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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15. 2020

아버지의 일기 #4. 잘 견뎌다오

대장암 일기

수술


아들의 수술이 결정되고 아들은 입원을 했다. 우리 가족중에 누군가가 이렇게 큰 수술로 입원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지금 서울대학교 병원의 한 병실에 모두 모여있다. 수술이 시작되기 전 까지는 며느리가 옆에서 아들 곁을 지키기로 했다. 아무래도 며느리가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도란도란 웃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곁에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내를 겨우 설득해 둘만 남겨놓고 우리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큰 아이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이"


손녀딸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이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잠깐 손녀딸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아들과 병실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병실에서 잘 있는 것일까. 수술을 앞두고 무서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녀 딸의 재롱을 보는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 같다.


"휴우......"


"한숨 쉬지 마!"


나도 모르게 나온 한숨에 아내는 민감하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래. 한숨을 쉬지 않아도 된다. 아니, 한숨은 쉬지 않아야 한다.


"오늘은 모두 일찍 주무세요. 내일 병원도 일찍 가 봐야 하니까."


큰 아이가 자기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이제 거실에 남았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부부는 멍하니 창문 밖만 바라보고 있다.


"얼른 씻고 잡시다."


잠들어 이 시간을 지우는 것 만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이다. 눈을 감으면 자꾸 다른 형상들이 그 검은 도화지를 채워 나간다. 차라리 눈을 뜨고 바깥 불빛이라도 바라보고 있는 편이 낫다. 눈을 감으면 채워지는 그 검은 이야기들을 몸서리를 치고 고개를 흔들어 쫓아 냈다. 몇 번이고 채워지는 그 깜깜한 도화지를 지우고 또 지웠다.


다음 날, 아내와 나는 병원 병실을 다시 찾았다. 아들 내외가 침대에 딱 붙어 우리를 맞이해 준다. 수술을 앞두고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저렇게 멀쩡한데. 저렇게 멀쩡한데. 수술을 정말 하는 것일까. 정말 아픈 것일까.


아내와 나는 병실에 있기는 하지만, 딱히 할 일이라고는 없다. 그저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아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 외에 해 줄 것이 별로 없다. 그나마 아들의 간단한 요구사항도 며느리가 모두 다 하고 있다. 병실에서 할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일 수술을 앞둔 아들의 병실을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일 수술을 앞둔 아들을 눈 앞에 두고 하릴 없이 있노라니,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그 동안 머릿속에 남아있던 티끌같은 걱정들이 모두 이 시나리오에 반영된다. 쪽대본처럼 허술하기 그지없는 시나리오로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가위에 눌린 것 처럼 숨이 막혀온다.


산책이라도 좀 해야겠다. 맑은 공기를 좀 쐬고나면 괜찮아 지겠지.




아들의 수술 날. 우리 가족들은 모두 아침 일찍 병실로 모였다. 간단하게 기도를 마치고 의료진이 와서 아들을 데리고 갈 것만 기다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복 비슷한 것을 입은 한 남자가 침대를 끌고 우리 병실 앞에 섰다. 인적 사항 몇 가지를 확인하더니 아들을 가지고 온 침대 위로 옮겨 눕혔다. 수술을 하러 정말 가나보다. 심장이 또 뛴다. 목에서 내 맥박이 느껴지고, 귀에 선명하게 내 심장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 아들은 눈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아들을 침대에 눕힌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대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별다른 설명도 하지 않고, 따라오라는 둥, 남아있으라는 둥 말도 없이 그냥 침대를 끌고 저 멀리 간다. 마음이 급해진다. 옷가지를 챙겨서 멀어지는 아들을 부리나케 따라간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침대가 멈췄다. 가족들은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수술실 앞으로 오란다. 아들과 잠시 떨어져서 우리는 먼저 2층 수술실 입구에 도착했다. 조금 기다리자 아들을 태운 침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수술실' 이라고 적힌 문 앞에서 침대가 멈춰섰다.


"여기서 가족분들 인사하시고 들어갈게요."


뭐가 뭔지도 모르게 금방 인사를 하게 하더니 아들을 '수술실'이라고 적힌 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아 손을 못잡아 줬어... 아들 손을 잡아주지도 못했는데, 매정하게 침대를 끌고 그 삭막한 문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지도 못했는데...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아들의 눈은 계속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사랑한다고 말해줄껄... 그리고는 문이 닫혔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다. 수술이 세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것과 여러가지 발생할 수 있는 생각하기도 싫은 '가능성 있는' 일들. 의료진의 설명을 듣는 중에 수술실의 계속 열렸다 닫힌다. 문이 열리자 아들이 누워있는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한다 아들아... 눈이 나빠 잘 보이지도 않을텐데, 그 눈이 우리를 향해있다. 다른 환자들의 침대가 드나들 때마다, 다른 의료진들이 문을 지나갈 때 마다, 아들은 침대에 누워서 우리만 보고 있다. 불안해 하지 마. 다 잘 될꺼야. 아빠가 진심으로 기도하마.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잘 견뎌주렴.


다시 문이 열렸을 때, 아들은 침대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다 괜찮을 거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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