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포기하면 편해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그러하다. 결국 이야시 대학에서도 나는 환영받지 못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이야시 대학의 문제도, 루마니아의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의 빌뉴스 대학의 문제도 아닐 것이며 헝가리 세멜바이스 대학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문제란 무엇인가? 내 케이스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나 같은 케이스는 세계 어딜 찾아봐도 없을 테니, 대학들과 기관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와 같이 졸업한 이란 국적을 가진 친구는 졸업 후 자신의 나라로 가 국가고시를 보고 치과를 열었다. 나와 같이 졸업한 미국 친구들 또한 국가고시를 패스하고, 인턴생활을 하는 친구와, 일찌감치 치과에 들어가 페이닥터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나와 같이 졸업한 캐나다 친구도, 레바논 친구도, 이집트와 필리핀 친구들도 졸업 후 각자의 나라에서 치과의사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반면 나는 한국에서 8420km나 떨어진 이야시라는 대학에서 한번 더 퇴짜를 맞고 다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였는지도 모른다. 캐나다에서의 추방, 아니 치과 공부를 시작한 것 자체가 미스 판단이지는 않았을까? 머리 끝까지 열이 차오른다. 그러나 이 열을 분출할 곳은 어느 곳도 없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고, 멍청하고, 미련한 바보 새끼, 병신 새끼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부쿠레슈티로 돌아오는 버스 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도시의 불빛은 형형 색깔의 희미한 빛으로 빛났다. 거무죽죽한 옷을 걸친 절망은 버스 곳곳을 파고들었다. 버스 의자에, 의자에 붙은 손잡이에, 버스 에어컨에, 버스 서랍장 모든 곳에 절망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절망에게 잡아먹혀 버린 걸지도 몰랐다. 버스 곳곳에 절망이 파고든 것이 아니라 내 목구멍을 먼저 파고들었을지도 모른다. 기도와 후두를 먼저 갉아먹고 척추를 타고 내려와 흉곽과 폐, 심장을 차례대로 점령하고 그 밑의 간, 위, 장을 삼켜버렸는지도 몰랐다. 내 망막에 맺힌 모든 세계는 어두움과 절망이었다. 눈에 비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지만 그럼에도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다채로움으로 빛났다. 내 세계는 이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불과 몇 미터 앞에 놓인 저 세계는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루마니아의 밤을 달리는 이 버스도 그 아이러니를 따라 달리는 듯했다.




부쿠레슈티에 다시 도착한 날은 목요일 오후였다. 벌써 희망은 놓은 지 오래됐지만 마지막으로 교육부를 한번 더 가볼 셈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교육부로 향했지만 문은 닫혀있었다. 목요일 12시 이후에는 일을 안 한다고 하고, 금요일도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할 거 없는 이 회색도시에서 목, 금, 토, 일을 거쳐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인 것이다.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스타벅스에 앉아 내 상황을 알고 있는 몇몇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은 그만했으면 많이 해봤으니 이제 돌아오라고 했다. 포기하고 그냥 돌아와. 어차피 안되네 뭘. 충분히 노력했어. 친구들이 말한 대로 정말 그런 것일까? 나는 절대 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일까?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는 이런 일을 하는 건 멍청한 일인가?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 그래 어쩔 수 없었어,라고 위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몰랐다. 뭐가 맞는 건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몹시 분통이 터지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형은 돌아간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이 짓거리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형의 결정을 존중했다. 나 또한 이런 머저리 같은 행동을 당장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직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형은 다음 날 비행기를 예약했고 바로 귀국했다. 나는 형에게 수고했다 말하고, 형은 내게 더 수고하라고 말했다. 입국심사대로 들어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했고,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도 쓸쓸했다.


홀로 남은 나는 부쿠레슈티 시내 한복판에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다음 일정을 짜고 있었다. 다음 나라는 불가리아였지만 그 나라 또한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루마니아와 별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기에 다른 목적지를 찾았지만 도저히 어딜 가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고, 여행객들과 수다를 떨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한 번은 숙소에서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각자 루마니아에 온 이유를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들 여행의 목적으로, 비즈니스의 목적으로, 디지털 노마드의 삶으로 이곳에 모인 숙박객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와 비슷한 이유를 가진 사람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1도 없었다. 따라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하기가 참 쪽팔렸다. 술을 조금 마신 상태로 막상 내 차례가 오니 두서 없는 말들이 술술 기어 나왔다. 스토리는 졸업 후 네팔 지진의 이야기부터, 캐나다에서의 추방, 한국 귀국, 리투아니아 - 폴란드 - 헝가리 - 루마니아의 대학, 교육부, 보건복지부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줄줄이 흘러나왔다. 나는 한껏 흥분해서 이 나라의 형편없는 시스템이나 캐나다 입국심사대의 쪼잔함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웃긴 건 모든 숙박객들이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흥미롭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었다. WOW, THEN WHAT?, HOW DID YOU DO THAT?, JESUS!, HOLY CRAP!, THAT'S BULLSHIT! 과 같은 감탄사 아닌 감탄사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들의 리액션은 내 한탄에 부스터를 달아줬고, 나는 결국 YEAH, THAT'S WHY I'M HERE BROOO, 를 마지막으로 이 스토리의 끝을 장식했다. 그들로써는 이런 케이스의 여행 이야기가 신기했던 것 같다.


질문은 이곳저곳 양쪽에서 쑤시고 들어왔고 급기야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던 한 친구가 '그래서 너 치대를 졸업한 건 맞지?' 그럼 나 여기 이빨이 무진장 아픈데, 이것 좀 봐줄 수 있어?라고 말하며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안에 있던 숙박객들 전부가(라고 해봤자 5명) 내 앞에 입을 벌리고 줄을 서게 되었다. 딱히 아픈 것도 아니고,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심심해서, 술을 많이 먹어서, 초콜릿을 많이 먹어서, 양치를 잘 안 해서 와 같은 이유로 진료를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웃기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기도 해서 호스텔의 소파 위에 앉아 진짜 병원이라도 되는 양 그들의 치아를 봐주기 시작했다. 중국계 미국인의 치아 하나는 심하게 썩어있었고 육안으로 봐도 당장 신경치료를 하러 가야 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런 통증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를 무려 1시간 이상 붙잡고 이 치아, 저 치아들에 대해 물었다. 나는 질문에 답을 해주다가 내일 또 교육부로 가야 한다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이런저런 경험을 무더기로 하는 것도 참 재주다 싶은 밤이었다.




시시콜콜한 밤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월요일이 됐고, 당당한 걸음으로 아침 일찍부터 교육부로 쳐들어갔다. 그때 나와 상담을 했던 직원에게 이야시 대학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털어놓고, 거기도 아니라고 하니 대체 뭐냐고, 괜히 시간 쓰고 돈만 낭비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묻지는 않았고 조용조용, (그때는 그래도 화가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었다. 이 사람들 탓할 것도 아니고)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 직원은 미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며 나를 더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에게 데려갔으나- 결과는 뻔했다. 이런 케이스를 가진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만나보질 못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관련 서류들을 제출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소득은 있었다. 교육부에서 기다리던 도중 클루지 나포카에서 대학을 다니는 노르웨이 출신 청년을 만났는데 그 친구도 어떤 문제 때문에 이곳에 와있다고 했다. 듣기론 자기 친구들이 '몰타'라는 나라에 공부를 하러 많이 간다며 내게 그곳에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몰타? 몰타가 어디야? 듣도보도 못한 작은 섬나라인 몰타를 처음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여러 설명을 듣고 고맙다고 말하며 스타벅스로 돌아와 폭풍 검색을 하기에 이르렀다. 몰타는 인구수 49만 명에 1인당 GDP가 3만 달러(2018)에 해당하는 섬나라였다. 제주도 인구가 60만이라고 하니, 얼마나 작은 나라일지 쉽게 가늠 되질 않았다. 지도에 찾아보니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조그마한 섬나라가 이탈리아 반도 밑에 위치해 있다. 영어와 몰타어를 공용어로 쓰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휴양지로서 최고의 나라!라고 외치는 블로거들의 글을 읽으니 과연 이곳에 희망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냥 여행차라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마침 거리가 그렇게 멀지도 않고 하니.


여러 나라 치대에 관한 정보는 한글로 치면 많지 않으므로 대부분 영어로 알아보는데 몰타 또한 정말로 국제 학생들이 많았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언어로 야기될 문제는 딱히 없는 듯 보였다. 루마니아에서의 지친 마음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되든 안 되든 모르는 일이지만 안 되면 휴양이나 하지 뭐, 라는 마음으로 몰타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렇게 나는 원피스의 루피가 대항해시대를 탐험하듯 세계 이곳저곳의 교육기관을 쑤시고 다니는 여행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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