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리투아니아의 한국 치대생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모스크바, 러시아에 도착했다. 경유지였다. 불과 며칠 전에 난 유럽과는 정 반대 방향인 캐나다를 향해 갔었는데 지금은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가면 좀 나아질까? 잘 알 순 없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나를 밀어 넣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긴 했다.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에 도착했다. 캐나다처럼 비자 검사를 깐깐이 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무런 질문 없이 그냥 들여보내 주었다. 형과 P는 수도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우테나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는 빌뉴스에 며칠 머무른 후에 우테나로 넘어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발코니에 앉아 내리는 비 냄새를 맡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신기했다. 피로가 쌓였는지 그대로 침대에 무너져 내렸다. 눈을 떠보니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씻고 준비해 빌뉴스의 대학교로 찾아갔다. 벌써 큰 일을 두 번이나 겪은(네팔과 캐나다) 나로선 거리낄 게 전혀 없었다. 치의학과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 다짜고짜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조르바입니다. 치과 자격증 따는 방법을 알아보러 왔는데요."

"오 안녕하세요 조르바. 치과 자격증이요? 그렇군요, 우선 조금 기다려야 해요. 지금 저희가 매우 바쁘거든요. 조금 기다릴 수 있나요?"

"네 그럼요 물론이죠! 얼마 나요?"

"우선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면 저희가 연락을 드리도록 하지요."

"...."


바쁘다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땡깡을 부릴 수도 없고, 참 나 이거 뭐. 핸드폰 번호도 없어서 며칠 후에 다시 찾아온다고 하고 혹시 몰라 이메일을 남겨놓고 나왔다. 숙소로 돌아왔다. 할 일이 없었다. 무료하고, 심심했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무턱대고 떠난 이 행동이 과연, 잘한 일일까.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 이곳에 남아야 할까. 또 떠나야 할까. 복잡하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 마음은 곧바로, 두려워하면 뭐해? 이미 왔는 걸. 밖으로 나가서 구경이나 하지 뭐, 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공원을 걷고, 쇼핑몰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한국인 한 분이 보였다. 뭐지. 왜 이렇게 반가운 거야?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 분이세요?"

"어, 네. 한국인이에요."

"우와, 여기서 한국인 처음 봐요."

"네 여기는 한국인이 많진 않아요."


그분은 내게 이곳까지 어떻게 오겠냐고 물었고 나는 캐나다에서의 일은 말하지 않은 채 치과 자격증 따는 법을 알아보러 왔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분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더니,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네? 뭐가요?"

"여기 리투아니아 치대요. 어떻게 아셨어요?"

"??? 어.. 어떻게 알다뇨??? 그냥 서치 해보기도 하고, 아는 형이 여기 거주해서 왔는데요"

"신기하네요. 보통 그렇게 오진 않거든요."


이분은 나를 계속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이야기를 더 들어봤더니, 이곳에 한국과 리투아니아의 치대를 이어주는 유학원이 있다고 한다.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데 한국에선 성적이니 뭐니 해서 들어가기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눈을 외국 치대로 돌린 사람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단지 다른 건 이 사람들 사이엔 유학원이 껴 있었다. 어떤 유학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유학원 또한 이 루트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고, 리투아니아 치대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딴 사람들의 자격증을 한국 자격증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유학원은 리투아니아 치대에 관한 설명과 학교 입학 절차를 밟아주고 수수료를 받는 듯했다. 졸업 이후의 삶까진 어떻게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유학원이 받는 비용을 들어보니 어마 무시했다. 그 큰돈을 내고 이곳까지 온 한인 학생들은 리투아니아 치대에 관한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걸 꺼려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필리핀에서 치대를 졸업하신 한인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자격증을 바꾸고 일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 정보를 알고, 그 루트대로 자격증을 따다 보니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 그 방법을 막았다고 했다. 이처럼 리투아니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루트가 막힐 거라는 생각에 이곳에 있는 한인 치대 학생들은 외부인을 멀리했다. 그렇기에 갑자기 화성에서 뚝 떨어진 듯한 나의 존재는 가히 이상하고 신기하게 보였으리라. 그래서 그 한국분은 내게 자꾸 어떻게 오셨냐고만 물었을 테고. 나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해준 그분에게 내 스토리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그분은 그나마 내게 호의적이었고, 치대 한인회에 연락을 해서 다 같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하루가 지났고, 그분에게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 어제 만났던 그 사람인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 제가 물어봤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올 수 있냐고,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도 왜 그런 정보를 알려주냐고, 앞으론 만나지 말라고 하네요. 죄송합니다ㅠㅠ"


하하하하. 나는 정말이지 이 말을 듣는데 너무너무 어이가 없었다. 사실 그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생각도 하지 않고 왔는데 아니, 그런 사람들이 이런 외딴곳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하고 왔는데 저런 식으로 사람을 하하하하. 매도한다고 해야 하나? 무척이나 어이가 없는 말에, 네 알겠습니다~라고만 답장을 보냈고 그분은 한 번 더 죄송하다고 했지만 씹었다. 더 웃긴 건, 그 다음날 한인회 전 회장이었나 하는 사람에게 카톡이 왔다.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아니, 이게 그렇게 큰 일인 거야? 무슨 뭐, 누가 들으면 국가기밀이라도 털린 줄 알겠네.


다음 날 우린 만났다. 그 사람은 참 똑 부러진 여자로 기억한다. 그분은 벌써 졸업을 하고, 유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더랬다. 이야기를 나눈 건 대부분 위에 말한 내용과 비슷했다. 오해하지 마시고, 이러이러한 상황이니, 이해를 해달라. 그러나 내가 이곳에 있는 건 아마, 다른 사람들도 원치 않을 것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아니 저기요, 이 나라가 당신네들 거냐고요. 유학원 거야? 대체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나는 니네들하고 어울릴 필요도 없고, 안 어울려도 돼. 영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하하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하하하하. 그리고 우린 헤어졌다.


한 편으론 씁쓸했다. 정보, 루트, 중요한 거 알겠어. 중요하지. 얼마나 큰돈을 내고 왔고, 자기들 인생이 걸려 있는 문제일 텐데. 이해는 했지만 씁쓸한 맛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같은 민족, 국가, 대한민국 뭐 이런 거 끼워 맞추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같은 민족인데 타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니 차-암 씁쓸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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