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히말라야 지진에서 살아남기(1)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캐나다로 떠났을 때가 8월이었으니까,

네팔 지진을 겪었을 때는 2015년 4월 25일 그 언저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 기념으로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나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누군가가 올린 히말라야 산맥 사진을 발견했다. 순간 눈이 번뜩 뜨였고, 그 자리에서 졸업 여행지로 히말라야를 택했다. 뜬금없이 히말라야라니. 등산해봤냐고? 응 아니. 내게 등산이란 뭐랄까. 음.. 다시 내려올 거 왜 올라가? 이런 아재 감성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히말라야의 정령에 취한 건지 뭔지, 그대로 네팔 카트만두 비행기를 끊어버렸고, 정신을 차렸을 땐 메일에 도착해 있는 보딩패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인간의 대표 격인 셈이다. 히말라야를 왜 때문에 가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재밌어 보여서? 가 될 수 있겠다. 내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주를 이루는 요소는 재미다. 재미. 재미가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고로, 사진에서 보였던 뾰족하고 새하얀 눈에 덮인 삼각형 모양의 히말라야 산맥은 내게 재미와 흥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행기 탑승일은 일주일 뒤였다. 나는 선지름, 후조치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먼저 지르고, 그다음 수습한다. 네팔행 비행기를 질렀으므로 이제 수습을 할 차례다. 히말라야에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았다. 별 거 없었다. 경량 패딩, 바람막이, 트레킹 폴, 아이젠, 등산화, 그밖에 몇 개의 옷가지들. 트레킹 폴이나 아이젠, 등산화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등산의 등도 모르는 내가 이런 걸 가지고 있을 줄이야. 조금 더 찾아보니 카트만두에서 빌릴 수가 있단다. 역시. 길이 있는 곳에 뜻은 어디에나 있어! 잉?ㅋ 어쨌든, 다 빌릴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챙겼던 건 아이패드(응?)와 청바지(응?). 브이넥 셔츠(응?)와 같은 등산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이었다고 한다. 일주일 뒤, 네팔로 출발하기 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조금 한 후에 혼자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탔다.


카트만두는 뿌연 먼지들로 나를 반겨줬다. 세상이 황토색이었다. 스카프로 입을 가리지 않고는 다닐 수 없는 도시였다. 마치 모래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보였다. 공항에서 카트만두 중심지로 이동했고, 숙소로 들어가니 조금 괜찮았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러 여행사로 향했다. 여행사는 내게 포카라라는 도시로 가라고 했다. 그때 여행사에서 발견한 사진 하나가 있었는데 그 산이 어디냐고 물으니, 에베레스트라고 한다. 에베레스트?

에. 베. 레. 스. 트? 내가 아는 그 에베레스트가 맞냐고 물어보니 맞단다. 뭘 그렇게 놀라냐는 눈빛으로. 나는 일반인도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있는지 물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이나,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칼라파타르까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의미는 동일하지만, 조금 더 엣지있어 보이는 에베레스트를 택할 것인가, 아님 기존에 생각했던 안나푸르나를 택할 것인가.


나는 역시 허세 가득한 관종이었다. 남자라면! 에베레스트 한번쯤! 어? 가 줘야지!라는 말 같지도 않은 허세로 안나푸르나로 가려했던 계획을 바꿔 에베레스트로 정했다. 말로만 듣던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 일반인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꼭대기 까지는 아니지만) 등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몹시 흥분됐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기 위해선 퍼밋도 받아야 하고,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또 한 번 타고 루클라라는 곳으로 가야 한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전 출발하는 마을이 있는 공항이다. 말인즉슨 비행기 값 300불과 퍼밋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저러한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 표를 사고 등반에 필요한 장비들을 빌리러 다녔다. 등산화를 빌리고, 트레킹 폴을 빌리고, 경량 패딩과 레진 물통을 샀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니 네팔에 도착한 지 3일이 지나있었다. 같은 숙소에는 일본인 남자, 베네수엘라 커플 하나, 여자 하나 이렇게 있었다. 그 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네팔에 대한 이야기, 인도에 대한 이야기, 베네수엘라와 도쿄와 서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일본 친구는 길을 걸을 때 맨발로 다닌다. 그렇게 살아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다고 한다. 식당에 들어갈 때도, 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비행기를 탈 때도 맨발이라고 한다. 자신만의 수행이라고 한다. 신기했다. 베네수엘라 커플과 여자 한 명은 서로 가족과도 같은 관계고 여행을 하며 팔찌와 반지 등을 만들어 팔며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재밌는 친구들이었다. 나중엔 한국인 형과 동생도 만나 합류했고 에베레스트로 출발하기 전까지 같이 시간을 보냈다.


루클라 공항으로 떠나는 날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카트만두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중 눈에 띈 것은 한 무리의 한국인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단체로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온 듯 보였다. 초보였던 나는 조용히 구석에 박혀 탑승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시간이 되면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안 뜰 수도 있는데 내 비행시간이 바로 오후 3시였다. 기상은 괜찮아 보였고 탑승하라는 방송이 나와 탑승을 했다. 비행기가 출발 했고 옆으로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은 웅장했다. 막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조그마한 비행기의 기내는 몹시 흔들렸다. 불안 불안했는데 기상이 악화된 것이다. 우리는 약 20분 정도 비행을 하다가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김이 샜다. 다시 숙소로 돌아갔고, 작별인사를 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공항으로 향했고, 하늘은 눈부셨다. 우린 문제없이 카트만두를 떠나 루클라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EBC를 지나 칼라파타르까지의 완벽한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의기양양하게 카트만두로 귀국하는 모습을 꿈꿨지만 며칠 뒤 그 의기양양함은 사라지고 자연의 무서움에 벌벌 떠는 새끼 고라니 같은 모습만 남았다고 한다. 루클라 공항에 같이 내린 한 무리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줌마 탐험대'라는 이름의 등산 팀이었다. 아줌마들이 주 멤버여서 이름이 줌마 탐험대고, 대장과 사무장, 위원장님은 남자였다. 이 탐험대의 대장님이랑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얘기를 나누고, 그들은 그들의 길을, 나는 내 길을 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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