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모히또에서 몰타 한잔

인생이 다 그렇지 뭐

by 조르바



나의 대항해시대는 언제 끝날 것인가. 루피는 갈수록 동료를 모으는데 난 하나뿐이던 동료마저 떠나 혼자 몰타행 비행기를 타게 됐다. 루마니아에서의 개고생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분명! 도움이 될 거야,라고 생각을 해야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 않고선 아무런 소득 없이 보낸 이 시간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나마 몰타란 섬나라는 휴양을 하기에 최적의 나라였고,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피로감을 지중해 한가운데 누워 씻어내버리고 싶었다.



몰타는 옛 유적들이 살아 숨 쉬는 나라였다. 갈색풍의 엔틱 한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간질간질한 바람과 파도소리는 루마니아를 완전히 잊게 해 주었다. 나는 짐을 풀자마자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해변가로 달려갔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모랫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소리를 상상하고 공기를 느껴본다. 생생히 살아서 넘실대는 자연을 더 강하게 느끼고 싶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지나온 여정과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한다. 이 항해는 나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뿌옇게 보이는 항로 사이로 조그마한 빛의 입자라도 하나 볼 수 있다면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빛의 입자는커녕 검은 연기들이 바다로부터 뭉게뭉게 피어나 시야를 가린다.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면 이런 일 따위는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포기한 건 아니지만 그에 따른 감정 노동과 물리적 고단함이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수평선의 끝에 도달하면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옛 유럽 사람들의 생각처럼 나 또한 내 앞에 펼쳐진 여정의 끝이 낭떠러지일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을 믿을 필요가 있었다. 누구의 말도, 상황도 아닌,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건 두려움이었고, 나는 몰타에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아마 한국에 돌아가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며칠 후 몰타의 대학을 찾아갔다.


학생들에게 물어 치의학과를 찾아냈고 이내 치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인종은 다양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남아공, 보츠와나, 호주, 리투아니아, 헝가리 등지에서 온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수많은 학생들을 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국제 치대 학부에 관한 인터뷰를 하는 기자라도 된다는 듯이. 학생들은 흔쾌히 응해주었고, 졸업 후 영국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내 케이스의 이야기를 듣더니 교육청에 가보라고 한다. 아마 될 걸? 이 나라는 그런 문제에 있어 꽤 너그러운 나라일 거야. 한 번 가봐. 나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대학 병원을 가고, 교수들을 만났다. 그들 또한 친절했고 내게 교육청에 한번 가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빛의 입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숙소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긍정적인 신호가 많이 보인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졸업한 간호사들 또한 이곳으로 와서 자격증 프로세스를 밟고, 일을 한다고 한다. 다음날 당장 짐을 꾸려 교육청을 찾아가 상담 신청을 했다. 두 시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왔다. 상담사는 영국 발음을 내는 몰타인이었다. 몰타가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미국 영어보다는 영국 영어에 가깝긴 하다. 나는 이러저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제일 기대했던 답변을 기다렸다. 내 증명서로, 이곳에서 일을 할 수가 있는지. 그는 물론 할 수 있다고 했다. 심장이 몸 안에서 흥분하기 시작한다. 혈류가 갑자기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할.수.있.다.고?"

"응. 할 수 있지. 영어권에서 졸업했잖아. 영어도 되고. 서류 절차 밟으면 돼. 좀 기다려야 하긴 하지만."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로 된다는 것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몇 번이고 재차 물었지만 그는 한 번만 더 물으면 내 서류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됐다. 됐어. 찾았어.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는 내 감동 세레머니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류나 빨리 작성하라고 했다.


서류 작성을 하고 곱게 잘 접어 갈색 봉투에 넣고 제출했다. 소정의 돈을 내고 언제 다시 오면 되냐고 물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 기쁜 마음으로 알겠다고 하고 교육청을 나선다. 정말 되는 것일까? 찾은 것일까? 이 나라는 나를 받아줄 수 있단 말인가? 만감이 교차했고,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막상 일이 잘 진행되니 무엇을 해야 할지 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온 나라에 평화와 여유가 찍혀있는 이 나라에서의 삶을 생각했다. 환자를 돌보다 쉬는 날이면 멋진 바닷가에서 요트를 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상상, 파아란 파라솔 밑에 여자 친구와 함께 누워 모히또에서 몰타 한잔 말하며 꺄르르 웃어대는 그런 상상.

아- 세상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만물이 찬란하게 빛났다. 푸른 먹물이 넘실대는 지중해 앞에서 2유로짜리 피자빵을 먹으며 Lost stars의 가사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Searching for meaning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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