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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10. 2020

항암주사 맞는 날

하루

벌써 해가 중천이다. 


항암을 받는 날은 되도록 출근시간을 피해서 이동한다. 조금이라도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한다. 벌써 항암도 4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항암주사는 도무지, 아무리 애를 써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부터 항암주사 생각에 벌써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운전도 직접 하고 이동하고 있지만, 이미 머릿속은 항암주사를 맞는 장면을 구간반복하는 것 외에 별 다른 장면이 떠 오르지 않는다. 병원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느껴지는 소독약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유독 나에게만 가혹한 이 소독약 냄새를 겨우 참고 주사실로 올라가면, 항암제 특유의 냄새가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항암제 냄새는 엘리베이터에서 풍기는 소독약 냄새, 채혈을 할 때 맡게 되는 소독약냄새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 냄새를 맡는 순간, 살기 위해서는 저 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하고 겨우 겨우 끌어내었던 용기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아...정말 맞기 싫다. 그냥 집에 가면 안돼?"


 "그렇게 하든지."


나는 지금 당장 저 주사를 맞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다. 잠시나마 시간을 벌어보려고 아내에게 투덜거려보지만, 아내는 이제 이 투덜거림에 익숙해져버린 모양이다. 


하긴, 저도 내가 말만 저렇게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내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 준다. 30분간의 짧은 간식시간. 속을 비우고 항암을 맞게 되면 울렁거림이 더 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샌드위치가 허락된다. 사실 샌드위치가 허락된다기 보다는, 내가 이 틈을 노려서 샌드위치를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그리고 허락되는 다른 한가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항암주사를 맞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찬 음식이 분명히 도움이 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중요한건 '얼음'이었다. 물론 달달한 다른 음료도 있기는 하지만, 다 마시고 난 후에 느껴지는 특유의 텁텁함이 입안에 오래 남아있는 것이 싫었다.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주사를 맞기 위해서 30분이 넘는 준비가 필요했다. 그나마 병기가 깊은 다른 환자들 처럼 링거를 몇 시간이고 맞거나, 방사능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맞는 과정 자체가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다. 먼저 팔에 주사기를 꽂고, 주사용 증류수를 약간 주사한다. 그리고 주사기를 바꾸어 누리끼리한 색의 항암 주사제를 투여하기 시작한다. 긴장을 풀어주려고 간호사분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하지만, 귀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1-2분 정도 약을 다 투여 받고 나면 다시 남은 주사용 증류수를 마저 다 투여 하는 것으로 항암 주사는 끝이 난다. 주사를 맞는 동안 주변 병실에서 링거째로 항암제 투여를 받으시는 분들이 보인다. 나는 짧은 주사를 맞는 것으로도 이렇게 인상을 찌뿌리고 있는데, 저 분들은 어떻게 저렇게 밝은 모습일 수 있을까.


항암주사를 맞고 나면, 되도록 빨리 집으로 가야했다.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메스꺼운 기운이 온 몸에 퍼져있는 것 같았다. 차에 타자마자 눈을 감고 이 기분을 지우려고도 해 보지만, 잠깐 자고 일어난 후에도 이 느낌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병원에서 집까지 한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꾹 참고 가야한다. 옆에서 아내는 운전을 하고 있고, 나에게 계속 상태가 어떤지 물어본다. 벌서 4개월째, 같은 느낌을 이야기 하고있다. 하지만 아내는 오늘도 내 기분과 상태를 물어온다. 나는 최대한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느낌을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이 느낌을 비슷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는 그 어떤것을 난 알지 못한다. 그저, 멀미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별로 비슷하지 않은 이 예를 들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왔니...?"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고생이 많았다.'

 '속이 메스껍지는 않니?'

 '오늘은 다른 때 보다 좀 괜찮니?'


 "밥먹어야지."


저 많은 질문을 눈에 담아만 놓으시고 차마 묻지는 못한 채, 밥먹자는 한마디만 하시고 얼른 주방으로 가신다. 아내가 얼른 어머니 뒤를 쫒아가서, 내가 해 드리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어머니에게 들려준다.


 "그럼, 오늘도 속이 좀 안좋겠구나..."


어머니는 나에게도 충분히 들릴만한 큰 소리로 아내에게 물어본다. 어머니는 나에게 직접 물어보기가 싫으신가보다. 아니, 내 입에서 아프다는 소리를 직접 듣기가 힘드신 모양이다. 당신의 아들의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아프신가보다. 나도 말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벌써 두시가 넘었다. 어머니는 이미 점심을 차려놓고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어떤 음식이 메스꺼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더한 끝에 메뉴를 결정하시고도 내 눈치를 보며 괜찮냐고 물으신다. 


 "괜찮아요."


사실, 지금 내 상태에서 '괜찮은'음식이란 것은 없다. 아무 음식도 먹고싶지 않고, 식욕도 없지만 이 치료를 견디기 위해서 먹는 것일 뿐이다. 그래도 세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다보면 '괜찮은' 한끼를 해결하게 된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면 이제 운동을 하러 나갈 시간이다. 그래봐야 40분 정도 아파트 산책길을 걷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딱히 '운동'이라고 할건 없지만,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야 항암을 견딜 수 있다. 이 시간에는 보통 아내와 아파트 산책을 나간다. 그리고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마음 속의 이야기들을 많이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아내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일상적인 대화들로 시작된 이 산책길의 수다는 우리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 좋은 기회다. 만약 지금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산책을 끝내면 집에 돌아오면 잠시 낮잠. 항암중에는 피로를 많이 느낀다. 내 몸속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는 한가보다. 평소와 비슷한 활동을 하면서도 피로감은 배가 되어 찾아온다. 항암중인 환자에게 이 피로감은 빨리 떨쳐내야하는 적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낮잠은 필수다. 그리고 나서 저녁식사. 그리고 다시 산책. 


끝.


 '아무것도' 하지않고, 하루가 지나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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