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렇지 뭐
피씨티의 첫 구간이자 적응기간 이기도 했던 사막이 끝났다. 약 700km를 걸었고 앞으로 남은 길은 3600km 정도. 미국에서 제일 높은 휘트니 산이 있는 하이 시에라(High Sierra)로 들어간다. 올해(2017년)에는 100년 만의 강한 폭설이 내렸다고 했다. 시에라 산맥에는 아직도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휘트니 산을 오르던 하이커중 한 명이 하산하는 중에 얕은 크레바스를 밟고 절벽으로 떨어져 사망했다고 했다.
또 다른 하이커 한 명은 가슴까지 차오르던 강물을 혼자 건너다 휩쓸렸고 가방을 비롯한 모든 짐들이 떠내려 갔다고 했다. 겨우 강물을 빠져나온 그는 온몸이 젖은 채 자기가 걸어왔던 발자국을 따라 다시 백트래킹을 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사방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다. 시간이 지나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발자국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주위가 모두 컴컴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는 여기서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기 위해 제자리에서 점프를 뛰며 몸에 열을 냈다. 온몸은 쫄딱 젖었고 몸을 보호해줄 어떤 도구도 없었지만 죽지 않으려는 의지 하나만 가지고 길고 긴 밤을 점프를 하며 보냈다고 했다. 아무리 울면서 부르짖어봐도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고요하게 떠있는 달빛만 살고자 애쓰는 그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새벽 내내 그는 몸을 움직였고, 날이 조금씩 밝아오자 다시 발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발자국도 보이지 않게 되어 나름의 베이스캠프(기다란 나뭇가지 한 개를 꽂아 놨다고 했다)를 만들어 놓고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사람을 불러보았다고 했다. 아무리 불러도 누구 하나 나타나지 않았고 몸은 점점 지쳐만 갔다. 그렇게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희미한 기계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그는 그 소리 하나에 희망을 걸고 무작정 뛰어갔다. 얼마나 뛰었을까, 기계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그가 찾은 건 제설작업을 하고 있는 기사였다. 그는 곧 구조됐고 따듯한 커피 한잔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이 어마어마한 스토리를 들려주며 잘 걷는다고 방심하지 말고 무조건 조심, 또 조심하라고 말했다. 이례적인 폭설이 내렸고, 그 폭설이 조금씩 녹으며 강물이 불어났다. 불어난 강물은 세차게 흘렀다. 강물을 지날 땐 항상 누구와 같이 가고, 아니 시에라 산맥 들어가는 것 자체를 누군가와 함께하라고 했다. 그렇게 위험할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있다고 했다.
사막 구간이 끝났을 때 나와 같이 동행하던 하이커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좋지 않은 소식들이 계속 들려오는 시에라 산맥 앞에서 누군가는 일정을 잠시 멈췄고, 누군가는 오레곤을 먼저 걷고 다시 내려온다고 했다. 누군가는 우회로를 통해 도로를 걸었으며 누군가는 아예 캐나다로 가서 거꾸로 내려온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나 또한 한참을 망설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국인 하이커 승규를 만났다. 승규와 나는 의기투합을 해서 시에라 산맥을 같이 들어가기로 했고, 아이스 엑스와 아이젠을 비롯한 설산 장비들을 구매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또, 이 산에서는 곰이 자주 출몰하기도 하는데 곰의 습격을 받지 않으려면 곰통을 준비해야 했다. 곰통은 커다란 플라스틱 통으로, 자기 전에 냄새가 나는 모든 것을 안에다 집어넣고 멀찍이 떨어트려 놓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곰이 냄새를 맡고 찾아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친구 한 명은 치약을 곰통에 넣어놓지 않고 가방에 넣어놨다가 곰이 가방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적이 있었다. 이 곰통은 무게도 부피도 은근히 커서 가뜩이나 무거운 가방을 더 무겁게 만들어놨다.
엑스트라 무게(곰통, 아이스 엑스, 아이젠)를 더 집어넣고 미국에서 가장 높다는 휘트니 산(4421m)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 산은 보통 경사가 가파르고 빙 둘러가는 길 없이 바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 산은 많은 부분 스위치백(지그재그 형식)으로 길이 나있다. 휘트니 산은 가파른 경사 때문에 스위치백을 99개나 만들어 놨다고 했다.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며 걸으면 어느새 도착해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들어갔지만 우리 눈 앞에 보인 건 그저 새하얀 눈으로 가득 찬 거대한 산이었다. 스위치백은커녕 회색의 바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말은 99개의 스위치백을 왔다 갔다 하며 걷는 대신, 직등으로 올라야 한다는 소리였다. 저 멀리서 개미같이 조그마한 점들이 보였다.
저건 뭐야?
사람인가?
안 움직이는데?
아니야 움직여. 잘봐바. 조금씩 움직이고 있잖아. 곧... 우리의 모습이겠지..
앞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산은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경사는 75-80도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마치 수직으로 된 계단을 오르듯 한 발을 올리고, 다음 발을 올려야 했다. 조금 쉬고 한 발을 다시 올린다. 미끄러지지 않게 아이스 엑스를 눈 밭에 찍어 몸을 기대며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 앞선 하이커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누구 하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 같다. 중간까지 올라왔을 때 밑을 내려다봤다. 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위만 봐야 했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느리게 느리게 한 발씩 걸어 설산을 오르니 지난 한 달간 고생했던 사막이 생각났다. 사막은 그나마 탄탄한 땅을 밟으며 걸었기에 그나마 쉬운 길이었다는 걸 여기와 서야 깨달았다. 아이젠을 끼고 걸어도 푹푹 빠지는 눈 길은 체력을 금방 떨어지게 했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에 정신이 팔렸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집중을 해야 했다. 급기야 나 또한 얇은 크레바스에 빠져 트레킹 폴이 부러지고 무릎이 다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탄탄한 땅을 밟고 걷는 길이 그렇게 소중한 길이었다니. 눈은 제발 그만 보고 싶었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여차 저차 해서 다 올랐을 때의 그 희열은 온몸을 찌릿하게 했다. 내가 정말 이걸 올라왔단 말이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아직 휘트니 정상에 오른 것은 아니었고 고작 99 스위치 백만 끝낸 것이었다. 앞으로 3시간은 더 올라야 했다.
휘트니 정상에 도착했을 때 눈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힘겹게 오른 것에 대한 감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두 달간의 치열했던 하루하루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와준 나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두려움을 깨고 눈 덮인 시에라 산맥을 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대견함도 한몫했을 터다. 가족도 생각나고, 친구들도 생각났다. 무엇하나 나 홀로 할 수 없었던 이 여정에 함께 해준 많은 분들이 생각났다. 신나는 마음에 옷을 홀딱 벗고 사진을 찍었다.
Bear canister - https://900milerblog.com/tag/bear-canister/
Mt. Whitney - https://rockandice.com/climbing-news/first-winter-ascent-of-hairline-v-5-10d-c2-mt-whit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