피는 에이즈 환자의 피야'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치료를 멈추고 도망이라도 가겠다는 건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도의가 묻는다. 


-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 에이즈 환자잖아요. 긴장 안되세요?

- 네가 지금까지 봐온 환자들 중에 검사를 안 해봐서 그렇지 HIV 감염자는 수두룩 했을걸?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서류상에 'HIV positive'라는 단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는 이유로 환자의 모든 면을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봤다. 집도의 말대로 사실상 내가 몰랐던 것이지, 그동안 봐온 환자들 중 HIV 감염자는 더 많았을 텐데. 망치로 뒤통수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https://www.flickr.com/photos/criminalintent/23946993230



치료가 끝난 후 할아버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의 생활은 외톨이 같은 고단한 삶이었다. 가족이 차례로 에이즈로 인한 여러 합병증에 의해 죽어갔고, 이제 자기 차례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에이즈의 집안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불결해했다. 표면적인 인사치레를 하며 지내는 정도지만 할아버지는 마을 집단에서 외톨이로 살아왔다. 본인이 잘못해서 에이즈에 걸린 것이라면 자신의 실수를 탓할 수라도 있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병을 어떻게 하겠는가. 누굴 탓할 수 있을까. 묵묵부답인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마을 사람들은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교육이 없으니 손만 잡아도, 같은 방에 있어도 병이 옮는 줄 알고 대부분 슬그머니 피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이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예방법만 알려줘도 할아버지가 이렇게 고단하게 살아가진 않을 텐데.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부정하다 했다. 그 무리 안에서 잠정적 HIV 감염자가 있을 수 있는데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없으니 본인들과 모양새가 다른 할아버지를 고립시켰다. 생명이 꺼지지도 않았고, 다 타버린 양초 심지도 아닌데 사람들은 수차례 할아버지를 시선의 칼로 찍어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었다. 나였어도 그들과 같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하니까.


문명과 떨어진 삶을 사는 아프리카의 마을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하얀 백지 같이 순수했다. 지나가다 흘린 농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괴담으로 퍼져나가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이 곳 한국 NGO 중에 백내장과 눈에 나타나는 질병을 치료해주는 NGO가 있는데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 '저곳에 가면 치료가 아니라 눈을 빼간다'라는 괴담이 돌아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럴 정도로 어떻게 보면 순수한 사람들인데, 에이즈라면 당연히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단에서 버려진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홀로 된 외로움과 싸워나가야 했다. 사람이 그립다고 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오랜만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는 들어줄 누군가도, 말을 걸 누군가도 없는 마을에 돌아가는 게 두렵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이들의 마음을 감히 위로할 수 있을까. 말라위에 거주하는 동안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안타까움이 차고 넘쳤다. 내가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 무력감. 치푼도 할아버지뿐만이랴, 난지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쩌랴.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 사람들에게 잊혀진 사람들, 희망을 품지 못한 사람들. 세상은 참 불공평하지 않은가. 나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난지리에 가서 마을진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을 무렵 좋지 않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떤 한인 단체에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이유인즉슨 내가 진료를 보는 마을 근처에 본인들의 사업장이 있는데, 그 근처에서 진료를 보면서 자신들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처음엔 그냥 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더라- 정도만 듣고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넘겼다. 


그러나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지인들을 통해 계속 이런 말이 들려오니 거슬릴 수밖에 없었고,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선,

 

1. 난지리(쓰레기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주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2. 내가 진료를 보고 있는 장소가 그 사업장과 겹치는 곳도 아니었고(어딘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고)

3. 단지 사업장이 비슷한 지역인 것 때문에 말이 나온 건데(세상 누가 이런 걸로 딴지를 걸겠나) 그들이 하는 사업은 교육사업이었고, 내가 하는 건 의료진료였다. 더군다나 난 사업이 아니라 봉사였다. 


그들은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기도 했고, 뒤에서만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데 내가 직접 그들을 불러 얘기하기도 뭐했다. 나는 이 말을 전해주는 지인에게 불만 있으면 뒤에서 말하지 말고 나를 찾아오던가, 약속을 잡던가 하라고 말을 전했다. 그렇게 말을 전해도 만나자는 소리가 없기에 무시하고 내 할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날수록 심한 말들이 계속 새어 나왔다. 싸가지가 없다느니, 본인들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느니, 어린놈이 그러면 안된다느니. 나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어 대표라는 사람에게 문자를 했다. 


- 안녕하세요. 조르바입니다. 이러이러한 문제에 대해 말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을 주시지 않으셔서 제가 먼저 문자 드립니다. 만나서 얘기하실 거 아니면 더 이상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대표는,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며 그제야 만나자는 말을 꺼내놨다. 약속을 잡고 얘기를 나눈 대표는 생각만큼 비겁한 사람은 아니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 하기는 했는데 뭔가 핀트가 안 맞았다. 내가 하는 진료 자체에 문제를 삼기보다 본인들이 그 자리에 먼저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으니 미리 말을 해줬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 그게 예의가 아니겠느냐 라고 했다. 


-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우선 그쪽에서 실질적으로 난지리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제가 일하는 장소가 그쪽 사업장과 가까운 장소라 하더라도 그게 도통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요. 분야가 겹치는 것도 아니고요.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나중엔 내 비자를 문제 삼으며 원칙적으로 그 비자는 여기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 와 있는 엔지오 단원들과 똑같은 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게 안된다면 그들 모두 나가야 한다는 건가. 대표 밑에 있는 단원들도 나와 같은 비자였다. 그리고 내가 비자를 얻을 수 있게 도와준 병원장까지 들먹이는 꼴이었다. 처음엔 이 이야기를 왜 꺼내나 싶었는데, 다른 한인분에게 들으니 협박을 한 것이라고 했다. 너 까딱하면 내가 비자로 문제 삼아서 쫓아낼 수 있어, 라는.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이런 오지 땅에서도 한인들끼리의 세력다툼이 있었다. 교회와 성당, 엔지오와 엔지오, 사업장과 교회, 성당과 엔지오 등. 소위 말하는 '라인'이었고, 그 라인은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었다. 어디 파, 누구 파, 이쪽 파, 저쪽 파. 그 안의 세력싸움이 은근히 심했기에 내가 하는 행동들로 인해 또 다른 '파'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대표는 내게 또 다른 파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나 참. 말라위에 백만 년 거주할 것도 아닌데 파를 만들지 말라니. 그런 거에 관심 없다니까요.


답답했다.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분파를 만들고 싸우고 앉아있다니. 더군다나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뒤에서 이야기를 지어내고 문제를 만들고 있다니. 해외에 가면 제일 조심해야 할 인종은 백인도 흑인도 아닌 한국인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돕기도 하지만 사기도 그만큼 많이 친다고. 중국인들은 어떤 나라에 들어가면 차이나 타운을 조성하고, 화교 문화를 만들어 서로 뭉친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고, 섬나라에 영어도 약하다 보니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인은 성격도 급하고, 경쟁 문화 속에 살아서 그런지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며,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고 배 아파한단다. 해외에 사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아 이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여러 나라에 퍼져있는 한인 분들을 만나 들어보면 이런 문제가 재외국민 사회 안에 적잖이 일어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라인을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해 끼리끼리 를 만드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 안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배제시켜버리는 이상한 문화. 초등학교 때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다가도 어느 한순간 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동해서 왕따를 시켰던 친구가 있다. 7명이 모여 다녔는데 한 명씩 차례로 왕따를 시키더니 결국 마지막엔 자기가 왕따를 당해 울어버렸다.


중학생을 넘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많은 이들이 인싸를 꿈꾼다. 어느 집단이건 잘 나가는 주류가 있고, 그 주류 안에 끼지 못하면 비주류로 분류되어 '주류 안에 끼고 싶어 하는 비주류'가 되거나. 그런 거엔 전혀 관심 없는 특이한 아싸(아웃사이더)가 된다. 주류, 비주류를 나누는 것과 인싸, 아싸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는 것부터가 웃긴 얘기다. 본인 고유의 개성은 죽어버리고, 인싸와 주류라고 하는 문화에 똑같이 젖기 위해 똑같은 인스타 감성 사진을 찍고, 남들과 똑같은 여행을 하며 주체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남들이 하는 말에만 귀 기울인다. 그 판단에 의존해 자신의 생각을 결정한다.


기계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 똑같은 계획, 똑같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사회다 보니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윗사람의 요구에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진다는 건 라인을 벗어나는 행위다. 그 요구가 합당하건 부당하건 중요치 않다. 요지는 그 요구를 순순히 따르는 사람이냐, 질문을 하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질문 자체를 잘 용인하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라인 높은 곳에 서있는 사람들의 말은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된다. 그 라인을 따라온 사람들의 리그는 점점 힘이 세지고 하나의 분파가 형성된다. 


옳음이 정의가 되는 것이 아닌 내가 속한 분파가 정의가 된다. 나와 다른 이들의 의견을 이성적으로 접근해 옳은 것은 가져오고 다른 생각은 서로 조율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데 이성보다 감성이 더 앞서다 보니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머거리,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장님이 된다. 그 안에는 이기적인 욕망만 존재할 뿐 타인을 향한 배려나 이타심, 상위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나중에 들으니 이 사람은 한국에서 난지리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로 후원금을 걷는다고 했다. 본인이 이용하는 영업장소를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과민반응을 보이는 거라고. 대표는 내게,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으면 라인을 잘 타라' 는 뉘앙스를 풍겼다. 자기 밑으로 들어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런게 아니면 본인의 사업장(정확히 말하면 그 근처)에서 활동을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놈의 라인, 라인, 라인. 내가 그곳에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고 물었다. 그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과연 이들이 난지리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해주려는 마음이 있기는 한 걸까. 앞 뒤가 너무나도 다른 이런 류의 사람들을 많이 경험하다 보니 실망을 넘어 냉소만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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