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행 다니던 시절 적었던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과거의 텍스트는 나를 그 공간으로 훌쩍 데려가 주었다. 지지리도 가난하게 여행하던 시절,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몰랐기에 아끼고 또 아끼며 돌아다녀야 했던 시절. 숙소 값이 부족해 런던의 집 아무 곳이나 두드리며 한국에서 온 여행자를 재워줄 수 있냐고 수차례 물었던, 결국은 다 거절당했지만 어찌어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숙식을 대가로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었던 시절. 로마의 기차역에서, 부쿠레슈티의 버스 정류장에서, 바르셀로나의 전철역에서, 부다페스트의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그곳에서 만난 터키, 이태리, 미국, 스페인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고 짭짤한 감튀와 저렴한 맥주 한잔에도 즐거워했던 시절.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을까. 몸은 고됐지만 정신은 누구보다 행복했었나 보다.
까미노의 일기를 들여다보면 버리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걷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그곳에서 내가 지녀야 했던 것은 최신형 아이패드나 값비싼 청바지 따위가 아니라 목마를 때 목을 축일 수 있는 물 한 병과 소량의 점심, 같이 걸을 수 있는 친구, 그런 것들이 전부더라. 가진 것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텍스트에는 기분 좋은 느낌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미화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기에 나는 당시에도 무한히 행복했었고, 그 글을 읽는 지금도 무한의 미소가 퍼져 나온다.
까미노에서 만난 각양 각국의 사람들은 삶의 여유가 넘쳐 보였다. 과연 현실로 돌아가도 똑같을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인들은 조금 달랐다. 나 같은 장기 여행자를 빼고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듯한 일정을 가지고 있었고, 계획을 짜 놓고 이곳에 왔다. 순례길을 끝마치는 날짜가 정해져 있었으며 오늘 하루는 몇 킬로를 걸어야 하고 오늘은 반드시 그 마을에 도착해야 했다. 일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조급해했다. 어떤 이는 무리하게 더 걷느라 무릎에 무리가 와 완주하지 못한 채 버스를 타고 마무리를 짓기도 했고, 어떤 이는 만날 때마다 걸음이 늦어 귀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어떨지를 걱정했다.
이 길에서 만난 폴란드 출신 대학생은 자신의 고향인 바르샤바(폴란드의 수도)에서부터 약 2900km나 되는 길을 걸어오며 나를 만났다. 산티아고가 최종 목적지라고 했다. 텐트에서 먹고 자고 하며 하루에 5유로 정도씩만 쓰며 걸어오는 생활을 5개월째 하고 있다고 했다. 곧 끝이 보인다고 기뻐했다. 또 다른 미국 친구 카를로스는 이 길을 걷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일부러 넉넉잡아 두 달을 비워 놓았다고 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걷는 걸음도, 일정도 여유로웠다. 그밖에 만난 헝가리의 대학생 친구들과 칠레에서 온 호세에게서 느꼈던 특별함 또한 그들의 태도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면 자주 외국인 친구들의 이런 여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많은 부분을 부러워했다. 이들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다면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은 여행지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기 때문에 여유가 넘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만난 한국 친구들은 왜 일정을 넉넉하게 잡지 않았을까. 똑같은 여행지인데도 불구하고 누구는 여유로운 걸음을 걷고 누군가는 조급함에 떠밀려 길을 걷는 것일까. 잡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면 외국 친구들에겐 그들만의 상황이 없었을까.
특히나 대학생 친구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 그런 것들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자 온 여행인데, 이곳에 와서도 앞날에 대한 불안의 씨앗이 꺼지지 않는 듯 보였다.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하고, 친구들은 열심히 배우고 돈을 벌고 있는데 자신은 지금 이런 길이나 걷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친구가 생각난다.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문화는 자신을 갉아먹을 뿐이다. 학창 시절부터 우리는 비교를 당해왔다. 학교에서, 또 집에서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선생님, 부모님이 계셨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한국만 쓰고 있는 '나이' 문화 때문에 이 나이면 무엇을 해야 하고, 이 나이면 무엇을 했어야 하고, 이 나이면 무엇을 이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정해져 있다. 군대에서 만난 23살 선임이 30살이던 내게 하던 말이 있다. 나도 형처럼 여행을 가고 싶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아. 복학도 해야 하고 취업준비도 해야 하고...
응? 23살이 늦었다고?
나중에 적겠지만 까미노를 걸은지 2년 후 나는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미서부를 걸어서 종단하는 PCT(Pacific Crest Trail)에 도전을 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70대의 영국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더 늦으면 정말 못할 것 같아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금이라도 도전을 해보고 싶어 이 길에 왔다고 말을 했다. 당시 내 도전을 보고 메시지로 대화를 나눴던 40대 형은 내게, 나는 너무 늦었어~ 이 나이에 그런 걸 어떻게 하냐? 네 나이였으면 당장 했지~라는 말을 했다. 40대 형과 70대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내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누구는 나이라는 숫자에 갇혀 '도전'을 할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는다. 누구는 나이라는 숫자를 초월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민다. 40대 형이 내 나이였으면 이런 도전을 했을까? 글쎄다. 30대에는 30대 나름의 준비하고 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23살의 대학생 친구가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도전하기에 '늦었다'라고 말하는 사회. 20대도 늦었고, 30대도 늦었고, 40대도 늦었다. 그럼 우리는 대체 언제가 빠른 것일까? 10대는 빠른가? 10대는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그럼 10세 이하가 빠른 것인가?
Philgrim
여유로움을 느끼러 여행지에 왔는데, 오히려 여행지에서 더 바빠지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 에펠탑에서 사진 찍고 이동하고, 콜로세움에서 사진 찍고 이동하고, 빅벤 앞에서 사진 찍고 이동하는 우리가 있다. 정혜윤 작가의 글, "좋은 책은 그 글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세상이 달라 보이게 한다. 좋은 책은 인간은 비탄, 슬픔, 고통에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료로 뭔가-비탄, 슬픔, 고통을 다른 일로 바꾸는 일, 이를테면 시 또는 한 편의 글- 를 만들고 있는 중이란 것을 알려준다."
여기서 책을 여행으로 바꿔도 무방할 듯하다. 좋은 여행은 다녀오기 전과 후를 달라지게 만든다. 겉핥기식의 여행이 아니라 정신적인 여행을 할 때 우리가 얻어가는 것은 에펠탑 인증샷만이 아니라 더 깊은 내면의 성찰일 수 있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을 살피고, 이해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며, 나 중심적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 사회를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고 만들어가는 것. 여행을 하며 배울 수 있었던 건 사실 이런 것들이 전부다.
누군가는 이상주의적이라 말하고,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의 소리라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치들을 놓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부조리함에 패배하고, 자본이 신이 되어버린 이 고장 난 사회를 그대로 답습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이 경쟁사회에서 잠시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을 탐험하고, 책에 들어있는 텍스트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 우리의 정신을 마구마구 휘젓고 그 정리되지 않은 복잡함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고, 다시 주워 담아 재정립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런 시간이 많아질 때 우리는 단단한 내면을 쌓을 수 있고,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로울 수 있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문명의 이기만을 쫓는 여행이 아닌 깊은 정신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