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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Sep 13. 2020

#41.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인생이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빵과 칫솔, 치약을 가지고 가서 나눠주기를 3주가 지났다. 세 번의 만남을 통해 그들과는 얼굴도 꽤 익혔고 나에 대한 마음을 어느 정도 열어준 것 같았다. 이들은 한 무리나 되는 사람들이 촬영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몰려와 그들을 마음대로 찍는 것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있었다. 세상 사람 누구라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허락도 받지 않고 카메라로 담아 간다면,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닌 단체로 몰려와 그런 행동을 한다면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런 몰상식한 행동들을 많은 단체에서 해왔다. 자신들을 한 무리의 동물들로 보고, 몇 시간 후면 잊힐 싸구려 동정이 섞인 눈빛은 그들의 마음을 걸어 잠궜다. 이들의 영상을 담아간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이런 현실을 마음껏 활용했지만 정작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한 순간 사람들의 눈물을 빼내기에 적합한 매콤한 소스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두 달째 맺어가고 있을 때 한국에서 어떤 단체가 왔다. 그들이 어디선가 마을 소식을 듣고 내게 찾아와 물었다. 그 마을이 어디 있는 마을이냐고. 우리도 가서 좀 보고 싶다고. 그 취지를 물으니 역시나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불쌍한 모습만 담으면 돼. 한국 사람들한테는 보이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이걸 이렇게 저렇게 찍어서 보여주기만 하면 돈은 굴러 들어오는 거거든. 보이는 게 다야~ 사람들 주머니에서 돈 빼오는 거 어려운 게 아니야~"


밥을 먹으면서도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저 말이 진짜 현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구멍으로 들어가던 음식을 그대로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게 지금 할 말이냐고. 이들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웃어제꼈다. 토악질 나는 얼굴들이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점이다. 봉사를 빙자한 돈벌이. 


어떤 선교사님은 내게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봉사하러 온 사람이 돈에 취하게 되면 그때부터 조금씩 흑화 되기 시작한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한 말을 지키지 못해 점점 변해가는 사람이 많다고. 어느샌가부터 사람을 만날 때면 '이들은 나에게 얼마를 후원해줄까', '어떻게 말해야 후원금을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닌 후원자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후원해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 안 해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 


본인 또한 그런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그런 유혹이 시시때때로 찾아들기에 항상 경계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더 큰돈을 받으면 더 큰 사업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 더 많은 후원자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본인의 명성,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를 세상에 외치고 싶어 안달하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 안에서 하나의 콘텐츠로 희생되는 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처음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점점 변해가며 돈과 명예가 그 마음을 대신한다. 그런 사람들한테 어떤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돈'이란 건 무서운 존재다. 돈에 대한 마음을 잘 지키고, 관리한다면 돈은 자신을 다스릴 역량이 있는 사람 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역량을 키우지 못한 사람이 많은 돈을 가지게 되면 돈은 그를 잡아먹거나, 떠난다. 돈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욕망은 우리를 집어삼킨다. 욕망에 잡아먹힌 사람들의 두 눈을 보면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는 물질적인 것으로 가득 차있다. 그들에게 인간의 존재됨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돈이 인생의 목적이고,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된다. 자본주의가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인생의 정답은 이런 인생일 것이다. 끊임없이 욕망하기 위해 반짝거리는 모든 것을 갈망하는 삶. 나와는 조금 맞지 않는다. 여행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지, 내가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욕망을 존중한다. 그들이 적을 두고 있는 가치가 어떤 가치이든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허나 남들을 속이고,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기본 자체가 없고, 생각조차 않으니 사회 곳곳에서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기본을 차지해야 하는 자리에 돈이 들어가 있다. 돈이 전부가 되는 세상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주 충돌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배우고 성찰해야 한다. 그냥 되는대로, 남들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대로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런 사람이 돼있을 것만 같아 무섭다.







빵과 칫솔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진료를 봐주려고 해도 모두를 병원으로 데려오기란 불가능했다. 수 백 마리 파리가 날아다니고 쓰레기가 널려있는 곳에서 진료를 볼 수도 없었다. 현지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마침 친구 지인 중 한 명이 마을 근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고 한 반을 우리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토요일엔 수업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써도 괜찮다며 교장선생님에게 승인을 받아주었다. 


외부로 의료진료를 나가면 챙겨야 할 기구들이 무척이나 많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조를 해주는 사람도 필요했다. 교통수단도 필요했고, 도와주는 이들의 점심이나 간식 같은 것도 챙겨야 했다. 학부 때 했던 외부 진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내 개인적인 도구만 챙겨서 가면 되었다. 그 밖에 다른 일들은 학교에서 알아서 준비를 해줬다. 지금은 이 모든 준비를 나 혼자서 기획하고, 만들어내야 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잘할 수 있을까?


처음 한 일은 동료 의사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며 같이 봉사를 가자고 살살 꼬드기는 일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2명의 동료가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부터 잘 풀리는 느낌이었다. 혼자가 아닌 셋이면 무엇을 해도 할 수 있었다. 3명에 맞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외부진료에 필요한 기구들을 빌리기 위해선 내가 일하던 국립병원이 아닌 1시간 정도 떨어진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 기구들을 빌리고 살균(Sterilized)을 따로 해야 했다. 덴탈 마스크와, 장갑, 물, 발치와 스케일링에 필요한 기구들, 코튼, 약, 실, 바늘 등등. 우선 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준비했다. 토요일에 맞춰 택시를 예약해두고, 점심 식사와 간식을 준비했다. 전 날 학교에 미리 가서 진료를 할 수 있게끔 공간을 준비해놓고, 쓰레기 마을에 가서 진료받을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었다. 너무 심한 치료는 할 수 없었고, 우선 할 수 있는 것에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이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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