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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0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빵과 칫솔, 치약을 가지고 가서 나눠주기를 3주가 지났다. 세 번의 만남을 통해 그들과는 얼굴도 꽤 익혔고 나에 대한 마음을 어느 정도 열어준 것 같았다. 이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촬영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몰려와 그들을 마음대로 찍는 것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있었다. 세상 사람 누구라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허락도 받지 않고 카메라로 담아 간다면,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닌 단체로 몰려와 그런 행동을 한다면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런 몰상식한 행동들을 많은 단체에서 해왔다. 자신들을 한 무리의 동물들로 보고, 몇 시간 후면 잊힐 싸구려 동정이 섞인 눈빛은 그들의 마음을 걸어 잠궜다. 이들의 영상을 담아간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이런 현실을 마음껏 활용했지만 정작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한 순간 사람들의 눈물을 빼내기에 적합한 매콤한 소스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두 달째 맺어가고 있을 때 한국에서 어떤 단체가 왔다. 그들은 어디선가 마을 소식을 듣고 내게 찾아와 물었다. 그 마을이 어디 있는 마을이냐고. 우리도 가서 좀 보고 싶다고. 그 취지를 물으니 역시나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 불쌍한 모습만 담으면 돼. 한국 사람들한테는 보이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이걸 이렇게 저렇게 찍어서 보여주기만 하면 돈은 굴러 들어오는 거거든. 보이는 게 다야~ 사람들 주머니에서 돈 빼오는 거 어려운 게 아니야~


밥을 먹으면서도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저 말이 진짜 현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구멍으로 들어가던 음식을 그대로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게 지금 할 말이냐고. 이들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웃어제꼈다. 토악질 나는 얼굴들이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점이다. 봉사를 빙자한 돈벌이. 


어떤 선교사님은 내게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봉사하러 온 사람이 돈에 취하게 되면 그때부터 조금씩 흑화 되기 시작한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한 말을 지키지 못해 점점 변해가는 사람이 많다고. 어느샌가부터 사람을 만날 때면 '이들은 나에게 얼마를 후원해줄까', '어떻게 말해야 후원금을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닌 후원자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후원해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 안 해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 


본인 또한 그런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그런 유혹이 시시때때로 찾아들기에 항상 경계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더 큰돈을 받으면 더 큰 사업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 더 많은 후원자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본인의 명성,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를 세상에 외치고 싶어 안달하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 안에서 하나의 콘텐츠로 희생되는 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처음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점점 변해가며 돈과 명예가 그 마음을 대신한다. 그런 사람들한테 어떤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돈'이란 건 무서운 존재다. 돈에 대한 마음을 잘 지키고, 관리한다면 돈은 자신을 다스릴 역량이 있는 사람 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역량을 키우지 못한 사람이 많은 돈을 가지게 되면 돈은 그를 잡아먹거나, 떠난다. 돈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욕망은 우리를 집어삼킨다. 욕망에 잡아먹힌 사람들의 두 눈을 보면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는 물질적인 것으로 가득 차있다. 그들에게 인간의 존재됨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돈이 인생의 목적이고,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된다. 자본주의가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인생의 정답은 이런 인생일 것이다. 끊임없이 욕망하기 위해 반짝거리는 모든 것을 갈망하는 삶. 나와는 조금 맞지 않는다. 여행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지, 내가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욕망을 존중한다. 그들이 적을 두고 있는 가치가 어떤 가치이든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허나 남들을 속이고,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기본 자체가 없고, 생각조차 않으니 사회 곳곳에서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기본을 차지해야 하는 자리에 돈이 들어가 있다. 돈이 전부가 되는 세상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주 충돌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배우고 성찰해야 한다. 그냥 되는대로, 남들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대로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런 사람이 돼있을 것만 같아 무섭다.





빵과 칫솔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진료를 봐주려고 해도 모두를 병원으로 데려오기란 불가능했다. 수 백 마리 파리가 날아다니고 쓰레기가 널려있는 곳에서 진료를 볼 수도 없었다. 현지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마침 친구 지인 중 한 명이 마을 근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고 한 반을 우리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토요일엔 수업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써도 괜찮다며 교장선생님에게 승인을 받아주었다. 


외부로 의료진료를 나가면 챙겨야 할 기구들이 무척이나 많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조를 해주는 사람도 필요했다. 교통수단도 필요했고, 도와주는 이들의 점심이나 간식 같은 것도 챙겨야 했다. 학부 때 했던 외부 진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내 개인적인 도구만 챙겨서 가면 되었다. 그 밖에 다른 일들은 학교에서 알아서 준비를 해줬다. 지금은 이 모든 준비를 나 혼자서 기획하고, 만들어내야 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을까?


처음 한 일은 동료 의사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며 같이 봉사를 가자고 살살 꼬드기는 일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2명의 동료가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부터 잘 풀리는 느낌이었다. 혼자가 아닌 셋이면 무엇을 해도 할 수 있었다. 3명에 맞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외부진료에 필요한 기구들을 빌리기 위해선 내가 일하던 국립병원이 아닌 1시간 정도 떨어진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기구들을 빌리고 살균(Sterilized)을 따로 해야 했다. 덴탈 마스크와, 장갑, 물, 발치와 스케일링에 필요한 기구들, 코튼, 약, 실, 바늘 등등. 우선 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준비했다. 토요일에 맞춰 택시를 예약해두고, 점심 식사와 간식을 준비했다. 전 날 학교에 미리 가서 진료를 할 수 있게끔 공간을 준비해놓고, 쓰레기 마을에 가서 진료받을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었다. 너무 심한 치료는 할 수 없었고, 우선 할 수 있는 것에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이 기대되었다.






 토요일 아침, 혼자 기획했던 첫 외부진료였던 만큼 마음도 많이 분주했고 들뜨기도 했었다. 일에 차질이 생기게 하지 않기 위해 전날 늦게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다시 확인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모든 프로세스를 확인하고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돌려봤지만 하나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있다. 이곳은 아프리카라는 걸. 떠날 준비를 다하고 나서 같이 가기로 한 동료 의사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리 살균해놓은 기구를 챙겨 오기로 한 친구였다. 신호음이 계속 울리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다른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역과 어씨스트를 맡은 친구였다. 그 친구 또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준비하느라 바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10분을 기다린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10분 후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는 거지?


출발을 해야 하는데 문자가 하나 왔다. 


- 조르바, 오늘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아.


치과 기구들을 챙겨 오기로 했던 친구였다. 하...... 문자에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없었다. 미리 말을 해준 것도 아니고, 출발해야 하는 시간에 문자를 달랑 한 개 보낸 것이다. 


- 왜? 무슨 일인데?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준비 다 해놨는데. 너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잖아. 어떡할 거야?


답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른 친구는 문자조차 없었다. 아예 잠수를 타버렸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다 있을까. 너무 화가 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멘붕에 빠졌다. 계획이 틀어졌고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몰랐다. 살균된 기구를 찾으러 가려면 1시간을 차 타고 가야 하고, 마을까지 가려면 또 다른 1시간이 필요하다. 통역을 해줄 사람과 어시스트 또한 필요했다. 혼자서는 이 일을 감당하기에 벅찼다. 더군다나 첫 외부진료였기 때문에 혹여나 생길 의료문제들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있었다. 


멘붕이었다. 말 그대로 멘붕. 준비해놓은 음식들이며 예약해놓은 택시, 살균해놓은 기구들, 기다리고 있을 마을 사람들, 학교 선생님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이 프로젝트 하나 준비하는 데 들어간 돈 또한 무시할 순 없었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전체를 두고 갑자기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말라위 사람들의 거짓말을 잊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느낀 것 중 하나가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약속은 약속이 아니며, 자기가 내뱉은 말은 자기가 한 말이 아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언제든 무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외국인에게 특히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라위에 거주하는 한인 분들에게 들어보면 그놈의 거짓말 때문에 복장이 터진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사람들과 같이 무언가를 한다니. 돈을 줘도 속이는 판에 돈을 준 것도 아니고, 밥 한 번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나? 나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진행을 했지. 하기 싫으면 안 한다고 하면 됐잖아. 그럼 다른 사람을 구하지. 왜 한다고 했다가 당일날 취소를 하는 거야 대체.


이들을 그대로 믿은 내가 멍청했고 순진했다. 이번 외부진료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준비한 게 너무나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우선 필요한 사람은 같이 진료를 봐줄 의사 한 명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통역과 어씨스트를 해줄 수 있는 로컬 친구 한 명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동료 의사들과 로컬 친구들 에게 전화를 돌리고 사정을 설명했다. 친하든 안 친하든 상관없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두 명이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 한 명은 구강악안면외과 시니어 치의였고, 한 명은 교회에서 알게 된 친구였다.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 Ngo단체에서 일을 하던 한국인 친구들도 같이 가서 페이스 페인팅이라도 하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웰컴이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다행히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아 가능할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빠르게 달려 살균된 기구를 가지고 마을로 향했다. 두 명의 친구는 나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있었고, 내가 기구만 가지고 오면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맞춰 놓았다.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Ngo 친구들은 따로 코너를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했다. 

가지고 온 도구들을 풀어놓고 환자를 봤다. 수복치료나 근관치료는 장비가 없기에 하지 못했고 보통 발치 환자들 위주로 봤다. 약 3시간가량 진료를 했고 쓰레기 마을에 사는 사람들 뿐 아닌 동네 사람들도 다녀갔다. 미리 리스트에 넣어 놓은 사람들은 이가 너무 좋지 않아 어디를 어떻게 먼저 손을 봐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어떤 치아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치아인데, 그러려면 병원에 와야 했다. 병원에 오려면 교통비가 들고, 진료비가 든다. 많이 들진 않지만 그 비용을 이들이 쉽게 감당할 순 없었다. 한 명을 데려가면 그다음 환자가 있다. 이 환자는 데려갔는데 그다음 환자를 데려가지 않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느낄 것 같았다. 내가 내줄 수 있는 비용엔 한계가 있었다. 데려가려면 모두를 데려가 진료를 봐줘야 했다. 안타깝지만 국립병원은 무료가 아니었고, 자선단체가 아니었다.

 






이들 중 평생 치과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손에 꼽았다. 고통이 생기면 생기는 그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얼얼하고, 시리고, 쑤시고, 끊어질 것 같은 치통과 함께 평생을 살았다. 그 과정 중에 더 큰 병을 얻은 사람들도 있고, 그 병으로 죽는 사람도 생겼다. 그런 그들을 보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원에 갈 돈으로 하루의 식량을 사 먹는 게 더 나았다.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했으니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사치 중의 사치였다. 


진료를 받은 사람 중 하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이 어딘가에서 주워 온 깨끗한 사탕수수를 내어주었다. 어떻게 먹는지 알 길 없는 사탕수수를 받아 들고 마음이 따듯해졌다. 고마움이 잔뜩 담긴 사탕수수는 내가 살면서 받아 본 선물 중 가장 따듯한 선물이었다. 진료가 모두 끝나고 일을 마무리지었다. 갑자기 부탁을 했음에도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 감사했다. 친구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느낀 것이 더 많다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어 고맙다고 했다. 


한 가지 씁쓸했던 건 이들의 삶 자체가 이 진료를 통해 변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한 번, 두 번, 열 번 찾아와 진료를 한다 한들, 이들 내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들의 삶은 몇 년이고 그대로일 것이다.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그들의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삶 자체에 희망이 없었다.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없고, 이렇게 태어나고 살았으니 자신도 똑같이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패배의식이 그들 안에 가득했다. 그 패배의식을 탓할 순 없다. 그들이 태어나고 싶어 이 땅과 그 마을에 태어난 건 아닐 테니. 내가 그들에게 하는 말 하나하나가 특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고민이 더욱 깊어졌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 나가 보기로 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그러다 보면 길이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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