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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0

쓰레기 마을 사람들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 환자를 다 보고 잠시 쉬고 있는데 가운 주머니에 넣어놓은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보니 모르는 전화다.


-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여기는 xx티비인데요, 조르바 씨 맞으신가요?

- 네, 그런데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죠?


본인을 한국에서 온 xx티비 피디라고 소개한 그는 이곳에 젊은 한국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전화를 걸었다. 응? 내가 인터뷰를 한다고? 나를 왜? 갑작스러운 인터뷰 제안에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재미도 있을 것 같아 퇴근 시간에 맞춰 병원 앞에서 뵙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후, 만나기로 한 장소를 갔다. 어색하게 카메라 감독과 작가, 피디라고 불리는 분들과 인사를 하고 어떤 프로그램인지, 어떤 인터뷰인지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인터뷰어가 나왔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연예인인 것 같긴 한데, 문근영을 닮기도 했고. 누구지? 


처음에 누군지 헷갈려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으니 피디가 '문근영 씨 모르세요?'라고 묻는다. 


- 그, 그... 어린 신부 문근영이요?

- 아유~ 그게 몇 년 전 영환데 아직도 어린 신부예요 ~ 저 벌써 33살이에요.


설마 하니 진짜 문근영일 줄이야. 와, 살다살다 아프리카에서 연예인을 다 보다니. 얼굴에 나도 모르는 웃음꽃이 살살 피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에 대해 워낙 관심이 없다 보니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아니 여배우 한 명 만났다고 이게 그렇게 떨릴 일이야?  문근영 씨와 마주 보며 인사를 나누는데 웃음이 멈추지 않는 건 왜일까. 얼굴이 갑자기 후끈 달아오르고 귀까지 빨개지는 건 왜였을까. 도무지 눈을 못 마주치겠는 거다. 악수만 하는데도 고개는 자꾸 아래로 아래로. 피디님이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냐고 물으시는데 낸들 알겠나.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지는 걸.


인터뷰를 하기 전에 문근영 씨와 같이 병원을 돌아다니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해야 인터뷰를 할 때 어색함이 좀 덜한다나. 병원을 돌고,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 사진을 찍었다. 피디님이 자꾸 팔짱을 끼라고 하셔서 문근영 씨가 팔짱을 껴줬는데 쑥스러워 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뭐라고.... 그러나 기분은 너무.... 헤벌쭉. 사진을 찍고 며칠이 지나자 배우의 팬카페에서 저놈이 감히...!! 라며 난리가 났었는데, 한 팬이 질투가 난다며 나를 백곰으로 만들어버렸다(죄송합니다). 유쾌한 팬들과, 선하고 배려 깊은 배우 덕분에 즐거운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배우 문근영과



병원 투어를 마치고 나머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SBS의 xx티비에서 연예인과 함께 봉사활동을 떠나고,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알리며 후원을 모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많은 NGO들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따듯한 온기를 불어넣어주고자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의 노력과 수고는 귀하고, 값지다. 


다만 여행을 하며 각 나라의 NGO 단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망할 때가 적잖이 있다. 무책임한 대표 밑에 무분별한 예산을 쓰는 곳도 많고, 정말로 필요한 곳에 후원금이 쓰이는 것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자신의 배만 불리기에 급급한 사람들도 많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내가 직접 만난 NGO의 대표는 본인이 하고 있는 후원 사업에 타격을 받을까 봐 나와 동료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마을에서 하고 있던 의료진료를 방해한 적이 있다. 험담하고, 말을 지어내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지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땅까지 찾아온 그들이 점점 흑화 되어 가는 과정은 안타깝다. 그들은 한국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후원자를 모집하고, 아프리카에 돌아와서는 자기 땅을 넓히고, 배를 불린다. 


그런 현실을 알고 있으니 문근영 씨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나오는 대답이 긍정적으로 나올 리 없다. NGO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전했으니 대답을 하는 나도, 듣는 그들도 기분이 찝찝하긴 매 한 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쌓이면 곪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터지는 법. 모두가 쉬쉬 하더라도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한다. 곪아가는 그 과정을 가리기 위해 천을 덮고, 이불을 겹겹이 덮고 그 위에 올라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다면 한 줌의 뿌리까지 썩어 내릴 수밖에 없다. 썩은 뿌리에서 영양을 받고 위로 올라와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썩은 영향일 테고, 그 썩은 영향은 다시 또 그렇게 흑화 된 인간을 길러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NGO가 이렇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고, 존경을 받아 마땅한 지부장님들이 많이 계신다. 어느 집단이건 깨끗한 물을 흐리는 건 몇 마리 미꾸라지 때문이다.


지금도 척박한 땅에서 본인의 사명을 다해 어려운 이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계실 분들을 응원한다. 그분들이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을 볼 때면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그분들이 몇 마리의 양심 없는 미꾸라지들 때문에 손가락질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문근영 씨와 촬영팀들이 다녀간 곳은 여러 군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쓰레기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 이번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신 분들을 초대해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고, 그때 이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혼자는 위험해서 가면 안되고, 현지인이 한 명이라도 같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했다. 다음 날 병원으로 돌아와 의사 동료들에게 물었다. 그곳에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고. 그런데를 굳이 왜 가냐는 답이 들려왔다. 가지 말라고, 병 옮는다고.


그 주말, 나는 혼자 문근영 씨에게 받은 주소를 가지고 그곳을 찾아갔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사람들에게 물어 쓰레기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긴장이 돼서 입구에 있는 현지인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같이 동행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현지인은 흔쾌히 허락했고 나와 같이 동행을 해주었다. 초입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거대한 쓰레기 장이 나타났다. 쓰레기로 가득 찬 공간에선 수백 마리의 파리들이 날아다녔고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악취가 코를 쑤셨다. 도저히 그 상태 그대로 냄새를 맡고 있기가 힘들어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수백 마리의 파리들은 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파리들 사이로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들부터 청년, 장년들까지.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놀기 바쁘고, 어른들은 그곳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아이들도 배가 고파지면 쓰레기 더미에서 코코넛 가루 같은 것을 찾아 입에 주워 넣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 날 하루 먹을 음식이었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수 백 마리의 파리도, 토할 정도의 악취가 나는 그곳의 공기와 냄새는 신경 쓸 것이 못되었다. 생기 없는 얼굴로 쓰레기를 뒤적거릴 뿐이었다.


이 장소는 릴롱궤(수도)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 갖다 버리는 장소다. 이곳 주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내다 팔 수 있는 물건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모여들게 되었다. 맨 처음엔 팔 수 있는 쓰레기들만 취급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주워갈 수 있는 양이 적어졌을 때 남이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들까지 먹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곳에서 살 수가 있지.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살 수가 있지. 어른뿐 아닌 아이들 조차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지만 2-3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조차도 엄마 등에 업혀 쓰레기를 주웠다. 파리와 악취는 아이들의 눈가에 들러붙었다.







그로부터 30분 뒤 커다란 트럭이 들어왔다. 릴롱궤를 한 바퀴 돌아 쓰레기를 수거해 이곳으로 가져오면 사람들이 단번에 모인다. 쓰레기를 쏟아놓자 너도나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서로 자기의 쓰레기라며 싸우는 소리도 들린다.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같이 동행을 해준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이들은 왜 이렇게 사는 것이냐고. 


- 이들도 처음엔 이렇게 살지 않았지. 당연한 소리지.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는데 마땅한 일자리는 없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해서 이들을 써주는 곳도 없고. 어떤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죽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바등바등하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거겠지.


쓰레기 마을을 다녀온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이 환경을 바꿀 수도, 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무언가 해야 했다. 이토록 참혹한 현실을 보고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그들 모두를 바꿀 수는 없고, 환경을 뒤엎을 수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이다. 어떤 일을 하던 거창한 무엇인가를 단번에 바꾸려 하기보다는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기본에서 부터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기본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시점도 찾아온다.


나는 빵과 잼, 칫솔과 치약을 샀다. 100개의 빵을 만들었다. 저번 주에 같이 갔던 현지인과 함께 마을로 다시 찾아갔고, 빵과 칫솔, 치약을 나눠줬다. 칫솔질하는 법을 알려주고, 밥을 먹은 후, 혹은 자기 전에라도 꼭 양치질은 하고 자야 한다, 그래야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먼저 빵을 가져가기보다 아이들을 먹였다. 그러나 이건 1차원적인 생각일 뿐이었고, 일회성에 불과했다. 이런 방법으로는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없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날마다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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