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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Feb 28. 2021

아버지의 일기 #6. 넌 어려서부터 약했었어.

대장암 일기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스윽, 푸슝~ 턱!


전기밥솥을 열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휘휘 저어 밥그릇에 턱 하니 담았다.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통을 꺼내 상 위에 툭 던져 놓고 으잇차, 수저통으로 몸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별로 멀지 않은 수저통으로 팔을 힘껏 뻗어 숟가락 하나와 젓가락 두 개를 간신히 집어 들었다. 밥상 앞에 털썩거리고 앉아 턱턱 반찬통을 열어 저 구석에 툭툭 던져놓았다. 젓가락을 집어 들어 오른쪽 새끼와 약지 사이에 끼워 넣고 다시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나선 숟가락을 금세 식어버린 밥 위에 툭 하니 올려놓았다.


'으이그...'


다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숨을 쉬어 보지만 들숨이 크게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다. 숨을 다시 깊게 들이켜고 내뱉자 잔 떨림 같은 무언가가 함께 딸려 나오는 것 같다. 간신히 토할 것 같은 그 떨림을 참고 숨만 뱉어냈다. 심호흡은 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밥을 꼭 먹어야 했던 것일까.


아들 녀석은 밥을 잘 먹고는 있을까. 수술이 끝나고 짧은 회복기만 거치고 나서는 바로 퇴원을 진행했다. 암이라는 것이 큰 병이라서 입원도 오래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는 금방 자기 할 일들만 후딱 해치워 버리고는 아직도 뱃속 장기들이 뒤틀리는 것 같다는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그 작은 덜컹거림에도 수술부위가 아프다며, 예전 같았으면 짜증 내는 목소리로 아빠를 수도 없이 불렀을 녀석이 그저 나지막이 신음소리만 삭이고 있었다. 정말 집으로 돌아가도 되는 것일까. 지하 주차장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한쪽 팔로는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다른 한쪽 팔로는 쏟아질 리 없는 배를 한껏 받치고 조심스레 걸어갔다. 정말 이 상태로 집에서 회복을 할 수는 있는 것일까.


퇴원 후, 아들 녀석은 식사를 곧잘 했다. 화장실을 자주 가기는 했지만, 그것도 곧 나아질 거라고 했다. 아들 녀석도 큰 어려움 없이 곧잘 적응해 내는 것 같아 마음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다고 생각했던 다른 가족들의 자만이 화를 자초했다. 이제 김치도 먹을 정도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씻은 김치를 먹여보겠다고 했던 것이 수술로 30cm가 넘는 장을 잘라낸 아들에게 그렇게 힘든 일이 될 줄 몰랐다.


'얘가 오늘은 화장실을 자주 가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을 가는가 싶더니, 기어코 쉰 번을 넘겨버렸다. 나는 비염이라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아들 녀석의 방귀 냄새도 고약해진 모양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아들 녀석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밥상머리에 코를 박고 있는 두 여인들을 보니 대충은 느낌이 왔다. 그때마다 괜찮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허허거리며 이야기했는데 그런 행동이 아들은 더 민망했으려나. 아마도 매운 음식이 아들의 장에 자극을 주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잘라낸 대장은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변으로 만드는 곳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매운 음식이 장을 자극하다 보니 운동이 활발해지다 못해 찌꺼기를 모으지도 않고 밖으로 내보내려나보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도 한숨 자지 못한 아들 녀석은 넋이 나가 있었다. 아내는 이런 아들 녀석을 보면서 뭘 잘못 먹인 것은 아닌지 또 방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한숨을 쉬며 자책하고 있었다.


'먹였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미련하게 또 나 하고자픈대로 했네 또.'

'뭘 또 그래 쌓는가. 몰랐응께 그랬지. 알았으믄 그랬것는가...그만하소...'


어려서부터 아내는 아들 녀석에게 밥 한 끼 배불리 먹여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우리 부부가 돈이 없어서 아이들 끼니를 잘 챙겨주지 못했던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들 녀석은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났다.


'오늘은 애 밥은 잘 먹던가?'


집에 돌아오면 항상 먼저 아내에게 아들 녀석 끼니부터 물었다.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것네. 오늘도 또 토했당께.'


그런 아이를 붙들고 아내는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것을 모두 해 보고 있다고 했다. 아내가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일일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이가 마른 편이었지만, 그래도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지는 않은 걸로 보아 아내의 노력이 그래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소화기관이 약하다 보니 도통 살은 찌는 것 같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 녀석은 정해진 식사량만 채우고 나면 숟가락을 바로 내려놓았다.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도 정확히 정량을 채우면 귀신같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그러다 한번 조금이라도 더 먹는 날에는 여지없이 체해서 먹었던 걸 모두 토해버렸다. 저도 그런 자신을 알았는지 절대로 본인 식사량을 초과해서 먹는 일이 없었다. 자식들 잘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데.


'여보, 우리 애가 영양실조랍디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려는 나를 붙들고 아내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뭘 어쩐다요. 나는 한다고 쎄가 빠지게 해 쌓는디, 뭐시 영양이 없다요. 글고 인자 뭔 헛것도 본다더랑께.'

'약을 좀 해 맥여보세. 나가 여기저기 좀 알아볼랑게. 울 부서 아덜한테도 알아봐 달라고 하꺼싱께. 걱정말고 있어보소.'


영양실조라니. 그동안 너무 손을 놓고 있었나. 다음 날 회사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동료들을 붙들고 아들내미 이야기를 들려주며 용하다는 한의원을 수소문했다. 이 작은 도시에 용하다는 한의사가 이렇게나 많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용하다는 한의원들 찾아다니며 한약을 해 먹였다. 녹혈도 먹여보고, 미꾸라지 100마리를 삶아서 고아 먹여보기도 했다. 할 수 있는 민간요법은 듣는 대로 거의 다 해보았다. 어린 아들에게 이 쓰디쓴 약들, 징그러운 음식들을 먹이는 것이 내심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들 녀석이 한 번도 이 몹쓸 약들을 먹기 싫다고 칭얼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도 제 몸이 아픈 것이 너무 싫었던 것이었겠지. 그 쓰다는 한약을 먹으면서도 눈 꾹 감고 다 버티며 물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꼬. 어린것이 얼마나.


'아빠, 이거 먹으면 나 이제 토 안 해?'


그래 인마. 꾹 참고 다 먹으면 이제 토 안 하지. 약 먹으면서 한 번도 토 안 하고 쓰다는 그 약, 죄다 먹고 이제 좀 괜찮아진 거잖아. 인마. 우리 아들이 대학 가고 술도 먹고 제대하고 살도 좀 붙고, 아빠가 너 먹는 거 보면서 이제 배 좀 부르던데. 그 고생해가면서 다 키웠다고 엄마랑 얼마나 울었는데, 또 이렇게 애기가 되어서 그러고 있느냔 말이야. 왜...!!


힘겹게 숟가락을 들어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아빠가 좀 더 버텨보마. 어렸을 때처럼. 눈 꼭 감고. 조금만 버텨주렴.


할 수 있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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