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그들은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기도 했고, 뒤에서만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데 내가 직접 그들을 불러 얘기하기도 뭐했다. 나는 이 말을 전해주는 지인에게 불만 있으면 뒤에서 말하지 말고 나를 찾아오던가, 약속을 잡던가 하라고 말을 전했다. 그렇게 말을 전해도 만나자는 소리가 없기에 무시하고 내 할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날수록 심한 말들이 계속 새어 나왔다. 싸가지가 없다느니, 본인들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느니, 어린놈이 그러면 안된다느니. 나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어 대표라는 사람에게 문자를 했다.
"안녕하세요. 조르바입니다. 이러이러한 문제에 대해 말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을 주시지 않으셔서 제가 먼저 문자 드립니다. 만나서 얘기하실 거 아니면 더 이상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대표는,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며 그제야 만나자는 말을 꺼내놨다. 약속을 잡고 얘기를 나눈 대표는 생각만큼 비겁한 사람은 아니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 하기는 했는데 뭔가 핀트가 안 맞았다. 내가 하는 진료 자체에 문제를 삼기보다 본인들이 그 자리에 먼저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으니 미리 말을 해줬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 그게 예의가 아니겠느냐 라고 했다.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우선 그쪽에서 실질적으로 난지리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제가 일하는 장소가 그쪽 사업장과 가까운 장소라 하더라도 그게 도통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요. 분야가 겹치는 것도 아니고요"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나중엔 내 비자를 문제 삼으며 원칙적으로 그 비자는 여기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곳에 와 있는 엔지오 단원들과 똑같은 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게 안된다면 그들 모두 나가야 한다는 건가. 대표 밑에 있는 단원들도 나와 같은 비자였다. 그리고 내가 비자를 얻을 수 있게 도와준 병원장까지 들먹이는 꼴이었다. 처음엔 이 이야기를 왜 꺼내나 싶었는데, 다른 한인분에게 들으니 협박을 한 것이라고 했다. 너 까딱하면 내가 비자로 문제 삼아서 쫓아낼 수 있어, 라는.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이런 오지 땅에서도 한인들끼리의 세력다툼이 있었다. 교회와 성당, 엔지오와 엔지오, 사업장과 교회, 성당과 엔지오 등. 소위 말하는 '라인'이었고, 그 라인은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었다. 어디 파, 누구 파, 이쪽 파, 저쪽 파. 그 안의 세력싸움이 은근히 심했기에 내가 하는 행동들로 인해 또 다른 '파'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대표는 내게 또 다른 파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나 참. 말라위에 백만 년 거주할 것도 아닌데 파를 만들지 말라니. 그런 거에 관심 없다니까요.
답답했다.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분파를 만들고 싸우고 앉아있다니. 더군다나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뒤에서 이야기를 지어내고 문제를 만들고 있다니. 해외에 가면 제일 조심해야 할 인종은 백인도 흑인도 아닌 한국인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 돕기도 하지만 사기도 그만큼 많이 친다고. 중국인들은 어떤 나라에 들어가면 차이나 타운을 조성하고, 화교 문화를 만들어 서로 뭉친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고, 섬나라에 영어도 약하다 보니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인은 성격도 급하고, 경쟁 문화 속에 살아서 그런지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며,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고 배 아파한단다. 해외에 사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아 이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여러 나라에 퍼져있는 한인 분들을 만나 들어보면 이런 문제가 재외국민 사회 안에 적잖이 일어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라인을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해 끼리끼리 를 만드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 안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배제시켜버리는 이상한 문화. 초등학교 때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다가도 어느 한순간 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동해서 왕따를 시켰던 친구가 있다. 7명이 모여 다녔는데 한 명씩 차례로 왕따를 시키더니 결국 마지막엔 자기가 왕따를 당해 울어버렸다.
중학생을 넘어 대학생이 되어서도, 많은 이들이 인싸를 꿈꾼다. 어느 집단이건 잘 나가는 주류가 있고, 그 주류 안에 끼지 못하면 비주류로 분류되어 '주류 안에 끼고 싶어 하는 비주류'가 되거나. 그런 거엔 전혀 관심 없는 특이한 아싸(아웃사이더)가 된다. 주류, 비주류를 나누는 것과 인싸, 아싸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는 것부터가 웃긴 얘기다. 본인 고유의 개성은 죽어버리고, 인싸와 주류라고 하는 문화에 똑같이 젖기 위해 똑같은 인스타 감성 사진을 찍고, 남들과 똑같은 여행을 하며 주체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남들이 하는 말에만 귀 기울인다. 그 판단에 의존해 자신의 생각을 결정한다.
기계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 똑같은 계획, 똑같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사회다 보니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윗사람의 요구에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진다는 건 라인을 벗어나는 행위다. 그 요구가 합당하건 부당하건 중요치 않다. 요지는 그 요구를 순순히 따르는 사람이냐, 질문을 하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질문 자체를 잘 용인하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라인 높은 곳에 서있는 사람들의 말은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된다. 그 라인을 따라온 사람들의 리그는 점점 힘이 세지고 하나의 분파가 형성된다.
옳음이 정의가 되는 것이 아닌 내가 속한 분파가 정의가 된다. 나와 다른 이들의 의견을 이성적으로 접근해 옳은 것은 가져오고 다른 생각은 서로 조율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데 이성보다 감성이 더 앞서다 보니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머거리,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장님이 된다. 그 안에는 이기적인 욕망만 존재할 뿐 타인을 향한 배려나 이타심, 상위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나중에 들으니 이 사람은 한국에서 난지리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눈물로 후원금을 걷는다고 했다. 본인이 이용하는 영업장소를 누군가에게 빼앗길까 봐 과민반응을 보이는 거라고. 대표는 내게,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으면 라인을 잘 타라' 는 뉘앙스를 풍겼다. 자기 밑으로 들어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런게 아니면 본인의 사업장(정확히 말하면 그 근처)에서 활동을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놈의 라인, 라인, 라인. 내가 그곳에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고 물었다. 그건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과연 이들이 난지리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해주려는 마음이 있기는 한 걸까. 앞 뒤가 너무나도 다른 이런 류의 사람들을 많이 경험하다 보니 실망을 넘어 냉소만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