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주말에는 난지리(쓰레기 마을 이름)로 봉사를 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어 기본적인 진료는 뚝딱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피라미)다. 나는 수복치료(Restorative treatement)나 근관치료(Endodontic treatment, aka 신경치료)를 좋아한다. 근관치료는 실력이 없으면 워낙 실수도 많이 하게 되고 어려운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진료를 할 때 정말 꼼꼼히 진료를 해야 했다. 어려운 만큼 재미도 있었고 성취감도 높았다. 내가 이 파트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병원장은 두루두루 배워야 한다며 나를 구강악안면외과로 보냈다. 일전에 말했다시피 이 분야는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고, 나는 이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이쪽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배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구강외과에 오는 환자들 중엔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들도 많았다. 두려움이 앞섰다.
인구의 10.3%가 에이즈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는 980,000명 정도가 에이즈에 감염이 돼있다. 통계상으로 이 정도고 실제로는 100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에이즈는 HIV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병하면 나타나는 전염병이다.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는 바이러스의 이름이고 에이즈는 HIV에 감염된 환자에게 면역이 결핍돼 나타나는 합병증을 일컫는다. HIV에 걸린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HIV 감염인이란 HIV에 걸린 모든 사람을 말하며 이 중에서 질병이 나타난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른다.
이곳 사람들은 HIV에 잠재적 감염이 되어있음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병원에 오지 않다가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혹은 정말 아파서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면 그제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병원에 오게 된 치푼도 할아버지도 그런 경우였다. 환자가 들어오기 전 HIV positive라고 적혀있는 서류를 먼저 보자 괜스레 선입견이 생기고 긴장감에 몸을 사리고 싶었다. 치푼도 할아버지는 Oral squamous cell carcinoma라는 구강암을 에이즈 발병 후 합병증으로 얻게 되었지만 병이 많이 진행된 후에야 치료를 받으러 오게 된 환자였다.
한 번에 다 치료를 할 수 없어 띄엄띄엄 나눠서 치료를 시작했다. 이제 1년 차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라텍스 장갑을 3장씩 끼고 조심스레 어시스트를 하는 일밖엔. 집도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감염된 부분을 제거하며 치료를 해나갔다. 피가 넘쳐흘러나왔다. '이 피는 에이즈 환자의 피야'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치료를 멈추고 도망이라도 가겠다는 건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도의가 묻는다.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에이즈 환자잖아요. 긴장 안되세요?"
"네가 지금까지 봐온 환자들 중에 검사를 안 해봐서 그렇지 HIV 감염자는 수두룩 했을걸?"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서류상에 'HIV positive'라는 단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는 이유로 환자의 모든 면을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봤다. 집도의 말대로 사실상 내가 몰랐던 것이지, 그동안 봐온 환자들 중 HIV 감염자는 더 많았을 텐데. 망치로 뒤통수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생각났다.
치료가 끝난 후 할아버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의 생활은 외톨이 같은 고단한 삶이었다. 가족이 차례로 에이즈로 인한 여러 합병증에 의해 죽어갔고, 이제 자기 차례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에이즈의 집안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불결해했다. 표면적인 인사치레를 하며 지내는 정도지만 할아버지는 마을 집단에서 외톨이로 살아왔다. 본인이 잘못해서 에이즈에 걸린 것이라면 자신의 실수를 탓할 수라도 있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병을 어떻게 하겠는가. 누굴 탓할 수 있을까. 묵묵부답인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마을 사람들은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교육이 없으니 손만 잡아도, 같은 방에 있어도 병이 옮는 줄 알고 대부분 슬그머니 피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이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예방법만 알려줘도 할아버지가 이렇게 고단하게 살아가진 않을 텐데.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부정하다 했다. 그 무리 안에서 잠정적 HIV 감염자가 있을 수 있는데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없으니 본인들과 모양새가 다른 할아버지를 고립시켰다. 생명이 꺼지지도 않았고, 다 타버린 양초 심지도 아닌데 사람들은 수차례 할아버지를 시선의 칼로 찍어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었다. 나였어도 그들과 같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하니까.
문명과 떨어진 삶을 사는 아프리카의 마을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하얀 백지 같이 순수했다. 지나가다 흘린 농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괴담으로 퍼져나가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이 곳 한국 NGO 중에 백내장과 눈에 나타나는 질병을 치료해주는 NGO가 있는데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 '저곳에 가면 치료가 아니라 눈을 빼간다'라는 괴담이 돌아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럴 정도로 어떻게 보면 순수한 사람들인데, 에이즈라면 당연히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단에서 버려진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홀로 된 외로움과 싸워나가야 했다. 사람이 그립다고 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오랜만이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는 들어줄 누군가도, 말을 걸 누군가도 없는 마을에 돌아가는 게 두렵다고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이들의 마음을 감히 위로할 수 있을까. 말라위에 거주하는 동안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안타까움이 차고 넘쳤다. 내가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 무력감. 치푼도 할아버지뿐만이랴, 난지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쩌랴.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 사람들에게 잊혀진 사람들, 희망을 품지 못한 사람들. 세상은 참 불공평하지 않은가. 나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