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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18. 2020

아버지의 일기 #5. 괜찮다.

대장암 일기

하루


“여보세요.”


“……흐흑…”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의 수술이 끝나고 난 뒤부터 전화만 하면 아내는 울기부터 한다. 멀리서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 있는 나에게 아내의 눈물은 아들에 대한 걱정 말고도 또 다른 그 무엇이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온다.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부디 힘을 내 주길. 부디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길.


“……밥은…?”


“어, 먹었네. 잘 먹고 있응께 그건 걱정 안 해도 되네.”


우리의 대화는 겨우 몇 마디 안되는 식사안부와 몇 가지 집에서 해야 할 잔 심부름 정도로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 수술이 끝나고 며칠 후에 곧장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너무 오래 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아들 곁에서 해 주어야 할 것들도 많고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여수로 내려왔다.


“……드르륵!”


냉장고가 돌아가다 말고 짧은 트림을 토해낸다. 언제부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냉장고도 이제 그 입을 다물었다. 이제 들리는 소리라고는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뿐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아내와 통화를 마치고 나면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창 밖으로 만연한 봄의 기운은 이 집안까지 들어오기를 거부하고 있다. 나는 그런 봄의 기운을 창 안에서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나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꽉 막혀오는 것 같다. 그 누군가의 손이 저 아래 어디서 슬금슬금 내 가슴을 향해 올라온다. 그리고 내 심장을 서서히 움켜쥐기 시작한다. 숨을 크게 쉬어보지만 평소보다 들숨의 양이 적어진 것 같다. 마치 유리병 안에 풍선을 넣어놓고 그 병보다 더 크게 풍선을 불어보려고 하는 것 처럼. 답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대체! 뭘 해야 하는 거야! 대체 뭘! 창 밖으로 보이는 따사로운 풍경들이 두 개로 갈라지더니 이내 뚝 떨어진다.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그 손이 이제는 머리까지 올라와 나를 흔들기 시작한다.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 보지만 그럴수록 숨은 더 가빠질 뿐이고, 내 눈은 초점을 잃어갈 뿐이다.


“위이잉~!”


견디다 못해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일단 뭐라도 해야 한다. 언제 또 찾아올지도 모르는 이 적막은 또 다시 나를 저 밑으로 끌어당길지도 모른다. 움직여야 한다.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아무것이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하자. 뭐라도.


저녁을 먹을 무렵이 되어서야 쌓여있던 집안일과 아내가 당부했던 일들이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세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숨을 조금 돌리고 있으니 눈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한다. 눈을 좀 붙여야겠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 몸이 뻐근하다. 밖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싱싱한 진 푸른 빛이 돌기 시작한다. 그 빛도 거의 없는 어두운 푸른 빛이 뭐가 그리 좋다고 한참 동안 평소와 다르지도 않은 저녁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들녀석도 이걸 보고 있을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인데, 이런 풍경들도 참 좋아하지 않을까. 꼭 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려온다. 매일 안부를 직접 묻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잘 견뎌주고 있어서 너무 고맙구나. 아빠는 잘 지내고 있단다. 아빠는 여기서 혼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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