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르바 Oct 07. 2020

#60. 작은 것에 감사하기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정오가 되면 태양이 점점 뜨거워지기 때문에 그 시간을 피해서 걸어야 한다. 마땅한 그늘도 없을뿐더러 물이 있기로 한 스팟이 말라있다면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택한 방법은 새벽 5시에 일어나 걷는 것이었다. 오전 11시까지만 걷고 그늘이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아무 데나 누워 잠을 잤다.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걸었기에 피곤이 쌓였고 눕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해가 움직였기에 그늘도 따라 옮겨졌다. 그늘이 움직이면 우리도 잠에서 깨어 매트리스를 들고 더 큰 그늘로 이동했다. 잠에서 깨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부는 바람이 좋았다. 새근새근 옆에 잠든 하이커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꼬질꼬질 때가 묻어있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하나 둘 잠에서 깨니 오후 4시였다. 아직도 날은 더웠다. 6시는 돼야 그나마 숨통이 틔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코스는 3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올라야 하는 산등성이였다.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쉴 때는 걷는 생각을 하지 말자고 했다. 하이커들은 각자만의 방법으로 쉼을 즐겼다. 가지고 온 전자책을 읽거나 노래를 불렀고 다른 하이커들과 땅콩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곧 다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저녁을 요리해야 했다. 나는 참치와 피넛버터를 같이 넣고 또띠아를 만들어 먹었다. 배가 차지 않아 미국 라면인 탑라면도 하나 끓여 먹었다. 트레일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 배가 부르더라도 30분만 걸으면 금방 배가 꺼진다. 칼로리 소모가 워낙 많으니 누텔라 같은 고칼로리 잼이나 에너지바 같은 것으로 자주 허기를 달래준다. 그래도 여전히 배는 항상 고프다. 오후 6시가 되자 해가 지고 날씨가 그나마 선선해졌다. 앞에 놓인 산등성이를 넘기 위해 걷기 시작했고 11시가 돼서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트레일 매직이 펼쳐져있었다. 물통이 한가득 꽉 채워있었고 딸기와 계란, 키세스 같은 스낵류가 있었다. 고생 끝에 트레일 매직을 만난 우리는 마치 세상에 우리 말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듯 소리를 지르고 기뻐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정상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만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무데서나 잘 자는 하이커들


하이커가 물을 마시는 방법

우리가 물을 마시는 방법. 가끔 나비와 새, 각종 벌레들이 죽어서 동동 떠다니기도 하고, 어떤 물은 폐수 냄새가 나기도 하다. 그럴 때는 그냥 아- 내가 지금 원효대사가 되었구나 하고 마셔야지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고 하다 보면 탈수증 걸리기 딱 좋다. 






우리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저녁이었다. 치열했던 하루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매일 밤 잠에 들기 전 하이커들끼리 둘러앉아 시간을 보낸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쿨렐레를 들고 다니는 하이커가 있을 땐 다 같이 let it be를 불렀다. 침낭 속에 누워 촘촘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돌아보고 오늘도 수고했다며 스스로를 토닥여주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트레일을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물 한 방울에 웃고 울며, 빵과 패티, 치즈 한 장 올려놓은 햄버거 하나에도 넘치게 감격했다. 싱그러운 딸기를 먹을 때면 맛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오감을 집중해 먹었다. 쉴 수 있는 그늘 하나가 만들어져 있음에 감사했고, 그 그늘을 만들어 준 나무와 숲에 감사했다. 높은 곳에 오르면 펼쳐지는 자연에 경외감을 느꼈고, 생생히 살아서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피씨티에 오지 않았더라면 죽었다 깨도 알지 못했을 이 감동들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작가의 이전글 #59. 집착과 존재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