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순간들이 있다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보면, 오매 불망 그 물건이 혹시나 상할까 노심초사하게 마련이다.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즐거움 뒤에는 그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깔려있다. 한참 동안이나 그 소중한 무엇인가를 보고 또 보고, 그리고는 다시 상하지 않을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곤 한다.
나의 현재가 그러하다.
순한 양 같은 다섯 살 아들과, 말괄량이 같은 수다쟁이 세 살 딸, 그리고 곁에서 육아와 직장생활을 묵묵히 해 내고 있는 슈퍼 맘, 내 아내.
새벽 5시 1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나 거실로 비틀비틀 걸어나온다. 익숙하게 거실 소파에 있는 아이들 인형 중 하나를 집어들고 널부러져 있는 가디건 하나를 주섬주섬 어깨에 걸쳐본다. 그리고는 알람을 10분 뒤로 다시 맞추고 바닥에 누워 눈을 감는다.
'띠디디디!!'
눈을 붙이자마자 알람이 다시 울린다. 일어나 정신을 다시 차리고 출근 할 옷을 챙겨 거실 바닥에 투둑 떨어뜨려 놓는다.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거실에 떨어뜨려 놓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거실 CCTV로 치열하게 잠들어있는 내 보물들을 본다.
'피식~'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방으로 살며시 들어가 보물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내 눈에 넣어본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나와 나머지 출근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7시 반.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에게 쪼르르 달려온다.
"아빠아~"
첫째는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설명해 주고, 둘째는 며칠 전에 다친 일을 다시 아빠에게 일러본다.
"다녀왔어~"
"응, 고생했어~"
아내는 온갖 사명감으로 저녁을 준비하며 고생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아내가 맛있게 차려 준 저녁을 먹고 나면 벌써 8시 반이다.
내 보물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장난치며 노느라 아직 다 못 먹은 저녁을 먹으며 꺄르르 웃고 있다. 둘째는 이제 막 말이 트여서 그런지 재잘재잘 말이 많다. 이런 저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며 엄마에게 온갖 애교를 부린다. 아내도 그런 둘째를 보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안아주고 웃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어쩌다 둘째의 눈에 걸린 나는 장난치기 딱 좋은 대상이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웃어보기도 하고 장난을 걸어보기도 한다. 둘째를 안았다가, 깨물었다가, 뽀뽀도 했다가, 간지러움을 태워도 본다. 첫째는 흐물거리는 자세로 엄마에게 애교 부리는 둘째를 보더니 눈빛이 바뀌었다. 엄마에게 달려가더니 엄마를 꼭 안아준다. 엄마도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첫째를 안아주며 연신 눈을 맞춰본다. 집 안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행복하구나.
별것 아닌 일상을 가만히 보다 보면, 가끔 이런 행복한 일상이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좋지 않은 뉴스가 들려온 것도 아닌데, 덜컥 내가 이 행복을 지킬 수 있을까 겁이 난다. 나에게 주어진 플러스 알파. 사실 젊은 나이에,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장암 판정을 받으면서 거기까지가 내 삶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병기가 높은 것도 아니었지만, 수술과 항암 회복을 거치며 가족들의 헌신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은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아기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결혼 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발견된 암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나의 아내가 떠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다시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걱정.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겪은 우울증의 씨앗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언제든 뿌리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아기를 갖지 못해도 돼. 우리끼리 재미있게 살면 되지. 강아지를 키워볼까? 복직해 보고 적응하기 어렵거나 다시 스트레스를 받게되면 다른 일을 찾아보자. 돈은 내가 벌면 되잖아.
사랑하는 내 아내는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을 뿐더러 나와 더 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기했던 새 생명은 결국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와 주었다. 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고 2년 뒤 주님께서 허락하신 둘째까지. 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를 받은 이후 복직도 성공적이었다. 직장이 멀어 걱정을 많이 했지만, 복직 후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몸이 차츰 적응을 해 나갔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플러스 알파라고 생각했던 이 모든 선물은 결코 플러스 알파가 아니었다. 이 모든 행복들을 정말 행복하게 느끼게 하려고 내가 긴 터널을 지나왔던 것은 아닐까. 아내가 없는 삶. 아이들이 없는 삶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러다 문득, 주변에서 들려오는 암 환우들의 이야기. 삶과 죽음에 대한 글을 읽고 나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정말 심장이 저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쿵!
가끔 아내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 놓곤 한다. 워낙 걱정이 많은 스타일인 것을 잘 아는 아내는 이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또 어디서 뭐 봤어? 어이고오~, 걱정 마시고 저거나 좀 치워줘'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준다. 아내는 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해 줄 수록 밑바닥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아내를 보면 약간의 시위 섞인 서운함이 들면서 걱정은 차츰 사라진다.
아내는 나를 잘 알고 있다.
행복이 두려운 때가 있지.
신경 쓰지 마.
그냥 저거나 좀 치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