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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12. 2020

#40. 쓰레기 마을 사람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문근영 씨와 촬영팀들이 다녀간 곳은 여러 군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쓰레기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 이번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신 분들을 초대해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고, 그때 이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혼자는 위험해서 가면 안되고, 현지인이 한 명이라도 같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했다. 다음 날 병원으로 돌아와 의사 동료들에게 물었다. 그곳에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고. 그런데를 굳이 왜 가냐는 답이 들려왔다. 가지 말라고, 병 옮는다고.


그 주말, 나는 혼자 문근영 씨에게 받은 주소를 가지고 그곳을 찾아갔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사람들에게 물어 쓰레기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긴장이 돼서 입구에 있는 현지인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같이 동행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현지인은 흔쾌히 허락했고 나와 같이 동행을 해주었다. 초입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한 마리 두 마리가 아니라 50마리, 100마리가 내 주변을 날아다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내 앞에는 거대한 쓰레기 장이 나타났다. 쓰레기로 가득 찬 공간에선 수백 마리의 파리들이 날아다녔고 하수구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악취가 코를 쑤셨다. 도저히 그 상태 그대로 냄새를 맡고 있기가 힘들어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수백 마리의 파리들은 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 파리들 사이로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들부터 청년, 장년들까지.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놀기 바쁘고, 어른들은 그곳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아이들도 배가 고파지면 쓰레기 더미에서 코코넛 가루 같은 것을 찾아 입에 주워 넣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그 날 하루 먹을 음식이었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수 백 마리의 파리도, 토할 정도의 악취가 나는 그곳의 공기와 냄새는 신경 쓸 것이 못되었다. 생기 없는 얼굴로 쓰레기를 뒤적거릴 뿐이었다.


이 장소는 릴롱궤(수도)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아 갖다 버리는 장소다. 이곳 주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내다 팔 수 있는 물건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모여들게 되었다. 맨 처음엔 팔 수 있는 쓰레기들만 취급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주워갈 수 있는 양이 적어졌을 때 남이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들까지 먹기 시작했다.


이들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곳에서 살 수가 있지.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살 수가 있지. 충격으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른뿐 아닌 아이들 조차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지만 2-3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조차도 엄마 등에 업혀 쓰레기를 주웠다. 파리와 악취는 그 아이들의 눈가에 들러붙었다.




그로부터 30분 뒤 커다란 트럭이 들어왔다. 릴롱궤를 한 바퀴 돌아 쓰레기를 수거해 이곳으로 가져오면 사람들이 단번에 모인다. 쓰레기를 쏟아놓자 너도나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다. 서로 자기의 쓰레기라며 싸우는 소리도 들린다.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같이 동행을 해준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이들은 왜 이렇게 사는 것이냐고.


"이들도 처음엔 이렇게 살지 않았지. 당연한 소리지.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는데 마땅한 일자리는 없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해서 이들을 써주는 곳도 없고. 어떤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죽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바등바등하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거겠지."


쓰레기 마을을 다녀온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이 환경을 바꿀 수도, 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무언가 해야 했다. 이토록 참혹한 현실을 보고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그들 모두를 바꿀 수는 없고, 환경을 뒤엎을 수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이다. 어떤 일을 하던 거창한 무엇인가를 단번에 바꾸려 하기보다는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기본에서 부터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기본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시점도 찾아온다.


나는 빵과 잼, 칫솔과 치약을 샀다. 100개의 빵을 만들었다. 저번 주에 같이 갔던 현지인과 함께 마을로 다시 찾아갔고, 빵과 칫솔, 치약을 나눠줬다. 칫솔질하는 법을 알려주고, 밥을 먹은 후, 혹은 자기 전에라도 꼭 양치질은 하고 자야 한다, 그래야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먼저 빵을 가져가기보다 아이들을 먹였다.


그러나 이건 1차원적인 생각일 뿐이었고, 일회성에 불과했다. 이런 방법으로는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없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날마다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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