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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08. 2020

아버지의 일기 #1. 무너지면 안된다.

대장암 일기

전화 


 2014년 2월. 여느 한적한 아침을 보내고 있다. 요즘 중국어에 푹 빠져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퇴 후에 별 달리 집에서 하는 일은 없지만, 운동과 공부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유일한 일과다. 특히, 중국 출장을 다녀와서 흥미를 갖게 된 중국어 공부는 정말이지 내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오늘도 아내는 친구와 찜질방을 간다며 나가고 없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하루를 온전히 보낼 생각을 했었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텔레비젼을 보아도 환갑을 넘긴 아내들은 이제와서 가정에 시간을 할애하려는 남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어쩌면 그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가정과 회사에 모두 충실하려고 노력했지만, 한 쪽에서 받아들이기에는 그렇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지. 이제 와서 나의 노력을 알리는 데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 사실 지금까지 가정보다는 사회생활에 그 무게 중심이 절대적으로 실려있었다. 이 가정이 지금 이 만큼 유지되고 있는 것도 모두 아내의 덕분이다. 어쨌든 아내가 나가고 나 혼자 집에 있는 이 시간은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다.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며느리다.


 "응, 그래. 무슨일이니?"


 "아버님, 저...서울좀 어머니랑 올라오셨으면 하는데요..."


 갑자기 서울을 올라오라니, 무슨 일 일까.


 "무슨...무슨 일 있니?"


 "아...David씨가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요...결과가 좀 좋지 않아서요..."


결과가 좋지 않다니. 이게 무슨 말 일까. 좋지 않다고 우리를 다 서울로 오라니. 무슨 또 일 일까. 머릿 속으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 했다. 정확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해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떤 불안한 느낌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 단어 하나도 내 뱉을 수 없었다. 내가 말 하는 순간,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깊은 숨을 들이 쉬고, 긴 호흡에 이 불안함을 함께 저 멀리 뱉어본다. 아니겠지.


 "그래, 알았다."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되지? 일단, 아내부터 부르자.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통화버튼을 수 차례 눌렀다. 대체 전화는 왜 안받는거야! 이럴거면 핸드폰은 뭐하러 들고 다니는거야! 찜질방을 어디로 간다고 했지? 아이씨, 어디였더라? 나는 의외로 침착하게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내가 어느 찜질방을 간다고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내를 빨리 불러야 하는데, 내 머릿속은 어둠컴컴한 사막같다.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찜질방 이름을 알아내야한다. 겨우 겨우 찜질방 이름을 기억해 내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급한 일이라고 설명하고 아내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람을 찾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방송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곧 전화가 오겠지. 아내가 카운터로 오면 전화를 하라고 전해주겠다는 말을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정말 무슨 일 일까.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하지만 그 흘러가는 생각들 중 어느 하나 잡고싶지 않다. 아내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5분이 지나도록 아내는 연락이 없다. 다시 찜질방에 전화를 해서 방송으로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방송을 계속 좀 해 달라고도 부탁했다. 이번에는 방송을 하기도 전에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내시경 검사인데, 결과가 좋지 않다니.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슴이 콱 막혀온다.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서 들릴 지경이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심호흡을 해 보지만 효과가 있는지 잘 느낌이 오지 않는다. 40분이 넘어서야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인데?"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아! 일단, 집으로 빨리 와."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무슨 일인데 그래요?"


 "David일이야, 그냥 빨리 집으로 와."


아들 일이라는 말에 별 다른 말 없이 아내가 전화를 끊었다. 지금 부터 아내도 지금까지 내가 보낸 시간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내도 흘러가는 생각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잡아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쁜 생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옷가지 부터 올라가서 생활해야 할 물품들 까지. 지금 서울을 가면 얼마나 있다가 다시 여수로 올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올라갈 수 있도록 짐을 꾸렸다. 30분 만에 아내는 집에 도착했다.


 "얼른 갑시다."


아내는 혼이 나간 사람같아 보였다. 눈은 분명히 나를 보고 있지만 눈에 초점은 없었다. 여보, 정신 차려야 해. 아무말도 절대 하지마. 절대로. 한 마디도.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옆에서 창 바깥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여보, 우리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절대 올라가서 무슨 말을 하던 울면 안돼네. 우리가 무너지면 안돼."


 "아이고오......흐흐...흑..."


아내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참았던 울음이 둑에 구멍이 난 것처럼 입술 사이로 조금씩 세어나오더니, 금방 그 둑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내는 이 차 안을 눈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우리 차 안은 아내의 절규로 가득했다. 정신 차려야 된다. 아직 아무 말도 우리는 들은 바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무너지면 안된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안된다. 내가 울면 안된다. 절대로.


나는 이 가정의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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