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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11. 2020

아버지의 일기 #2. 대면

대장암 일기

진정이 되지 않는 아내의 속을 달래며 다섯 시간이 넘는 운전 끝에 아들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막상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한참을 차 안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또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동을 끈 차 안은 나와 아내의 숨소리만으로 가득했고, 그 숨소리 조차 조심스러웠다.


나는 아내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21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였지만, 한 없이 바닥으로 꺼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딩동."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들 내외 집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아들의 보고 싶고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주고 싶었다. 등을 토닥이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아빠가 있으니, 다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꼭 안아주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은 아들이지만, 이 문을 열면 쏟아질 그 수 많은 것들이 겁이 났다.


어렵사리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 후에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얼핏 문을 연 며느리 뒤로 눈에 초점을 잃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죄인처럼 우리를 처다보지 못하고 앉아 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며느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인사를 건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내는 어느 새 집 안으로 들어가 아들 곁으로 가 있다.  


 "그래, 무슨 일이니?"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수 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 장면을 수도 없이 연습해 보며 도착했지만, 막상 아이들을 보니 나오는 말은 걱정과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며느리가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 준다. 오늘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갔고, 검사 도중에 의사가 자신을 잠깐 불러 대장암 가족력을 물어봤단다. 다시 심장이 뛴다. 아닐꺼야. 아이들에게 내 기분을 들켜서는 안된다. 며느리의 눈을 똑바로 처다보지 못하고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대장암 3기래요......"


 저 말을 끝으로 며느리는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이내 뒤에서 묵묵히 고개를 푹 처박고 눈 한번 마주쳐 주지 않던 아들이 저 말 한마디를 겨우 우리 앞에 조심스래 던져놓더니 울기 시작한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안된다. 이 상황을 지켜내야한다. 나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힘겹게 눌러대고 있었다. 떨리는 호흡을 간신히 붙잡고 버텼다.


"어떡하니...어떡하니..."


아내가 갑자기 원망섞인 손으로 아들의 등을 몇대 치더니, 이내 그 옆에 풀썩 쓰러져 아들의 얼굴을 감싸고 또 끌어안으며 울기 시작했다.


"여보, 진정해.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우리가 이러면 안돼."


아내는 울기 시작하면서 수 없이 차 안에서 한 다짐은 생각하지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제외한 세 식구가 내 눈 앞에서 서로를 끌어 안으며 목놓아 울고 있다. 하지만 나는 참아야 한다. 반드시 참아야 한다. 으으으...참아야 한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상황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나라도 감정을 다잡고 있어야 한다. 주먹을 꽉 쥐어본다. 그러나 내가 지금 당장 이들에게 해 줄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며느리의 어깨를 다독이지도, 아들의 등을 토닥이지도, 아내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그저 이들의 눈물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 줄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오랜 울음이 그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아들내외의 상황을 자세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 전에 증상이 있었단다. 건강검진 결과에서도 이상 소견이 있었단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 동안 아들을 타지에 보내놓고 그저 잘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전화를 해서 상태를 체크 했어야 했다. 별 일이 없는지 구체적으로 물었어야 했다. 아들이 화를 내고 귀찮아 하더라도 더 확인을 했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 부터 곁에 두지 못해서 멀어져 있던 것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로 대학을 보내놓고 별 달리 걱정하지 않고 아들을 믿고 있는게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더 신경을 썼더라면...내가 더 신경을 썼더라면...가슴이 무너진다. 억장이 무너진다. 온 몸을 비틀고 쥐어짠대도 이 보다 더 아플까.


미안하구나 아들아. 아빠가 더 자주 연락할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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