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일기
아따, 울 아들 왔능가~!
아들 녀석이 갑자기 집으로 내려왔다.
“혼자 왔냐?”
“응, 그냥 혼자 왔어.”
“왜, 먼일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혼자 와브렀어?”
“응, 그냥”
별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것지. 무슨 일어나지도 않은 일 이건만, 혼자서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노라니 그저 작은 걱정에도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뛴다. 별일 아니것지. 별일 아니것지.
아들 녀석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다 큰 사내놈이 지 엄마를 붙잡고 울고 불고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왜, 먼 일인디?’
‘그냥 지도 지 아내한테, 염치가 없응께 긍갑디요. 안 그요? 결혼하고 얼마나 됐다고, 저리 큰일이 낭께. 지 마누라 도망이라도 갈랑가 겁이 난답디다…흐이구….흐흑…’
아차, 며느리랑 사돈어른께 염치를 팔아먹고 있었다. 내 자식 걱정에 사돈 어르신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했다. 전화라도 한 통 따로 드렸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까.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암시랑토 안항게, 걱정 말고 지 몸 걱정만 하라고 했소. 막말로 도망이라도 갈라치믄 우리가 델꼬 살믄 댕께.’
우리 새 아가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 힘든 병간호를 마다하지 않고 곁에서 1분 1초도 지 남편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 곁을 지켰다. 나와 아내는 아들 녀석 병간호를 사실 거의 하지 못했다. 우리 며느리의 남편 병간호는 빈틈이 없었다. 웬만한 수발은 모두 새 아가의 몫이었다. 아들 녀석이 부르기도 전에 달려가 필요한 게 없는지 물었고, 수시로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남편의 상태를 캐물었다. 힘에 부쳤을 텐데, 염치없이 아들 내외를 병원에 두고 집에서 편히 자다 온 우리에게 의사와 간호사를 통해 들은 이야기들을 모두 설명해 주며 안심시켰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잠도 푹 못 주무시고 오셔서 어떻게 해요.’
아침마다 저 말을 들을 때면, 참으로 염치가 없다. 기특하면서도 염치가 없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미안하다며 한 번을 안아주지도 못하고, 토닥여주지도 못했는데. 새 아가는 우리 집안 전체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혼자 온 아들 녀석이 별 일이 없다고 하니,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조금이라도 좀 쉬게 해 줄걸. 둘이 좀 떨어뜨려놓고 새 아가 좀 진작에 쉬게 할걸 그랬다.
“진짜 별일 없지?”
“아, 없다니까 그러시네.”
별일 없음 됐지 뭐.
“그냥 엄마 보고 싶어서 내려왔어.”
엄마만?
“얌마, 아빠는?”
“…아빠도”
마지못해 하는 말이더라도 듣고 나니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아들 녀석의 짐을 빼앗아 들고 얼른 차에 실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아들내미 식단을 정성스레 준비 중인 아내에게로 향했다. 그냥 너무 이것저것 준비해 봐야 잘 안 먹을 거라고 이야기는 해 두었지만, 아내는 도통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그거 해 놓고, 애가 안 먹는다고 하믄 그냥 냅두소잉. 또 이것저것 잔소리 해 쌓지 말고잉.”
“…나가 뭔 잔소리를 한다요. 하도 걱정이 됭께, 하는 말이지.”
몇몇 음식들은 입에도 대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도 아내는 혹시라도 몸에 좋다니까 입에나 대 볼 일이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 다 준비를 해야 했다. 아내는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물론 몸에 좋다는 것 하나라도 더 먹일 심산으로 준비를 하는 것이겠지만, 어찌 보면 그동안 본인이 해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저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냅두소! 알아서 할랑게!”
대답을 하다 말고 또 갑자기 뭐가 올라왔는지, 아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또 소리를…알았네, 알아서 하소. 괜히 또 준비하는데 나가 김을 빼부렀는갑네, 미안하네.”
아내도 아내 나름대로 이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다. 나도 그 시간들과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갑자기 버럭 튀어 오를 때마다, 움찔움찔해서 또 소리를 지르고 만다. 오늘은 그나마 잘 참아졌지만, 항상 이렇게 잘 참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 녀석이 암 선고를 받고 나서, 우리는 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가끔 잊어버렸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