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만 있을 뿐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상 있는 곳은 없으시고?"
"네, 이상한 곳도 없고 잘 지냈습니다."
최대한 씩씩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내 가슴이 왜 이렇게 뛰는지 모르겠다. 숨을 들이켜도 마셔지지가 않고, 내뱉어도 나오는 숨이 없다.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 의사 선생님의 모니터가 보일 듯 말 듯한 위치에 앉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밝게 그러나 너무 오버스럽지 않게 얼굴에 미세한 긴장을 주었다. 눈은 진료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의사 선생님의 얼굴과 눈을 떠나지 않았다. 표정이 일그러지지는 않는지, 어느 순간에라도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는지, 행여 뭔가를 이제 와서 발견하지는 않는지.
틱틱.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고, 키보드를 눌러 뭔가를 입력하는가 싶더니, 눈을 동그랗게 떠 보며 짧게 숨을 '스읍' 들이마시고는 이내 '후우'하고 조금 더 길게 내뱉는다. 그리고는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리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별 이상 없네요. 뭐 먹거나, 화장실 갈 때 불편한 점은 없어요?"
"네, 별로 불편한 건 이제 없어요. 적응한 것 같아요."
"잘 됐네요. 피검사 결과도 좋고, CT도 좋고, 다 좋네요. 인제 졸업합시다."
'...졸업?'
"아..아! 네!"
"완치라는 이야기는 잘 안 하고 통상 5년 생존율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환자분 경우에는 가족력이 아예 없지는 않았어서 2년 더 지켜봤어요. 7년 동안 재발 안 하면 이젠 진짜 기존 암 때문에 재발하는 암은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네, 감사합니다."
"뭐, 별 다른 물어볼 건 없으시고?"
"네, 다른 궁금한 건 별로 없습니다."
외과 외래 담당이신 교수님은 한번 씨익 웃어 보이시더니,
"잘 됐네요. 이제 여기 그만 오고,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 잘 받고, 먹는 거 잘 먹고 잘 지내요."
"네..네! 감사합니다!"
교수님께 몇 번이고 인사를 드리고 진료실 문 밖을 나왔다. 어쩔 줄을 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려던 찰나. 진료실 밖에서 진료를 대기 중인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얼굴, 표정, 눈빛 어느 하나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순간 감정을 억누른 채 간호사님의 마지막 호출을 기다렸다. 곧 간호사님이 진료실에서 나와 내 이름을 부른 뒤, 진료비만 수납하고 돌아가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돌아가는 내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주지 않은 채, 인사를 해 주셨다.
"고생하셨어요. 잘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진료실 복도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화장실로 곧장 향했다. 입을 힘껏 틀어막고 눈물을 쏟아냈다. 기쁘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았는데, 이 눈물이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밤에 잠들 때마다 찾아오는 악몽은 끔찍했다. 그것은 단 하루도 날 놔주지 않고 내 목을 쥐고 흔들었다. 밤마다 나를 붙들고 울부짖던 그 잔인한 악마. 7년 동안이나 마음 한켠에서 나를 쉬지 않고 흔들어대던 녀석으로부터 이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그래도 난 이제 조금의 자유를 얻었다. 악마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쥐고 흔들어도 도망갈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 녀석과 마주하는 것은 두렵고 잔인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이젠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곳이 생겼다.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