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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12. 2020

아버지의 일기 #3. 그래도 다행입니다.

대장암일기

불면증


"안녕히 주무세요."


아들내외가 방으로 와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슬며시 문을 닫았다. 잘 자라니. 지금 이 상황에서 안녕히 잘 잘 수 있을까. 한평 남짓한 공간에, 그마저도 책상과 책장으로 꽉 들어차 아내와 내가 발을 겨우 뻗고 누울 수 있는 이 공간에 아내와 내가 남겨졌다. 이부자리를 펴고 아내와 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누웠다. 다행히 우리부부가 누워있는 서재방에 붙어있는 엘리베이터가 오르고 내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숨이라도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 가만히 누워 보이지도 않는 천정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어본다.


"왜 그랬을까?"


"...뭐가...?"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겨우 대답을 한다.


"왜, 우리 아들이 아플까?"


"......"


괜한 푸념에 아내의 등이 파르르 떨려온다.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왜 우리 아들일까. 왜 암일까.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고 건강하게 잘 사는데. 왜 하필 우리 아들일까. 왜냐고 묻고싶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야, 결과가 잘못 나왔을 수도 있지'


고개를 얼른 흔들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결과가 잘못 나와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아들도 그럴 수 있지 않나. 단정해 버리면 안된다. 잘못된 결과를 가지고 이런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지. 나중에 결과가 제대로 나오면 오진한 의사를 찾아가 따져야겠다. 멱살을 잡고 너 따위가 의사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겠다. 멱살을 잡고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도 때려야겠다. 그래도 화가 가시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이 의사놈을 혼내주고 내 화가 풀릴까. 숨이 가빠온다.


'우웅~~'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나는 한 평 남짓한 좁은 서재에 누워있다.


'어떡하면 좋지...'


다음 날 오전이 되자 사돈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대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급하게 진료 예약을 할 수 있단다. 이틀 뒤 월요일 진료가 가장 빠른 진료라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드렸다. 왜 진작에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서울대 병원의 아는 의사라도 찾을 수 있을까. 누가 인맥이 넓지?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지? 일단 누구에게 연락을 하면 좋을 지, 후보만 몇명 추려보자. 그러다 멈칫.


진료 하고 나서 결과가 암이 아닐 수도 있는데, 괜히 이사람 저사람에게 지금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다.


'기다려보자.'


그러나 월요일에 진료를 받으면 모든 결과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오산이었고, 오히려 내가 가진 희망의 신기루는 점점 내 꽉 쥔 두 손에서 부서져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도 일단 대장암은 맞아 보입니다. 그리고 3기도 맞는 것 같구요."

 

"......"


"그래도, 정확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야 하니 일단 결과 나올 때 까지는 좀 기다리시고, 결과가 나오면 뵙도록 하시죠."


사흘을 뜬 눈으로 기다린 우리 가족에게 5분도 채 안되는 진료가 끝이었다. 그리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까지 열흘. 그 긴 시간동안 또 우리가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들의 몸 속에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을텐데. 하루 빨리 수술을 해도 모자랄 판에 열흘. 안된다. 찾아봐야겠다. 아는 사람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내가 가진 연줄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결과를 빨리 받을 수 있게 해야겠다. 급한 마음에 친척들에게 모두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인지는 나중에 말해줄테니 일단 지금은 서울대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동생들, 처남, 매형 모두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부터 먼저 알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지금 상황들을 설명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들이 암이라는 그 끔찍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다음 날 까지 돌아온 대답들은 모두 '아니오'였다.


'없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그깟 서울대병원 의사, 아니 서울대병원 청소부 하나라도 알 수 없구나. 눈앞이 캄캄하다. 아들을 격려하고, 아내의 등을 토닥이고, 며느리의 어깨를 다독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 상황에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다. 먼 발치에서 이렇게 든든한 첫 서 있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실이 너무 허망하고 아리다.


하지만 나는 아프지 않다. 기다리자. 기다리자. 아픈 아들을 두고 내가 힘들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다려보자. 기다려보자. 조금만 더.


십년 같은 열흘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여전히 어둡고 우울한 모습의 환자들이 대기실에 가득하다. 시끄럽게 전화를 받고 분주한 간호사들이 그나마 고통스러운 적막을 깨뜨려주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아들이 진료실로 들어갔다. 가족들을 하나 둘씩 모두 진료실로 들여보내고 마지막으로 나도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일단은 조직검사결과는 악성으로 나왔습니다. 정확한 병기는 더 봐야겠지만, 일단 3기 인것으로 보이네요. 다행히 전이는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가셔서 외과 의사선생님 진료 받으시고 수술 날짜 잡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이가 없다. 전이가 없다. 그래 전이가 없단 말이지.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치고 먼저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어휴......"


뭔가 모를 큰 한숨이 쉬어지더니 금방 눈앞이 흐려진다. 행여 아들며느리가 볼까 뒤로 돌아섰다. 손수건을 꺼내서 땀을 좀 닦는 척을 해야겠다. 다행이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누가 보고있는지는 모르지만 덥다는 손짓을 계속 해 보이며 눈물을 닦았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겨우 진정을 하고 돌아서자 아들이 다른 진료실에서 애써 밝은 모습으로 나온다. 살짝 웃어도 보는 것 같다. 나를 보는 것일까. 나도 살짝 아들을 향해 찡긋 웃어본다. 언제였을까. 내가 너를 보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찡긋 장난스러운 인상을 써 본 것이. 언제였을까. 네 얼굴을 이렇게 한참 동안이나 바라본 것이.


"내일 입원하고 목요일에 수술하재요."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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