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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Feb 06. 2022

사죄

미안해요

떨리는 심장과 미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집 밖으로 부랴부랴 도망쳐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고, 알아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속 시원하게 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와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가로등 불이 되도록 적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곳을 애써 찾아가며 걸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울고 있을까. 소리라도 시원하게 지르면 괜찮을까 생각만 잠시 해 보았다. 그럴 마땅한 장소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용기도 없었다. 


한참을 걷고 또 걸으면서도 나는 이 낯선 동네에서 길은 잃기 싫었는지, 같은 길을 수 바퀴 째 돌고 있었다. 같은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길 한쪽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저녁은 맛있게 먹었느냐는 걱정 한 아름 섞인 질문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참을 말이 없이 그 울음을 지켜내던 아내는 끝까지 무슨 일이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스스로 곡소리에 지친 내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읊어놓을 뿐이었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왜 이 낯선 거리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고 또 도는지 아내에게 설명을 하면 할수록 대체 내가 왜 울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내는 이해가 갔을까.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고 믿고 있는 이 기억들이 이렇게 까지 내가 목놓아 울음을 늘어놓을 만한 일들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기억들은 기억하기 싫은 그저 좋지 않은 기억일 뿐. 아니지, 이제 그 마저도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일인지 조차 확실하지 않은 과거일 뿐이다. 나는 왜 울음을 게워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인가 마음을 쥐어 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울음을 울고,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질러보아도 그 마음이 토해지지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의 담벼락에 기대어 한 동안 가만히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모르는 이 마음이 어떻게 진정이 되었는지, 정말도 진정이 되었는지도 모른 체 집으로 돌아왔다.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온 눈치를 보았지만, 집 안은 그저 인기척과 기기척만 흐를 뿐이었다. 


"주무세요."


"...그래, 자거라."




다음 날이 되어서도, 우리는 어제의 일을 모른 척했다. 내가 다시 아내의 곁으로 돌아갈 때 까지도. 아니, 지금까지도.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그날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제 내가 그날 겪은 일이 무엇이고, 무엇 때문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듯하다. 그리고 마음의 큰 흉터를 안고 아들 녀석에게 티 내지 않으려 전전긍긍하셨을 부모님께 특히 아버지께 작은 사죄를 드리고 싶다.


그날의 일은,


확실하지도 않은 내가 만들어 내었을지도 모르는 기억에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그날 내 울분의 이유는 아니었다고. 아마도 나는. 이렇게 못난 인생이 되어버린 것 같은 내가. 이 모든 상처의 근원이 되어버린 내가. 아마도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모두 나로 인해 생긴 일들이었지만, 그것을 내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그래서 누군가를 탓하며 원망하고 싶었나 보다고. 그럴 자격이 뻔히 없지만. 그래도 한번 철없는 자식처럼 눈 딱 감고 아빠한테 소리 질러 본 것이라고. 아들 아들 하며 살아온 엄마보단, 그래도 조금 멀리서 크게 서 있던 아빠한테 하는 게 덜 염치없는 거라고.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서 정해버렸고. 그렇게 아빠가 대상이 되었던 것이라고.


지금도 아무도 그날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그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해야 할 날이 온다면. 그때, 이 글을 보여드릴게요. 


미안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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