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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22. 2021

트라우마

단지 편하지 않았던 건 나 자신이었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굳이 내가 들겠다는 케리어를 허리춤까지 바짝 추켜올려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는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도어록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재빠르게 터치패드를 두어 번 문질러 흔적을 본인의 흔적을 없앴다. 


 "언능 드가자"


현관문이 손톱만큼 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연민과 질문과 잔소리로 가득 찬 눈으로 중문 안쪽에 멀찌감치 서서 억지로 웃음을 짓고 계셨다. 이유 모를 겁이 덜컥 내 심장을 잡아끌었지만, 어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는 금세 억지를 지우고 환하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고생했네, 오느라. 얼른 손부터 씻고. 밥은 묵었냐?"

 "안 먹었지. 뭐 맛있는 거 좀 해놨당가? 그래 봐야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긴 하네만..."

 "그냥 밥 묵어야지. 반찬에다가. 맨날 먹는 반찬에 밥이지. 뭐 별거 있간?"

 "내가 엄마 반찬을 먹은 지가 좀 됐거든?"

 "아따, 아니 그냥 맨날 반찬이 거기서 거기지 뭐 별거 있다냐..."


엄마가 보고 싶어 내려왔다.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이,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내려왔다. 단지, 그뿐이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래서 내려왔어. 그 말이 입 밖으로는 차마 내뱉어지지 않았다.


 "근데, 왜 혼자 내려왔어?"

 "그냥, 내려왔어. 와이프도 좀 힘드니까 쉬라고 할 겸"

 "참, 네."


어머니는 괘씸하다는 듯 눈을 한번 흘기시고는 미간을 보란 듯이 살짝 찡그려 인상을 찌푸려 보이시고는 웃으시며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나는 고향으로 혼자 내려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냥 고향에 내려오면 느끼게 되는 안정감. 포근함. 뭐 그런 감정들을 기대했던 것 같다.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내가 한 번도 같이 살아보지 못한 집이고, 동네도 새로 이사한 동네라서 낯설지만. 부모님의 공간에 내가 다시 들어간다는 기분은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아니면, 언제라도 뭐가 필요하면 아무 때나 버릇없이 엄마를 불러댈 수 있어서 좋았을까. 이 공간에서는 빈둥거리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던 막둥이 아들의 역할에 충실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을까. 이 공간에서 나의 역할은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은 저 뒷전으로 미뤄 놓으면 그만인 것이었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아내와 함께 이미 집에 두고 내려왔다. 나는 그저 여기서 잘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그뿐이다.


그날 저녁, 한없이 평화롭던 나에게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그 시작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언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소에도 목소리가 큰 편이신 데다가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서 언쟁을 벌이시다 보면, 본인들은 그냥 의견 충돌이라고 하시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곧 들이받을 것처럼 싸우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유독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언쟁을 견뎌내기가 몹시도 힘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뭔가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지는 않았던 터라, 두 분을 중재한답시고 이제 나이 좀 먹은 능구렁이 막둥이가 되어 아따 왜 그런다요를 연신 내뱉으며 두 고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갑자기 화를 주체하기 어려우셨는지 아버지가 불끈 쥔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아씨, 진짜 사람을 뭘로 보고 이걸 콱!"


주먹을 치켜든 것도 아버지였지만, 더 이상 나가지 않게 그 주먹을 붙잡고 있는 것도 아버지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모진 욕을 퍼부으며 애써 차린 밥상을 뒤엎고 있었다. 무슨 욕을 했었는지, 무슨 말이 오갔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놀라 뒤를 돌아보며 머리를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흐흐흑! 흐흐흐...흐흐...흑..."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무리 나를 찾아보려고 해도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어디서 보고 있었던 것일까. 누나는 어디 있지? 학원에 가 있었을까?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심장이 너무 뛰어 달랠 길이 없었다. 떨리는 심장은 내 머리를 쥐고 흔들고 또 흔들었고, 나는 애써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이러려고 내려온 게 아니란 말이야. 엄마랑 아빠랑 같이 웃고 지내자고 온 거란 말이야. 오늘 엄마랑 아빠랑 싸우게 된 것도 나 때문이었던가? 나 때문이었겠지. 그래 또 나 때문이었겠지. 점점 더 피가 머리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꾹 쥔 주먹은 바들바들 떨려 오기 시작했고, 나는 이걸 어떻게 멈추는지 몰랐다. 미쳐 돌아버린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이대로 두면 어느 순간 나사 하나가 핑 하고 나가떨어져 내가 내가 아닌 게 될 것만 같았다. 멈춰야 된다. 멈춰야 돼. 할 수 있어. 멈출 수 있어.


 "그만 쫌 해! 제발 쫌! 왜 또 그러는 거야 또! 아빤 또 무슨 밥상을 엎어버릴 거야? 엄마 우는걸 또 한 번 봐야지 그만 할 거예요!!? 아니지, 그때도 엄마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어도 그만 안 뒀지! 그만 좀 해 쫌! 이런 거 볼 때마다 미쳐서 정신병 걸려버릴 것 같다고 진짜! 아아아악! 진짜! 미쳐버릴 거 같아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고오!!!"


난대 없이 질러대는 아들내미의 고성에 집 전체가 얼어붙었다. 정말 정신 나간 놈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내 대사를 모두 마친 후에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진정시켜보겠다고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희미하게 아버지의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아야, 아들아. 아야. 정신 차려 봐봐. 왜 그냐. 왜 그냐잉? 읭? 아들!"


 거친 숨은 진정이 잘 되지 않았고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한 자리에서 몇 번 더 거친 숨을 몰아쉰 뒤에야 머리로 몰렸던 피가 조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는 두 눈을 감싸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참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모진 말을 아버지에게 쏟아내게 만들었을까. 아버지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었다는 미안함. 버릇없이 대들었다는 후회. 어린 시절의 기억 따위에 아직도 나약하게 휘둘려 버린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어머니의 울음소리. 


 "알았다. 알았다. 안 할게... 안 할게... 안 할 테니. 진정 좀 해봐라 아들... 흐흑..."


결국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그 시절 어머니를 울렸던 아버지처럼, 이젠 내가 어머니를 울리고 있구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그 못된 행동에 대한 기억으로 난 아버지에게 화를 내려고 했던 것인데, 그래서 모진 말들을 염치없이 쏟아냈던 것인데. 엄마는 나 때문에 이렇게 또 울고 있구나. 내가 아프다는 사실에 눈물 흘렸던 엄마를 잊어버리고, 이렇게 또.


엄마 미안해.

아빠 미안해.


나 때문이었어. 전부, 나 때문이었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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