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혼타나스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11월 중순에 접어들어 그런지 날씨도 점점 추워진다. 샤워를 하고 근처 마켓에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사 왔다. 널따란 갈색 테이블 위에 순례자들끼리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각자 사 온 음식들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보였다. 왜소한 몸집에 푹 파여 들어간 볼, 퀭한 눈, 젖은 머리의 남자는 휠체어에 앉아 열심히 통조림을 따고 있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며 곁눈질로 그를 힐끔 거리며 쳐다봤다. 통조림 따는 것을 힘겨워하던 남자를 자세히 보니 팔과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나는 옆으로 다가가 괜찮으면 내가 해줄까?라고 물었고, 그는 흔쾌히 내게 통조림을 내어주었다. 통조림을 따주고 말을 걸었지만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불어로 뭐라고 했지만 말은 어눌했고, 우리 중 불어를 할 줄 아는 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말이 통하질 않으니 바디랭귀지로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해,라고 말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즐겁게 수다를 떨며 웃음꽃을 피웠지만 그는 휠체어 위에 가만히 앉아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친구나 동료는 없는 듯 보였고 우리는 그가 알베르게에서 일을 하거나, 이 마을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주민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은 30km 이상 걸어야 했기에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준비를 마치고 알베르게 문 앞에 서서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본 휠체어를 탄 남자가 알베르게에서 나온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남자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휠체어에는 커다란 가방과 침낭으로 보이는 물건이 있었다. 설마 순례자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휠체어를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은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있는 코스라 휠체어를 탄 상태로 오르기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 남자는 끙끙대며 분투하고 있었다. 나는 뒤에서 휠체어를 잡아주며 밀어줄까?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밀며 올라가는데 나도 힘이 빠졌다. 어디까지 밀어줘야 하는 거지? 말이 통하질 않으니 뭐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때 뒤에서 아리안이 내게 말을 걸었다.
헤이 데이빗~ 굿모닝! 뭐해?
어! 잘됐다. 아리안 너 불어 할 줄 알지? 통역 좀 해줘~
캐나다의 퀘벡 출신인 아리안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능력자였다. 아리안과 그 남자는 불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몇 마디 하고 나니 아리안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는 어느새 다른 순례자 친구들도 모이기 시작했고, 모두 아리안의 통역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한껏 궁금해하며 귀를 기울였다. 검은 뿔테를 쓴 아리안의 표정은 굳어졌다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떡 벌렸다가,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며 혀를 차기도 했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레잇을 연발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그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 친구 이름은 안토니인데 지금 까미노를 걷는 중 이래.
우리 모두는 놀라며 물었다.
휠체어를 타고 까미노를 걷는다고?
응 프랑스 남부 지방인 툴루즈부터 시작해서 약 700km를 휠체어를 타고 왔고, 정말 힘들 땐 히치하이킹을 해서 이곳까지 왔대.
우리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휠체어를 타고 까미노를 걷는다라. 말도 어눌하고 손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이 남자가 까미노를 걷는다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못했다. 안토니는 우리가 믿지 못하는 눈치이자 자신의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었다. 여권에는 각 마을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말도 안 돼.
우리 모두가 그 여권을 보며 외쳤던 말이다. 이 친구 정말 fighter야. 대단해. 모두가 입 모아 말한다. 우리는 그가 이 길을 걷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첫째, 나는 크리스천이고,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이 길을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둘째, 나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이 길을 충분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셋째, 어떤 사람이든 어떤 것을 포기치 않고 꿋꿋이 도전한다면 결국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안토니는 23살이고, 가족도 없다고 했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휠체어로 지날 수 없는 언덕이나 산 길이 많아 보통 차도로 걷곤 하는데 그때마다 경찰에게 붙잡혀 어딜 가는지, 이 길은 위험하다며 다시 돌아가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어떨 때는 앰뷸런스를 불러 안토니의 건강을 체크해주기도 했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경찰들의 숱한 말에도 불구하고 까미노를 완주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팔과 다리가 온전치 못한 이 남자가, 휠체어를 밀며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경찰에게 붙들릴 때면 어눌한 말로 까미노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을 해야 했을지.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족도 없이 홀로 내버려진 듯한 이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포기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기도 했을 지난한 그 시간들을 나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 남자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게 보였다.
우리는 말을 잃은 상태로 멍하니 안토니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그는 휠체어를 밀며 20km를 간다고 했다. 그를 언덕 위까지 밀어주고, 우리 또한 각자의 길에 나섰다. 안토니를 만난 친구들 모두 각각의 깊은 상념에 잠겨 오늘 길을 걸을 것이다. 수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안토니는 또 어떤 도전을 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자신이 처한 환경에 굴복되지 않고 그 환경을 초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나가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어떠한 도전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