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부쿠레슈티에 도착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루마니아의 비극이 시작된 날이다. 아니 어쩌면 클루지 나포카에 들어섰을 때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교육부, 보건복지부, 학교 모두가 문을 열지 않았기에 이틀을 하릴없이 쉬어야 했다. 부쿠레슈티에 할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별게 없다. 관광도시도 아닐뿐더러 이곳 주민들 조차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도시를 회색도시라며 싫어한다.

인민궁전

잠시 짧게 이 나라의 아픈 역사를 읊어보자면, 독재자였던 차우셰스쿠는 인민들이 빈곤에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평양의 주석궁을 벤치마킹해 인민궁전을 건설했다고 한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역사적 유물과 문화재를 파괴하면서까지 인민궁전을 세우고, 반정부 시위자들을 무차별로 학살했다. 그 수가 1만 명에 이르렀으니, 국민들은 그의 폭정을 참지 못하고 그를 단죄하기로 결심한다. 1989년 12월 그가 연설할 때 시민들은 폭발했고, 그를 죽이기 위해 광장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다. 차우셰스쿠는 도망을 갔다가 나흘 뒤 군인들에게 다시 잡혀 그의 부인과 함께 공개 총살형을 당하기에 이른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공산주의 독재자였다고 한다. 북한으로 망명하려다 붙잡혀 총살을 당했으니, 하늘 가는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추잡하고 초라했을지 상상이 간다.


숙소 주인에게 이런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 일찍 교육부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많았고, 우린 대기해야 했다.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3시간이 지났고 12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점심시간이라며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한다. 할 수 없이 우리도 점심을 먹고 왔다. 그런 후 또다시 대기. 사람들이 느린 건지 시스템이 느린 건지 무척이나 오래 기다렸다. 직원들의 자리에선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는데 아무도 받는 이가 없었다. 아니 왜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아?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고 자초지종 설명을 하며 클루지 나포카의 대학에서 이쪽으로 가보라고 했다고 했다. 내 말은 듣던 직원은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왜 여기서 처리해?"

"음? 음.. 교육부.. 니까? 그리고 그쪽 대학 행정담당 직원이 이곳으로 가보라고 했으니까..?"

"(웃으며) 여기는 그런 문제를 떠맡을 만큼 한가하지 않아. 줄 서있는 사람들 봤지? 우린 엄청 바빠. 너의 이슈는 아마 다시 학교로 가서 물어봐야 할 거야. 여긴 아니야."

"(당황) 아니 학교에서 여기로 가라고 했는데... 그럼 보건복지부는 어때?"

"글쎄, 거기도 아닐 텐데. 모르겠다. 한번 가봐. 근데 내 생각엔 학교로 가야 해. 버스타고 좀 가면 '이야시'라는 학교가 있어. 그쪽 치대가 유명해. 거기로 한번 가봐."

"아... 알았어. 고마워."


슬슬 열이 뻗쳐 올랐다. 누구를 향한 분노도 아니었고 그냥 이 상황 자체에 열이 받았다. 나는 전화를 잠시 쓸 수 있냐고 물었고, 보건복지부와 이야시 대학에 전화를 걸었다.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아까 이곳에서 본 풍경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벨은 울리는데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풍경이 눈에 선했다.


교육부에서 나와 보건복지부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미 오후 4시가 다 된 상황이었고 지금 가봤자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도 문을 닫을게 뻔했다. 허탈한 심정으로 걸었다. 시티뱅크로 가서 돈을 뽑고 그 옆에 있는 스타벅스로 갔다. 이 스타벅스는 루마니아에 있는 동안 아마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일 거다.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와이파이 거지였다. 그만큼 부쿠레슈티에는 할 일이 없기도 했다(....). 인터넷을 조금 쓰다가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갔다. 학교로 다시 가라고? 이런 %$%^#. 불길한 느낌은 항상 적중했다.


다음 날, 보건복지부로 향했다. 살다 살다 루마니아의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를 갈 줄이야. 다행히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보건복지부로 오는 건 조금 쌩뚱맞다 생각했다. 이런 문제가 보건이나 복지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했지만 학교도 아니고, 교육부도 아니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나 잡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복도를 걸어가던 직원을 잡고 물었고, 이 직원은 어리둥절하며 다른 직원을 불러줬다. 루마니아어로 뭐라고 하더니 그 직원 또한 다른 직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의외로 잘 풀리는 것 같은 상황에 기분이 살짝쿵 좋아졌다. 혹시나, 의외로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겠다 싶어 나를 맞이한 세 번째 직원에게 열과 성을 다해 내 상황을 설명했다. 캐나다에서의 일과 리투아니아, 헝가리, 클루지 나포카, 교육부에서 나누던 대화들. 내가 어떻게 이 나라의 보건복지부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가 지은 표정의 의미를 알 순 없었다. 눈썹을 찡그리고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 거리며 깊게 숙고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아는게 있니?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알아?"

"음.. 아니 미안. 잘 모르겠네. 근데 그건 아무래도 학교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여긴 아니야."


역시는 역시였다. 그럼 그렇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 상에 있을까. 직원에게 혹시 이런 문제에 대해 알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그는 다른 직원을 찾아 물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답은 그대로였다. 형과 나는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아무 말없이 떠돌이 개처럼 하늘을 보며 걸었다. 한숨은 나오고 앞 길은 보이지 않는데 나는 갈 곳이 없고. 여기도 아니란 말인가. 그럼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보기로 했다. 교육부에서 말한 '이야시'라는 대학으로 한번 더 가보기로 한 것이다. 이야시 대학은 부쿠레슈티에서 동북쪽으로 9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 루트 한번 기가 막히는 구만. 클루지 나포카 - 부쿠레슈티 - 이야시는 각각 9시간 코스로 이루어진 버뮤다 삼각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야시에서 이야기가 잘 된다면 모르겠지만 또 한 번 안된다면 그다음은 어쩌지? 다시 부쿠레슈티로 돌아와야 하나? 으아아아. 루마니아를 죽이고 싶었다. 필리핀을 죽이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 빠진 나를 죽이고 싶었다.


결국 다시 한번 지루한 9시간 버스를 타고 이야시에 도착했다. 이젠 해탈한 듯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숙소에 가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학교에 갔다. 다시 한번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교수를 만났다. 그 대학의 교수는 나를 Dentistry department dean`s office로 데려갔고 헤드를 만나게 해 주었다. 헤드는 우리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는데 그 따스함이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따스함과는 별개로 이 문제가 과연 이곳에서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헤드는 최대한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따로 상담시간까지 만들며 우리와 이야기를 나눴다.


전 상황과 마찬가지로 형의 케이스는 편입이 가능하지만 루마니아 현지 언어가 되어야 나중에 자격증을 따고 일을 할 수 있다고 결론이 났고, 나 또한 그 전과 마찬가지로 응? 하는 표정이 나왔다. 그걸 왜 여기서 해결하냐는 듯이, 내게 교육부로 다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클루지 나포카에선 교육부로 가보라고 했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선 다시 학교로 가보라고 했다며 이 곳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다시 교육부로 가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요? 오- 이 가련한 인생이여- 한 편의 우울한 시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왔고 나는 곧 세체니 강물에 몸을 던져 죽어버릴 비련한 소설의 주인공 같은 처지가 되었다.


다시 교육부로 가라고? 여기서 처리하는 법을 모르겠다고? 여기 관할이 아니라고? 다시 부쿠레슈티로 가라고? 이런 답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전화도 안 받아, 이메일 답장도 안와, 연락할 수단이 도저히 없어서 거치적거리는 캐리어와 함께 이곳으로 장장 9시간의 버스를 타고 도착했는데, 다시 돌아가라고?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아. 아... 아. 난 내가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왜 필리핀으로 갔을까. 왜 거기서 치대를 다녔을까. 그때로 돌아가 나를 만난다면 뚝배기를 잡고 뺨을 때리며 정신 차려!!!! 당장 독일이든 캐나다든 남아공으로 떠나버려!!!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정말 미치고 팔짱 뛰는 일이기 때문에,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당시 받았던 열과 분노가 강하게 올라오는 것이다. 대체 왜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는 거야. 그럼 누가 아는 거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거야?


문득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그 구절이 생각났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나는 과연 새인가? 이 단단한 치의학의 알을 깨기 위해 끊임없이 부딪히고 쪼아대고 투쟁하는 하나의 새인가? 그렇다면 나를 번번이 엿 먹이는 이 세계는 무엇인가? 단지 내가 파괴해야 하는 세계인 것인가? 이 세계를 뚫는다면, 이 세계를 부셔버릴 수 있다면 새로운 전사로 거듭날 수 있는가? 아- 그러나, 이 세계란 얼마나 단단한가. 얼마나 견고한가! 아무리 깨 보려고 쪼아대도, 아무리 파괴하려고 부딪혀봐도 깨지지 않는 이 철옹성은 얼마나 더 큰 집념과 투지를 필요로 하는가! 나는 결국 하나의 알을 깨지 못했다.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지 못해 비참하게 시들어가는 새끼 조류에 불과했다. 아브락사스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는 패잔병에 불과했다. 온몸의 털이 다 빠진 내게 다시 알을 깰 수 있는 힘이란 없었다. 나는 그렇게 깨지지 않는 알 속에 주저앉아 이따위 곳에 날 집어넣은 운명을 저주하며 욕짓거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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