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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an 06. 2021

장염과 코로나 사이(a.k.a 스위트홈)

음성입니다.

감염자는 격리한다.


갑자기 오후부터 배가 더부룩한 것이 소화가 되지 않는다. 점심으로 우동이랑 볶음밥 조금을 먹었을 뿐인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어제저녁에 먹은 등갈비 야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모든 식사를 함께 한 아내는 별 탈이 없는 것으로 보아 또 나만 이러나 보다. 단순히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잠깐 낮잠을 청했다.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거나 몸이 정상적이지 않을 때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낮잠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이런저런 걱정들로 머릿속을 채워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연신 트림이 나온다. 소화가 되고 있는 것인지, 막혀있는 것이 내려가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내 몸에서 적극적으로 보내오는 신호에 나도 적극적으로 응해주기로 한다. 연신 트림을 해 대다 보니 이제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지만, 더부룩한 속은 별 차도가 없다. 결국 저녁식사는 포기하고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머리가 아픈 것도 아니고, 몸살 기운도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체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만 생각해 보니 처음 겪어보는 증상 같기도 하다. 이런 적이 있었던가?


두어 시간이 지나도록 별 차도를 보이지 못하자, 내내 지켜보던 아내가 무엇인가 생각난듯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온다.


"엎드려봐."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등이랑 척추뼈 쪽을 조금 눌러주겠다고 했다. 해 본 적이 있는 민간요법.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이런 거라도 해 보는 것이 더 나을 듯했다. 힘을 빼고 바닥에 엎드려 누웠다. 아내는 내 등 위로 올라타더니 두 손으로 내 등을 가볍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억!!"


아내는 손가락으로 척추뼈를 세어보듯 목에서부터 아래로 일일이 뼈를 짚어보더니, 뭔가 발견한 듯 갑자기 손바닥으로 뼈를 콱 눌렀다. 우두둑 소리가 난 것도 같고, 여하튼 무슨 충격이 내 몸에 전해졌다. 아내는 몇 번 더 민간요법을 해 주었는데,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입 밖으로 잘못 퉁명스럽게 튀어나왔다.


"어휴, 돌팔이야!"


아내의 마사지는 결과적으로는 효과가 좋았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보기 시작했는데, 나는 무슨 내가 대장 내시경이라도 예약되어있는 줄 알았다. 끝도 없이 장을 비워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비워내고 나면 뭐가 남아있을까 싶다. 오랜 여정 끝에 장을 시원하게 비워내고 나니 배도 조금 고픈 것 같고 몸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거봐, 내 덕분이지!"


아내가 부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웃으며 거드름을 피운다. 어휴, 돌팔이.


문제는 한 시간 정도 후부터 시작되었다. 몸이 으슬으슬 추운가 싶더니, 이내 벌벌 손발을 살짝 떨 정도로 몸이 차가워졌다. 두통도 시작되었고, 배도 쿡쿡 쑤셔온다. 온몸은 경직되어버렸다. 혹시나 싶어 체온계를 들어 귀에 갖다 댔다.


왼쪽 38.3

오른쪽 37.3


애매한 체온이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나는 것도 아닌. 그러나 열이 없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옷을 조금 따뜻하게 겹쳐 입고 추위를 조금 달래 보기로 했다. 확실히 열이 있는 것이라면 옷을 껴 입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도움이 조금 될 듯도 하다. 반신욕을 하면 확실하게 몸이 따뜻해지겠지만, 열이 있는 상태라면 오히려 열만 부추길 것 같아 그만뒀다. 장염인가. 증상을 되짚어보니 장염 증상인 것 같아 보였다. 미열과 설사 그리고 배를 쿡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 따뜻한 물을 조금 마시며 증상을 고민해 본다. 그때까지 나는 아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계속 내 체온을 재고 또 쟀다. 열이 높네. 아냐 열이 높은 건 아니야. 자기야 열이 있어. 아니야 장염이라서 약간 미열이 있는 거야. 체온이 너무 높은데. 아니라니까 높은 거.


"혹시 모르니까 내일 선별 진료소를 가 보는 건 어때?"


코로나.


아차 싶었다. 거의 장염을 확신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에는 대비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여보, 이불이랑 베개 좀 갖다 줘."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안방에 내가 들어가서 내 침구를 가지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에게 안방 침구를 부탁하고 나는 옷방에서 나머지 침구류를 꺼내 서재방으로 옮겼다. 잠자기 위한 방이 아니라서 약간 쌀쌀하다. 방 온도를 조금 높여 놓고 이불을 펴기 시작했다. 아내는 수건에 물을 적셔와 옷걸이에 걸고 그 옷걸이를 서재방 문에 다시 걸어두었다. 침구 준비가 완료되자 나는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내는 문을 닫았다.


나는 잠시 격리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장염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에 체온이 높지 않으면 동네 내과에 들르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온통 코로나 걱정뿐이었다. 맛이 느껴져? 뭐 먹은 게 있어야 맛을 느끼지. 저녁부터는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시국이 시국이니까 검사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일 아침에 체온 재 보고 열 없으면 검사 안 받아도 되는 거 아닐까. 내일 아침에 결정하면 안 될까. 아이들 돌봄 선생님도 와야 하고,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내일 아침에 결정하면 안 될까. 시국이 시국이잖아.


아내의 걱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 과하다 싶었다. 의심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먼저 대응한다는 측면에서는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겁이 났다보다. 그리고 아까부터 아픈 '나' 보다는 내가 '아픈' 것을 더 걱정하는 아내가 못내 서운했다.


"알았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선별 진료소 다녀올게."


새벽에도 일어나서 몇 번이고 체온을 쟀다. 단 한 번도 37도를 넘은 적이 없다. 몸살 기운이 있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기침이 나오지도 않고, 호흡이 가빠지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선별 진료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내심 오기도 생기고 걱정이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니 얼른 다녀오기로 했다. 아니기만 해 봐.


집 부근의 선별 진료소에 들러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모두 깨어 있었다. 이제 6살 4살인 아들과 딸은 서로 엄마를 차지하려고 전쟁을 치르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아빠를 불러댔다.


"얘들아 오늘은 아빠랑 붙어있음 안돼. 아빠 검사받아서 결과 나올 때 까지는 떨어져 있어야 돼. 알겠지?"


이제 막 6살이 된 첫째는 이해하는 눈치였고, 4살이 된 둘째는 그냥 아빠 못 보는 게 싫어서 싫다고 투덜거린다. 둘째 딸은 한참을 그렇게 방 문을 막고 시위를 하더니 티비 보자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쪼르르 거실로 나가버렸다.


나는 다시 방문을 닫았다. 결과가 나올 때 까지는 이렇게 격리를 해야 한다. 다행인 건 장염이라 뭘 먹을 수가 없어서 식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불행인 건, 아내가 덕분에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서재 격리가 아니라 안방 격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방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누워서 핸드폰 게임하다가 뉴스 좀 보다가 유튜브 보다가 잠들었다. 글을 좀 써 볼 요량으로 노트북을 챙겨서 오긴 했는데, 뒹굴며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뭔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마치 죄스러워 손을 대지도 못했다.


나는 아이들이 잠깐 낮잠을 잠든 틈을 타 거실로 나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에는 아내에게 물을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집에 있지만, 갇혀있는 이 답답한 기분은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웠다. 세상 편한 우리 집에서, 그것도 가장 편안한 안방에서. 너무 불편하게 가족들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의 주인공 현수가 생각났다. 나 괴물 아니라니깐.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거지. 안내 문구에는 내일 오전 9시 전까지는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내일까지는 너무 긴데. 이전에 아내도 검사를 받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다음 날 아침 7시쯤에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 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저녁 식사 전 까지만 나와주면 좋을 텐데. 이제 배가 고파 오는 것을 보니, 슬슬 장염도 괜찮아지는 것 같다. 핸드폰을 또 만지작 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띵~"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손목의 워치를 들어 알람을 확인한다. 문자다.


"...음성임을 알려드립니다."


이불을 박차고 안방을 뛰쳐나갔다. 둘째는 거실에서 나온 아빠는 안중에도 없이 티비 삼매경이다. 나는 곧장 아내가 일하고 있는 서재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었다.


"음성!!"


"결과 벌써 나왔어? 다행이야!"


"내, 이 멸시를 잊지 않으리라!!"


"에이, 무슨! 걱정이 됐으니까 챙겨주고 꿀물도 타다 주고 했지."


서운한 마음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과가 나오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래도 아픈 나를 더 걱정해줬어야 했어. 그건 안 잊을 거야. 이런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첫째 아들이 내 다리를 꼭 껴안으며 웃는다.


아빠, 그럼 이제 안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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