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서 온 등산객들이 비행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와 산에 오를 채비를 마쳤다. 탐험대를 이끌고 오신 대장님은 혼자 이곳에 온 청년이 대견하다며 무슨 일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연락처를 주시고 떠나셨다. 나도 대강 준비를 마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루클라 마을은 2800m에 위치해 있었고, 팍딩(2600m)을 지나 남체(3400m)까지 오르는 게 첫날 목표였다. 600m 올라가는 게 그다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잡은 계획이었는데, 오며 가며 만난 캐나다인 친구 제프리가 고산에 적응하면서 천천히 가는 게 나을 거라며 자기와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혼자 가는 게 심심하기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올랐다. 팍딩에서 하루를 묵고, 이틀째 되는 날 남체에 올랐다. 남체 마을 숙소에 도착해서 부엌에 가보니 첫날 만난 줌마탐험대 분들이 요리를 하고 계셨다. 어머님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대장님도 내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해주셨고 나도 그들 틈에 껴 저녁을 함께했다. 대장님은 내게 혼자 오르면 심심하고,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감사하긴 하지만 민폐일 것 같아 괜찮다고 했는데, 어머님들이 같이 가자고 하신다. 내일까지 생각해보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같이 갈 거면 내일 아침 7시에 나오고, 아니면 나중에 다시 뵙겠다고 했다.
남체(3440m)
다음 날 오전 7시, 사람들이 떠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분들과 같이 가지 않았고, 남체에 하루를 더 머물렀다. 고산 적응을 위해서 이기도 했고 남체란 마을을 둘러보고 싶기도 했다. 히말라야의 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꺼먼 잿가루를 얼굴에 묻힌 네팔의 귀여운 아이들이 내 앞을 뛰어다닌다. 공기는 맑았고, 네팔 특유의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녔다. 밤이 되자 별들은 모습을 드러냈고 선선한 바람은 내 몸을 휘감았다. 남체까지 도착했다는 사진과 글을 SNS에 남기고 기분 좋은 잠에 빠져든다. 내일 있을 산행은 왠지 모르게 기대가 더 되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발한다. 오늘은 텡보체(3860m)까지 간다. 길을 출발한 지 두 시간째, 생각보다 힘들다. 헉헉 거리며 산 허리를 돈다. 주위는 아무도 없이 고요하다. 위치는 3650m 정도 되었을까, 갑자기 땅이 흔들린다. 조그마한 돌들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두두두두두. 산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고, 내 앞으로 돌들이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한다. 어.. 이상한데?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낀다.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뛰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굉음이 들린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린다. 진동은 계속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뛰는 일 밖에 없었다. 진동이 멈출 때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뛰었다. 앞으로, 죽어라 뛰었다.
그리고 멈췄다. 2분 정도 되었을까? 3분? 그 짧은 시간이 마치 20-30분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헉헉대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게 뭘까? 지진일까? 무서웠다. 주위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하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일어났다. 사람을 찾아야 했다. 혼자 있기엔 위험했다. 혹여나 또 땅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걸었다. 1시간 정도를 걸으니 롯지가 나온다. 큰 롯지, 작은 롯지들이 있었는데 작은 롯지 몇 개가 폭삭 무너져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그나마 멀쩡했던 큰 롯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외국인 트레커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점심시간이었던지라 배가 몹시 고팠다. 점심으로 양차우 프라이드치킨 라이스를 시켰다.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까 뭐였어요? 지진?"
"응 맞아. 엄청 큰 지진이었어. 우린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낙석들이 떨어지고 지진이 나서 다시 되돌아왔어."
"엄청 컸나 보네요. 옆에 롯지들이 무너졌어요."
"응. 너도 조심해. 다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불안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안되는데. 곧이어 양차우 프라이드치킨 라이스가 나왔다. 맛있겠다. 엄청 배가 고팠거든. 한 입 먹으려는데 유럽에서 온 듯한 젊은 여자가 내게 말을 건다.
"안녕, 너 혼자 왔니?"
나는 입을 반쯤 벌린 상태에서 밥을 넣다 말고 그 여자애를 쳐다봤다. 그리고 대답하려는 순간, 그 여자애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갑자기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롯지 전체가 크게 흔들린다. 네팔 아저씨가 갑자기 롯지 문을 열고 모두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우리는 모두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뛰쳐나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우리가 있던 롯지의 기둥이 무너지면서 한쪽 면이 주저앉기 시작한다. 곧이어 다른 쪽도 무너지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휘날린다. 우리 앞에 박혀있던 10m는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돌이 흔들흔들 움직인다. 네팔 아주머니들은 공터에 나와 무릎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며 히말라야 신에게 부르짖는다. 더 크게 부르짖는다. 나도, 세계 각지에서 온 트레커들도 길이 난 곳 양 옆으로 뛰어다닌다. 어디로 돌이 떨어질지 몰라 무조건 하늘을 보며 뛰어다닌다.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 저 위에서 주먹만 한 돌들이 떨어진다. 땅이 계속 흔들리고 어디선가 자꾸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서로 뛰어다니다가 부딪힌다. 넘어진 손을 일으켜 세울 여유 따윈 없다. 각자의 생존만 있을 뿐.
이윽고 굉음이 멈추고, 흔들리던 땅과, 큰 돌의 움직임도 멈춘다. 우리의 긴장도 한순간 지나간 듯 보이지만, 미세한 떨림은 손 끝부터 발 끝까지 계속된다. 다리는 후들후들. 주저앉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심장이 쿵쿵 쿵쿵 터질 것만 같다. 동공의 움직임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땅으로 내려왔다가, 양 옆을 잽싸게 훑어보기에 바쁘다. 대자연의 진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네팔 아주머니들은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울며 기도한다. 롯지들은 몽땅 부서지고, 돌에 맞은 네팔 사람 하나는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누워있다. 죽진 않았다. 여성 트레커 한 명이 울기 시작한다. 나 또한 울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이게 과연 뭐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30분을 긴장한 채 넓은 공터에서 하늘을 보고 서있었다. 언제 또 지진이 날지 모르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30분이 지났다. 다음 스텝이 중요했다. 앞으로 가느냐. 물러서느냐. 많은 트레커들이 그룹을 지어 내려간다고 한다. 내게도 같이 가자고 한다. 나는 고작 3600m 정도 오려고 이 곳에 온 게 아니었다. 지금 내려가는 건 후회만 남을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곧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는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