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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Mar 16. 2021

엄마가보고 싶어

갑자기보고 싶어 졌어

나 엄마가 보고 싶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와이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뜬금없이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것도 너무 너무 견디기 힘들 만큼.


고등학교를 기숙사에서 지내온 탓에 일주일에 고작 두 번 보았던 엄마를 대학교 진학하면서는 일 년에 서너 번 보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그 마저도 2년 정도 하다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두어 번으로 줄었고, 제대 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면서 한 번으로 줄었다. 7개월의 짧은 어학연수 후에는 취업 준비를 핑계로 같은 나라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살갑지 않은 자식인 탓에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하다 보니, 그저 멀리서 말없이 서로 응원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드리는 안부전화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서로 시간을 뺏을까 봐 입밖에 꺼내지 않고, 간단히 용건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를 그리워해 본 적이 있을까.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꽤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지만 그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군에 입대해서 잠시 정신을 차렸던 훈련소에서의 며칠을 제외하곤 어머니가 보고 싶다거나, 집이 그립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보지 않았다. 죄송스럽지만, 잠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기면 어김없이 집요하게 귓속을 파고드는 잔소리가 귀찮다고 더러는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잔소리 때문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 나 스스로 무엇인가 해 보고 싶은 열망으로만 가득 넘쳤지만 사실 자신감이 없던 내가 부모님의 걱정을 잔소리로 곡해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 무릎에 머리를 배고 누워 끊이지 않는 엄마의 잔소리에 


'아, 몰라. 됐어.'


라며 귀찮다는 듯 눈을 감고 투정 부리며 뒹굴고 싶었다. 잠깐 외출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뭐하느냐는 눈빛을 가볍게 배시시 웃음으로 응수하며 안부를 묻고 싶었다. 한참을 뒹굴다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스르르 잠이 들고 싶었다. 그러다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어 관절을 두드리며 끙끙대는 어머니의 신음소리와 슬금슬금 코를 골다 입맛을 다시는 아버지의 쩝쩝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고 싶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풍경이 왜 내 머릿속에 그려졌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그 풍경 속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위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래, 며칠 가서 어머니, 아버님이랑 시간 보내다가 와. 어머니 아버님도 좋아하시겠네."


아내에게 부모님을 뵈러 혼자 가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사실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혹여, 내가 아내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내가 아내로부터 받고 있는 안정과 위로가 충분하지 않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는지. 내가 왜 갑자기 엄마를 보고 싶어 했는지 설명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내가 오해할만한 것들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아내를 마치 속이 좁은 사람으로 규정하게 되는 것 같아 별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는 못했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내는 나를 내 고향으로 내려보내면서 눈에 걱정을 하나 가득 품었다. 암 환우를 혼자 어딘가에 두는 것이 마음에 큰 짐이었으리라. 나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눈망울을 뒤로하고 힘겹게 고향길에 올랐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KTX에서의 풍경은 예전 모습 그대로 흘러갔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아이들의 장난치는 소리, 자동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하며 눈대중으로 검표를 해 보는 역무원,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자리를 찾는 사람들.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매번 고향으로 내려가던 그 풍경 그대로였다. 그러나 매번 내려가던 그 풍경이 아닌 것 같았다.


어색하고 익숙한 시간들을 지나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얼마 안 되는 짐을 끌고 역 밖으로 나가자 저 멀리서 아버지가 한 손으로는 허리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을 스윽 들어 보이더니 이내 다시 허리를 짚었다. 나도 이내 손을 들어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아버지에게 씩씩하게 걸어가 본다. 내 짐을 건네 받으시려는 아버지의 손을 툭 쳤다.


"됐네. 오래 기다렸능가?"

"방금 왔어. 미리 와 봐야 차 델 대도 없응께. 시간 맞춰 왔다가 얼릉 가부러야지. 오느라 고생했다."

"엄마는?"

"집에있지. 니 온다고 이것저것 해 싸코 있응께 가서 보고 잘 좀 묵어줘라. 못 먹는 거 있으믄 미리 말하고."

"응. 근데, 허리가 안 좋아?"

"아니, 갠차네. 매칠 이러고 나믄 또 갠찬고 그래. 암것도 아녀."


아버지는 굳이 내 짐을 뺏어다가 당신이 직접 트렁크에 실으시고는 운전석에 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내내 어색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왜 혼자 왔냐. 와이프 좀 쉬게 해 줄라고? 뭐 겸사겸사. 화장실은 안 가고 싶디? 그냥 참을 만은 했어. 느그 엄마 머라고 잔소리 좀 하더라도 그런갑다 해라. 부모들이 다 글지. 건강해도 자식 걱정하는 게 부모여. 근데 니 아프고 낭께, 속이 속이 아니것지 않냐. 근다고 뭐 니가 막 스트레스받고 또 그러라는 것은 아닝께. 적당 적당히 알았다고 하고 넘겨부러. 근디, 갑자기 왜 니 혼자 왔어? 싸우고 그런거슨 아니지? 


"엄마 보고 싶어서..."


"얌마, 아빠는 안 보고 잡고?"


슬쩍 눈을 흘기는 아버지의 눈을 보니, 배시시 웃음이 났다.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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