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히말라야 지진에서 살아남기 (3)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각국의 트레커들은 같이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내려가자. 내려가야만 해. 더 이상 올라가면 죽을 거야. 몇몇 그룹이 생겼다. 한 트레커가 내게 다가온다.


"넌 어떻게 할 거니? 내려갈 거면 우리랑 같이 가자."

"고맙지만 나는 조금 더 올라가 보려고."

"???,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위험한 건 알겠는데 여기서 포기하고 싶진 않아."

"... 그래 알았어. 조심해. 행운을 빌게."


패기였을까 객기였을까. 20대 젊은 청춘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믿음은 어디서 나온 근자감인가. 나는 내려가는 트레커들을 뒤로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을 뒤로한 채 홀로 올라가는 기분은 정말 이상했다. 죽을 수도 있을까? 그래, 죽을 수도 있지. 근데 난 이 결정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내가 하고 싶은 결정을 내린 거니까. 나는 후회 없는 결정을 하고 싶었다. 3650m에서 하산한다는 건 후회를 남기기에 충분한 결정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주변은 고요하다. 다른 지역이었다면 앞뒤로 여러 트레커들과 마주치고 했을 텐데 지진이 난 후여서 그런지, 어떤 사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곳곳에 쏟아진 돌무더기들이 작은 탑을 이루고 있다. 유실된 길이 많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계속 올랐고, 무너진 길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더뎠다. 지진이 난 후 다시 출발했던 시간은 대략 오후 3시였다. 오후 5시가 되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사방은 안개로 둘러싸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비에 온 몸과 가방이 젖는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비는 눈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싸구려 장갑은 엄지 손가락에 구멍이 나있다. 엄지는 보호받지 못하고 벌벌 떤다. 싸구려 등산화에도 사부작 밟힌 눈들이 노크도 없이 침투하기 시작한다. 발이 젖기 시작한다. 눈은 온 세상을 새하얀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지진이 아니었다면 아마 황홀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날은 정말 추웠다. 꾸역꾸역, 한걸음 한 걸음씩 올라간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다.


이윽고 내 앞에 양갈래 길이 놓여있다. EBC에 오르기 전 고산병을 조심하라는 말 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말은 길을 잃는 경우에 대한 것이었다. 가이드 없이 혼자 산을 오를 때, 양갈래 길이 나면 무조건 멈추고 사람을 기다린 후 올라가라고 했다. 잘못된 길로 들어가 그대로 영영 사라진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양 갈래 길 앞에서 멈춰 섰다.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망설여졌다. 혹여나 아닐 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나는 주저했고, 길 가운데 앉아서 사람을 기다리기로 했다. 눈과 비는 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방과 비니, 패딩이 점점 더 젖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니 추위가 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Is there anybody here? help me! 크게 외쳤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휘날리는 비와 눈, 바람의 소리뿐이었다. 다시 앉아 사람을 기다린다. 괜히 올라온 걸까? 역시 객기였을 뿐이었나? 사람이 올라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발은 조금 더 거세졌다. 다시 일어나 외친다. Is there anybody here!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윽고 사람을 기다린 지 40분째, 투다다닥, 어떤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한껏 기대하는 마음으로 누가 올라오는지 살폈다. 빨간 천을 두른 수도승이었다. 나이는 40대 정도 돼 보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우선 사람을 봤다는 것에 감사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고맙다고 했다. 수도승은 어리둥절했다. 대체 뭐가?


길을 물었고, 수도승은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수도승은 너무 빨리 올라갔다. 뒤쫓아가기에도 벅찼다. 한 시간여를 더 올라가니 드디어 마을로 보이는 평지가 보인다. 그러나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해준 건 아예 폭삭 무너진 롯지였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폭삭 무너져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거대한 수도원(사찰?) 같은 것이 보였는데 절반이 통째로 부서져있다. 절반은 그나마 모양을 갖춰있지만 위태로워 보였다. 수도승과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바디랭귀지를 하며 트레커들, 여행자들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수도승은 멀뚱멀뚱 서서 듣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어딘가로 뛰어갔다. 이윽고 5명의 수도승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들 중 그나마 영어가 되는 한 수도승이 있었고, 나는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의 트레커들은 다 떠났다고 말했다. 지진이 나서 다들 내려갔다고, 나는 왜 올라왔냐고 묻는다. 말이 안 나왔다. 그저 나 같은 여행자들을 보고 싶었다. 좌절했고, 다시 주저앉았다. 수도승은 트레커들을 만나려면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마을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수도승들과 같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 안심이 더 될 것 같았다. 나는 당장 일어나 수도승이 알려준 방향으로 길을 옮겼다. 30분쯤 더 갔을까, 넓은 평지 가운데 조그마한 파란색 롯지가 보인다. 벌써 날은 어두워졌다. 나는 저곳에 사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누구 계세요?"

"누구세요?"


네팔 사람이 나온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어.. 저기 혹시 여기 롯지인가요? 트레커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는데요."

"아, 네 맞아요. 롯지에요. 들어와요. 지금 올라온 거예요?"

"네 방금 도착했어요."

"지진이 났는데 올라왔다고요?"

"네.. 그런 셈이죠."

"미쳤군요 하하"


나는 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는 큰 난로가 하나 있었고, 그 주위로 트레커들 열댓 명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간은 저녁 8시. 내가 들어가니 모두들 나를 쳐다본다. 나는 울먹이는 소리로 드디어 트레커들을 찾았다며 여기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들은 크게 웃었고, 박수를 쳐줬다. 지진이 난 후에 올라온 거야? 얼마나 걸렸어? 어디서 올라왔어? 오는 길은 괜찮았어? 무섭지 않았니? 대단하다. 미쳤다. 죽을뻔했어 너, 등등 수많은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나는 하나하나 대답을 하고 난로 옆에 앉는다. 따듯한 마늘 수프 한잔을 시키고, 난로에 몸을 녹인다. 옆에 있는 트레커들과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니 마음이 편해진다. 안정감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숨이 갑자기 가빠진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토할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갔다. 호흡이 짧아졌다. 숨쉬기가 조금 힘들다. 토할 것 같은 메슥거림은 계속된다. 일어나 화장실을 가 구토를 한다. 자리에 돌아와서도 힘이 들었다.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 듯 보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초점이 흐려진다. 허공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본다. 눈을 길게 감았다 뜨고, 핸드폰의 가족사진을 본다. 살아야 해. 아프면 안 돼. 죽으면 안 되지.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지진의 트라우마와 후유증, 고산병 증세가 같이 나타난 듯 보였다.


내 앞으로 스위스 여자가 앉았다.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어질 거리고 토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따듯한 마늘 수프를 하나 더 시켜줬다. 내 상태가 조금 이상한 걸 알고 온 것 같았다. 내게 어디서 왔고, 어쩌다 트레킹을 시작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 묻기 시작한다. 증상이 아주 심각한 건 아니었어서 하나하나 대답을 해준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되고,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금세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리니 상태가 훨씬 나아졌다. 스위스 여자는 같이 온 동료들을 소개해준다. 우리는 다시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 때 누군가 롯지 문을 열고 외친다. 모두들 밖으로 나와봐! 빨리빨리! 또다시 긴장감에 휩싸인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지? 하며 모두들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갔을 때, 우리는 바로 앞에 놓인 광경에 입을 벌리고 넋을 잃고 말았다. 그곳엔 아마다블람이라 불리는 산이 눈 앞에 떡하니 마주하고 있었다. 청명한 새벽 공기에 어울리는 수많은 별들, 그 사이로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설산은 우리 모두를 압도시켰다.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대자연의 황홀한 자태에 깊이 빠져들었을 뿐.



지진이 난 후 마을은 안개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아마다블람은 그 멋진 자태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모두 다시 롯지로 들어왔고, 트레커들 하나하나 방을 배정받았다. 자리가 부족해 모두가 방을 쉐어해야 했고, 어떤 트레커들은 홀과 주방에서 잠을 자야 했다. 나는 영국인 케인과 함께 자기로 했다. 모두가 잠에 빠져들었을 무렵, 땅이 다시 흔들렸다. 다시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케인은 소리를 질러 나를 깨웠고 나는 지진을 감지했다. 빠른 속도로 뛰쳐나갔다. 모두 공터에 나와있었다. 다행히 큰 지진은 아니었고, 여진이었다. 우리는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새벽 한가운데 수많은 별빛이 우리를 총총 비추던 시간, 멋진 아마다블람의 자태 앞에서 우린 한없이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30분을 덜덜 떨며 기다린 후 다시 롯지로 들어갔다. 어떤 트레커는 불안하다며 홀에서 밤을 새운다고 했다. 나는 몹시 피곤했고, 금세 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다음 날 느지막한 아침, 케인은 벌써 떠나고 없었고 주인이 밤에 괜찮았냐고 물었다. 나는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잘 잤다고 말했다. 내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여진이 몇 번 더 일어났다고 했다. 나는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아주 잘 잤다고 말해 모두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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